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세대와 다른 세대. 사사기 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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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볼 때 '인간은 죄인이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증거물은 성경의 모든 내용을 자신과 결부시켜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신학을 이루어가고 하나님에 대한 시각을 정립시켜 가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오류는 항상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계획, 언약 이러한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들로 이해를 해버립니다. 이로 인해서 성경을 통해 계시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은 다 무너져 버리고 하나님의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으로 둔갑을 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행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성경을 하나님 중심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이해를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이해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입장이나 주어질 결과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솔직하게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만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만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가가 드러나는 것으로만 만족하자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 여러 인물들을 대하면서, 나의 소망도 이들의 소망과 같은가? 자신을 확인하고 그리고 그들이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갔을 때 나그네로 살았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해서 '예'할 수 있다면 바로 성경을 자기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서 자기 것을 챙기려고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바라볼 때 룻에게 먼저 선택권을 맡겼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좋은 땅이 약속의 땅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한다면 '나는 과연 아브라함처럼 보이는 세상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바라보고 사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자기 중심으로 이해한다면 '아브라함처럼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 이렇게 자신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믿음은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까울지 모릅니다. 아니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본문의 이스라엘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내 모습 그대로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전의 우리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이스라엘의 모습이 현재 우리들에게서 조금이나마 보여진다면 결국 우리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흔적이 될 것입니다.
먼저저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세대와 다른 세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함께 10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기서 그 세대와 다른 세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 세대는 여호수아 세대로서 여호와를 섬긴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다른세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10절 하반절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한,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의 사사세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10절 하반절부터 15절까지는 이 다른 세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먼저 본문 11-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2:11–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의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한 다른 세대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그들의 악은 바알을 섬기고 가나안의 신을 쫓아 그들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이것을 간단히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과연 우상을 섬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보다 바알을 섬기는 것이, 가나안의 신을 섬기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득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의 싸움은 총이나 칼로 싸운 싸움이 아닌 문화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자연히 자신에게 득이 되는 신을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버리고 주위에 있는 신들을 섬기게 된 것은 이것이 바로 그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직업을 버리고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농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목축을 해왔습니다. 물론 가끔식 농사를 지었지만 그들의 본업은 목축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축업이라고 하는 것은 날씨나 비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비가 와서 풀이 있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풀이 다 말라죽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농사라고 하는 것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때나 씨를 뿌린다고 해서 곡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또 거둘 때가 있으며 비가 올 때가 있고 비가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전혀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상황에서 농사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나안 사람들에게 농사를 배워야만 했고, 농사는 모든 것이 날짜에 따라서 해야 하는데 날짜에는 음력이 있고 양력이 있으며 또 날짜마다 농사와 관계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 대대로 목축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환경이 바뀌면서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옛날 조상들의 지혜나 신앙 같은 것이 소용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요즘 스마트폰, 컴퓨터 세대들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지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신을 섬겼던 것은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이 신과 관계하지 않고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은 해의 신이었고, 아스다롯은 달의 신이었습니다. 더욱이 가나안 땅은 기후가 좀 특별해서 양력과 음력 모두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것은 양력을 지배하는 바알을 섬기고, 씨를 뿌리는 것 등은 음력을 지배하는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이나 아스다롯을 섬겼던 것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농사를 지으려면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었고, 농사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그들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원하신 것은 처음부터 농사를 잘 지으려고 하지 말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대로의 농사법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 사람들의 농사법을 배우면 농사를 훨씬 잘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농사에는 사탄의 사상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예 농사를 몇 년간은 완전히 망치더라도 바닥부터 시작을 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됩니까? 쉽게 잘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힘들게 어렵게 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바알이나 아스다롯이라는 우상을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큰상을 준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에는 상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단과도 같은 말로 들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상을 준다는 신이 더 신답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신이기 때문에 그러한 신을 좇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상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열심히 일해도 상의 차이가 없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는가? 라는 반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입니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사방의 대적의 손에 붙여서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괴로움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래 누구를 세우십니까?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2: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내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다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건져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사사의 역할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사란 재판한다 구원한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즉 사사는 이스라엘의 재판자로 구원자로 세움을 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운 사람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단지 사사의 기능이 이스라엘이 괴로움을 당할 구원하는 기능이라면 애초부터 사사를 세우지 말고 이스라엘에게 괴로움을 안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굳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사사 세워 그들을 건져내는 것은 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뭔가 가르치시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사사를 세우심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과연 사사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다 같은 사고방식이라면 이스라엘은 누구를 통해서도 자신의 죄를 책망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스라엘 안에 여호와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이스라엘은 그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죄가 발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곧 사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사는 이스라엘을 재판하는 사람입니다.
