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고 재를 먹으며(시 1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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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 편 102편 1-11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고난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라는 긴 표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는 시편의 일곱개의 참회시편중 다섯번째 시이고요, 이 시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간절한 기도로써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뭔가 긴박한 사정이 있어서 하나님께 찾아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어서 2절을 보십시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지금 굉장히 극심한 고통중에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2절 후반부에서 ‘속히’응답하시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찾고 있을까요? 우리가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지 않고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도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시인은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지독한 고통이 연속적으로 다가오고, 정말 이 고통이 숨쉬기 어려울만큼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올때, 하지만 어느곳에도 출구가 없어 보일때, 하나님 과연 나와 함께 하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를 이렇게 방치하실까라는 의문이 들기 대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찾아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곁에 계시지 않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얼굴을 숨김듯한 하나님의 숨은 임재가 시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게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다보면 참 여러가지 방안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요, 그 와중에 다른 방법이나 사람이나 절차가 아닌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복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요?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무엇입니까?
3절 이하에서 부터 시인은 그 고통을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고난이 욥이나 예레미야 그리고 다른 잘 알려진 고난당한 사람들과 비슷한 고난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먼저 3절에서 시편 기자는 연기를 말합니다. 연기는 일시적입니다. 연기는 나타나지만 실체가 없어 곧 사라집니다. 시인은 자기의 인생이 이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지금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뼈는 숯같이 타버렸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뼈를 종종 사람의 육체적 힘과 건강의 척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육체적 질병을 뼈가 약해지거나 고통스러워한다고 표현했고요, 예레미야도 “불이 내 뼈에 잠겨서”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말할수 없는 고통을 묘사했습니다.
4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자신의 마음이 풀과 같이 시들고 말랐다고 합니다. 풀은 생명이 짧고, 중동의 뜨거운 해 아래에서 생명을 잃으며, ㄴ랗게 변하고 시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시편 기자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는 질병으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슬픔과 걱정 가운데 음식 먹는 것을 잊어, 뼈와 가죽만 남았는데 이것은 욥이 욥 기 19장 20절에서 한 불평과 동일합니다.
6절에서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라고 자신을 묘사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시편 기자가 공허함을 느끼고 소외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홀로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올빼미나 부엉이는 야행성 동물로, 밤에 고통으로 잠들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8절에 보면 원수들의 비아냥거림과 조롱과 비방이 끊어지지 않고 죽음의 위협은 여전합니다. 마치 욥이 친구들의 비방에 비참함을 느끼고 괴로웠던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인은 눈물을 물 삼아 마시고 타버린 재를 먹는 심정을 주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서 아주 놀라운 말을 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이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 분이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이 상황을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졌다고 표현합니다. 연기같고 풀같고 그림자 같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오만했기 때문에 풀처럼 시들어가고 있다고 묘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시편 기자는 자신이 겪는 끔찍한 증상에 대해 불평해 왔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문제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겪고 있는 고통은 그의 죄로 인한 것이며, 그를 조롱하는 그의 원수는 그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가하는 인간 대리자들이라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