Nothing is im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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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예레미야 32:17–27 NKRV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한 외국의 장군 이름은 아는가? 그렇다. 나폴레옹이 1813년 어느 장군에게 쓴 편지인데, 전쟁에서 나폴레옹과 연합군이 점점 병력이 약해지자 나폴레옹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해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당시에 실제로 프랑스어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한다. 그 장군에게 이 전쟁이 불가능이라고 했는데, 그 단어는 불어 사전에 없다며 프랑스인 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때 라이프치히 전투로 나폴레옹이 지금까지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었다. 결국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참패를 당하게 되는 뼈아픈 역사로 새겨지게 된다. 이처럼 전쟁에서 지휘관이 누구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의 여부를 결정짓게 된다.
오늘은 예레미야의 이야기이다. 당시 이스라엘, 예레미야가 있었던 남유다에는 크게 4가지의 죄악이 판을 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우상 숭배였다. 아주 심각한 죄로 여호와의 신앙을 떠나 배교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행위를 하며 죄를 짓고 있었고, 이러한 헛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 1계명, 2계명을 어기며, 하나님을 머리끝까지 화나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명기에서도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우상 숭배를 한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는 포로로 잡혀갈 것을 미리 예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약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것이 성경의 세계관이다.
두 번째로 행음이다. 우상 숭배는 행음으로 표현한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행음했다고 선포한다. 보통 아침드라마나 불륜드라마를 보면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사람들은 그 장면들을 보고 격분한다. 아내는 누구만 사랑해야하는가? 남편만 사랑해야한다. 그러나 당시 유다의 모습이 다른 남편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음란한 행위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과 우상을 따라 가서 섬기게 된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그리고는 높은 산 위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다. 바알은 자녀를 많이 낳게 해주는 복을 준다는 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바알을 섬기는 의식 중에 실제로 바알을 섬기는 사람과 성을 팔고 사는 행위를 한다.
세 번째로 사회 정의가 없다. 유다의 죄는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백성들을 향해서 예루살렘 성에서 재밌는 제안을 한다. 예루살렘 성에서 정의를 행하는 사람 한 사람을 발견하면 이 성에 심판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시민들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이러한 제안을 했을까? 실제로 어느 누구도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사회 속에서 윤리적, 도덕적인 삶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십계명 1계명과 2계명이 무너지니까 그 다음 계명들도 무너지게 되면서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하는 것 또한 함께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연히 이웃 사랑을 해야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로 지도층의 부패이다. 유다 사회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도 부패했다. 제사장, 율법을 다루는 사람, 목자들, 선지자들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제사에 책임이 있고 율법을 해석하며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제사장 또는 재판관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선택한 장소에 있는 예배 처소에는 제사장과 재판관이 있어서 각 성에서 판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는 고등 재판소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이나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통치자나 왕에게 자주 비유되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지도층이 부패하였고 이들 모두 하나님께 대항하여 반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재판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통치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해야하는데 하나님과 반대되는 자신의 뜻대로 통치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해야하는데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모습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 목사님들이 나와서 대표기도를 하는데 행사 전에 하나의 공문이 날라온다고 한다. 그것은 절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 종교가 있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래서 미국의 목사님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기도문 끝에 모든 종교의 신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들이 벌여지게 된 것이다. 총신대학교 교수님이셨고, 현재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담임이신 류흥렬 목사님도 미국 하원의원 행사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똑같은 공문을 받았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미국인들이 큰 소리로 아멘과 함께 우뢰와 같은 큰 박수로 감사하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다렸다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하나님은 이러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것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당시 상황적으로 봤을 때 유다가 곧 멸망할 것 같은 상황을 예레미야는 정확하게 직감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명기에서 모세의 율법대로 점점 유다는 4가지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의기양양하다. 예루살렘의 성전도 무너지지 않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언약궤도 멀쩡히 있는데 망하겠냐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과 동시에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라가고 예레미야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상황이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감정적인 면에서 모든 상황이 예레미야를 힘들게 만들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반응들이 어떻겠는가? 재수없는 소리를 한다며 아주 미워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차라리 안태어났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면서 선지자 직분을 관두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바벨론으로부터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리면 어떡하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곧 유다가 멸망에 임박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지난 수련회 동안 아브라함에 대해서 나누었다. 하나님은 절대 임신할 수 없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그의 나이 100세, 그녀의 나이 90세에 아들을 주시지 않으셨는가? 또 하나님께서 자손을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아브라함의 약속이 모세 때 이루어졌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여호수아 때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걱정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오셔서 반드시 포로가 되어 다시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되지 않았고, 예레미야가 선포한대로 실제로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었다. 또 거짓 선지자들은 금방 다시 귀환할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했으나 예레미야가 예언한대로 70년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하나님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을까?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시 돌아오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보복하신다. 페르시아를 통해 나라가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강대국의 국가의 운명들을 쥐었다 폈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것은 즉흥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기억하시라.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가 나타나기 전에 예레미야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32:27 NKRV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세상의 모든 강대국도 누구 아래에 있는 것인가? 모두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는 걱정하고 염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종말의 때에 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후에 바벨론의 멸망할 날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만 알고 계셨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나 곧 멸망의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디모데후서 3:1-5, 쉬운성경]
1 마지막 날에 많은 고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그 때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돈만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고 용서도 없으며, 나쁜 말을 일삼으며, 절제하지도 못하고 잔인하며, 선한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4 가까운 친구를 배반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며, 교만하고 쾌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5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마28:19-20
마태복음 28:19–20 (NKRV)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인생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세례를 베풀게 하는 것은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집행하신다. 우리는 직접 세례를 줄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것을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할 때 분명하게 예수님이 약속하시는 것은 세상이 끝날 때,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무엇인가? 너를 축복하는 자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시겠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이것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어지는 동일한 복의 내용이다.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더욱 말씀으로 훈련되어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살아가서 영원히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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