즉 사사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주체로서 이스라엘 안에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사사를 뽑아서 세우심으로 이스라엘을 책망하신다면, 오늘 우리들에게도 우리를 책망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처음 외침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책망의 주체자라는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속에서 책망의 주체자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항상 말씀으로 인해서 책망을 받으며 자신의 삶의 길을 확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고자 힘쓰는 삶을 살아가는 신자라면 그가 바로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2: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이 바로 책망의 주체자가 없었던 다른세대의 이스라엘 모습입니다. 책망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고 끝까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길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열조와는 다른 세대입니다.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겼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말씀이 주어지면 말씀으로 인해서 책망을 받습니다. 자신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돌이키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열조의 행한 길을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말씀이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말씀의 능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린 기도할 때 '말씀이 능력이 되어서 우리를 붙들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의도는 말씀에 붙들려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붙들릴 의도도 아예 없습니다. 처음부터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말씀의 능력이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런 자를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자신을 포기한 자에게만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오늘 이 시간도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고 있지만, 누가 말씀에 붙들린 자가 되느냐는 것은 누가 자기를 포기하기 위해서 말씀 앞에 서 있느냐로 결정되어 질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말씀에 의해서 책망을 받을 성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어야 하고, 말씀이 우리를 책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분명 예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사랑하는 삶에 대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말씀을 믿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로움을 받아 부르짖을 때에 다시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시고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그들을 구원하시고 회개하고 하였지만 그런데 사사가 죽은 후에 어떻게 합니까? 19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는 16-19절에서 사사 시대에 나타난 순환사관이라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타락, 심판, 회개, 구원입니다. 이 4가지가 사사시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회개 하였지만, 그들은 그 열조보다 더 패괴하여 다른 신을 좇아 그들에게 절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러한 행동이 무엇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었다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가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괴로움 속에서 부르짖는 것도 결국 괴로움에서 빨리 구원받고자 하는 의도에서입니다. 사사가 죽자 다시 패역한 길로 가는 것도 역시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을 찾아갑니다.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모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최고로 여기게 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세계가 약속으로 주어져 있음에 대해서는 무시를 해버립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가 약속으로 주어져 있음을 믿고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기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는 성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자신에게 책망의 주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책망의 주체자가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서도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에게 해가 되고 득이 되는 것이 뭐냐만 따집니다.
