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이스마엘 / 창 21:8-13 / 찬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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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도 이렇게 오후찬양예배 가운데 오신 우리 성도 여러분들을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지난주에 제가 독감에 걸렸습니다. 독감에 걸려서 집에 오니까 여행용 캐리어 2개가 문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 근처 원룸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신생아가 있기 때문에, 5일동안 격리를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원룸에 살다가 다 낫고, 하준이 얼굴을 딱 보는데, 5일 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또 커져버렸습니다. 또 얼굴이 바뀌었습니다. 원래도 좀 무섭게 생겼는데, 5일이 지나니까 더 무섭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쫓겨난 것이 조금은 힘들었지만, 쫓겨났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쫓겨났기 때문에, 논문 쓸 것이 있었는데, 집중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초기에 바로 독감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수요일쯤부터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요.
본론
본론
오늘 말씀 가운데에서도 쫓겨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 가족 중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과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아브라함 가족으로부터 쫓겨나게 됩니다.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흔히 다들 하갈과 이스마엘이 약속의 계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저주를 받아서 쫓겨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복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놀랍게도 이스마엘과 이삭이 한쪽은 육체의 자식이고, 다른 한쪽은 약속의 자식이지만, 서로 놀랍게도 동일한 복을 받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어찌하여 이스마엘이 쫓겨났음에도 동일한 복을 받게 되는지 그 이유를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라가 드디어 이삭을 낳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 사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생겨납니다.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지금 이삭을 놀리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죠. 그렇게 사라는 이 장면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말하지요. 이제 자신의 아들이 생겼기 때문에, 이삭에게만 유산을 남겨주려고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근심합니다. 정말 내쫓아도 되는지 근심하지요. 그 가운데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 이삭이 약속의 자식이야. 이삭이 약속의 계보에 속해있어 그렇기 때문에, 이스마엘을 쫓겨내라는 사라의 말을 들으라. 그러나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도 너의 씨이기 때문에, 그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겨내라고 말씀하시는 동시에, 이스마엘도 이삭과 동일하게 한 민족을 만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겁니다.
그렇게 하갈과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 쫓겨나는 내용의 본문이 21장 12절-21절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22장에 그 유명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21장에서 하갈과 이스마엘 이야기와 22장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서로 매우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1장 12절에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대로 이스마엘을 쫓아내라 말씀하시지요. 이것은 마치 22장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내용과 유사합니다. 이 당시 쫓겨난다는 것은 죽음과 연결되었기 때문이지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내용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21장 16절 이스마엘의 죽기 직전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마찬가지로 22장에서도 이삭이 칼에 찔리기 직전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이스마엘과 이삭 모두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기적적으로 살려줍니다. 또한, 이스마엘과 이삭 모두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약속하시지요. 마지막으로 하갈은 물을 발견하여 물을 마시게 되고, 아브라함은 숫양을 발견하여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21장의 이스마엘 사건과 22장 이삭 사건이 매우 유사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러한 유사한 내용을 등장시키면서 성경은 계속해서 이삭과 이스마엘이 서로 동등한 복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기서만 끝나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17장에서부터 하나님은 이스마엘에 대해서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17장의 약속의 말씀은 25장에서 가서 성취되는 것이지요.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열두 두령, 열두 지도자들, 이것은 마치 이삭의 아들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야곱의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비슷한 모습이지요. 그러니까 성경은 이스마엘이 쫓겨났는데도, 계속해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계보에 속해있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 복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쫓겨났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 광야에서 죽게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고 한 민족이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하갈이 이스마엘에게 아내를 얻어주고, 아브라함도 이삭에게 아내를 얻어주면서 계속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스마엘은 쫓겨났음에도 이삭과 동일한 복을 받았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스마엘이 쫓겨났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의 씨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속해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이스마엘은 쫓겨났음에도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지요.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스마엘이 복을 받았던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됩니다.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 시작으로 가장 가까운 이스마엘이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쫓겨나게 되었어도,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 게 아니라, 이삭과 동일한 복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관련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핵심
핵심
신약으로 가면 이러한 모습이 다르게 바뀌어 갑니다. 먼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정확히 예수님을 가르키는 것이지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 사람들이 복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에게 관련된 사람들이 복을 얻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이스마엘을 통해서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보니까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과 더 어울리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인데,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과 같은 어떤 종교지도자들인데, 오히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복을 주시는 대상은 예수님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세리와 창녀들, 사마리아 사람들, 몸이 아픈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셔서 진정한 복을 선포하여 주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전혀 관련없는 사람들인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찾아와주셔서 이들은 복을 얻게 됩니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복을 받으면 안 되는 사람들까지도 변화시켜서 복을 받게 만들어주십니다.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지 말라고 화를 내며 항변했던 제자였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형편없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회복시켜주시고, 예수님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 또한, 사울 바울 역시 예수님의 교회를 핍박했지만,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찾아와주셔서 예수님의 복을 깊이 알게 하여 주시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있었던 모습들. 아브라함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는다. / 신약에서 오면 더 변화되고 발전됩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모두 복을 받는다. 복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 복을 받는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율법에 갇혔던 우리도 이제 율법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되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이죠.
결론
결론
이제 설날이 찾아오면서 세상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곤 합니다. 아이들은 세뱃돈 받을 생각이 신이 나는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진정한 복은 예수님입니다. 이스마엘처럼 번성하고, 큰 나라의 왕이 되고, 큰 민족을 이루는 모습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일 뿐이겠지요. 우리가 받아야 할 진짜 복은 바로 예수님을 아는 복입니다. 가정에서 서로에게 축복해야 할 말은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자는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풍성한 가정이 되는 것이 진정한 복인 줄 믿습니다.
교회에서 점차 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가운데 예수 복음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교회에서 다른 복들이 선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이 선포되면 처음에는 달콤하고, 그럴 듯하고, 잘 들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가짜 복이기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공허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언제나 예수님이 선포되는 교회 가운데 머물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선포되고, 예수님으로 충만한 교회 가운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으로 충만하여져서 이번 명절 가운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짜 복이신, 진정한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수많은 복들이 넘쳐나고 있는 시대 가운데 우리도 세상의 흐름에 빠져서 거짓된 복들에 유혹 당하고 흔들리고 넘어가버렸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정신을 깨어서 우리의 진정한 복이신 구원자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복의 근원되신 예수님,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짜 복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예수님께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라지고 있는데, 유명세를 얻는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는 계속해서 예수님만을 주목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선포되는 교회 가운데 우리가 계속해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