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길로 행하리라(시 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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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시 편101:1-8절 말씀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가 왕으로써 자의적인 길을 걸어가지 않고, 완전한 길이 되시는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다윗은 자신이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보기에 하나님은 인자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 사실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안에서 그들을 사랑과 공의로 상대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셨다면 이스라엘은 진작에 망해도 망했을 테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그들이 잘못했을때는 공의로 심판하며 바로 잡아 주셔기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이 땅에 존재하였고, 자기가 왕으로 등극하였음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공의와 사랑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고, 죄악의 길로 빠지지 않게 되며, 하나님의 성품을 이 땅가운데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는데 우리는 우리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것도 잘 알기 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며, 무조건 읽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잘 깨달아서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두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을 본받겠다고 고백합니다. 즉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머리 속으로만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완전하신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이 무엇입니까?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도, 의지 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기 원하는 거처는 우상들처럼 화려한 신전이 아니라 주님만 순전하게 바라보는 눈동자입니다. 온전하고 충성되게 주님을 따를 방법은 눈 앞에 다른 우상을 두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 바울은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붙들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천하다는 말은 악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상 숭배와 우상 숭배에 근거한 관행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 고백은 그 어떤 우상 숭배나 그와 관련된 것들에 그는 관여하지 않고, 의로우신 하나님만 붙들고 살겠다고 다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왕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이 우상에서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백년에 걸쳐서 우상의 영향을 받았기에, 이스라엘 사회에 관행적으로 우상의 영향력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관행이 얼마나 뿌리 뽑기 어려웠는지, 다윗의 사후에도 그 관행들은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은 이런 악한 것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합니다. 잘못된 관행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고, 우상의 영향력아래 있는 것들이라면 모두 미워하고 붙들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나 교회나 가정은 어떻습니까? 악한 행동이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관행이라는 이유로 고수하고 지키는 행위는 없습니까? 만약 그런 일들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그런 관행을 다윗처럼 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사랑을 행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로 다윗은 악이 눈앞에 거대하게 드러나지 않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마음에서 나옵니다. 새번역 성경 5절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악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서 누군가를 숨어서 욕하고 헐뜯거나, 자기의 눈높이와 교만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준을 생각하며 남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우리는 나와 비교하여 남을 평가하는 것들을 향해 다윗은 악한 행동이라고 지적합니다.
사실 능력이 있거나 높은 위치에 있거나 남들보다 잘 살거나 하게 되면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야 배울수 있고, 더 능력이 개발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의 개발을 위해 더 장려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것도 악한 행실이라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대놓고 사람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벌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뒤에서 욕하고 평가하고 지적하는 것들 역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다윗 입장에서는 이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누구입니까? 왕입니다.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면 듣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무조건 지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정말 현명한 왕은 자기의 지식과 지혜로 신하들을 무시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게 자기의 부족함을 들을 수 있는 왕입니다. 누군가를 음해하는 소리를 듣고 흥분하여 가볍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위가 있다고, 내가 능력이 있다고, 상대방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가 누구를 평가하고 음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1절처럼 인자 즉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요,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욕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롭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왕으로서 거짓을 행하는 자를 자기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대신 충성된 자와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를 곁에 두고 일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여러분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신하를 잘 두어야 합니다. 다윗은 그런 바람을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의를 행합니다. 더 나아가 악한 행동이나 관행에서 멀어져서 하나님만 붙들겠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교만하게 평가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신하들도 충서된 자와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들로만 등용하겠다고 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왕이 다스리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 나라에 복을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