과연 여러분을 책망하는 주체자가 여러분 안에 자리하고 계십니까? 말씀을 대할 때마다 교회에 나올 때마다 여러분의 죄가 책망을 받고 여러분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성도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말씀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의 하나하나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망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신 생명의 나라를 심어 놓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세상을 벗어나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나, 여전히 죄악 된 이 땅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유혹, 고통, 질병, 고난을 겪는 것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어도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알아가며, 주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로 훈련되는 가장 유익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으로 다른 세대가 아닌 그 세대, 여호와만을 섬기는 세대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찬양 : 주의 말씀 앞에선
결단기도
-다른 세대가 아닌 그 세대, 여호와만을 섬기는 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성도가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에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교회를 위한 기도
-담임목사님 영육의 강건함과 성령충만함, 목회계획을 위해
-이번주 금요일부터 설 명절로 온 가족이 말씀 앞에 서게 하시며, 주님 안에서 연합됨과 사랑을 경험하도록
-모든 성도가 성령의 임재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다른 이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열우물교회 1인 1사역에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동참하며, 특히 카페, 방송실, 교회 청소 사역에 귀한 헌신자들이 세워지도록
교회학교 겨울행사를 위한 기도
-2/17(토) ~ 18(주일) 초등부 새봄성경학교
* 주제 : 럽? 럽! 럽. * 장소 : 비전센터
- 2/25(주일) 청년부 일일 수련회
* 주제 : 마음을 여는 청년 * 장소 : 그레이스홀
*모든 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다음 세대가 이 시대를 바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고 그리스도의 가치관으로 섬길 수 있는 영성과 실력, 겸손을 겸비한 기독교 인재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향해 갖고 있는 마 음을 품게 하시사, 이 땅의 아픔, 소외된 자들을 향한 사랑, 교회의 사명, 민족 공동체의 회복의 과제를 공감하게 하여 주시사 이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자로 세워주시고, 기도하는 영성을 갖게 하여 주시고, 기도의 일꾼으로 자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다음 세대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참된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예배를 통해 영적 자족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늘 갈급해 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셔서예배가 늘어나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새벽이슬 같은 교회학교가 거룩과 능력으로 무장되어 이나라와 세계 교회를 이끌고 나갈 존귀한 인물들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자신의 삶만 겨우 책임지는 인생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로 저들의 인생을 사용하여 주시사 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하는 디딤돌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먼저 믿음의 길로 이끄시고, 귀한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셔서 우리 아이들이 주님의 은혜로 자라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에 걸 맞는 믿음의 용량을 허락해 주셔서, 저들이 매순간 맞대고 살아가는 세상의 세속적인 문화를 극복해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 모든 환경을 복의 통로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영적인 안목이 열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만나 주셔서 가슴에 영생의 소망을 품고 살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의 삶에도 주인이 되어 주셔서, 저들의 평생을 책임져 주시고 영광스럽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선대가 누린 은혜와 축복을 잘 계승하게 하셔서 초대교회 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세계 교회의 주역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여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기둥 같은 인물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안에 다음 세대 사역에 헌신된 신실한 일꾼들과 준비된 지도자들을 예비해 주셔서 열우물교회의 다음 세대 사역이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고통 중에 있는 나라들을 보호하시고, 속히 재건 될 수 있도록
-모든 향락 문화가 사라지고, 서로가 사랑하며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문화가 일어나도록
-제22대 국회의원선거(4/10)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위한 바른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준비과정에 어떠한 악한 일도 틈타지 않도록
-북한의 주체사상과 신격화 우상화 체제가 속히 무너지게 하시고, 북한 성도들의 기도와 십자가 복음으로 북녘땅이변화되도록
환우를 위한 기도
박화서 장로, 정권성 권사, 오인세 권사, 이혜경 집사, 최숙희 권사, 김신영 권사, 김명숙(서) 권사, 이도원 성도, 박욱주 권사, 김수연 권사, 김순옥 권사, 조경아 집사, 허영주 집사, 강연자 권사, 지정화 권사, 김관옥 권사, 김금환 권사, 호경희 권사, 박삼례 권사, 이강문 집사, 남유경 성도, 공준식(이영란 집사 남편), 이문기 권사(박은향 권사 모), 안순임(신현숙 집사 모)
심지후(심재준 장로 손자) : 신장(콩팥)에서 암을 발견하여 내일 전이가 되었는지 CT촬영을 할 예정임. 전이 없이 치료될 수 있도록
이장호(이정임집사 남편) 당뇨합병증으로 길병원에 입원하여 치료중
오직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고 치유가 있음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함을 입어 죽은 세포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재창조와 치유의 역사가 일아나며 질병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의 영은 떠나가고 생명과 평안으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고통 앞에서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며, 모든 질병의 고통들이 치유의 증거가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만병의 치료자가 되시는 예수님!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기도합니다. 아픈 부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덮이고 치유되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나의 질병이 나음을 입었음을 믿고 고백하오니 믿음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들이 내 몸에서 사라질지어다! 모든 혈액의 수치들이 정상적으로 회복할지어다! 마른 뼈 같은 우리 몸에 생기가 넘칠 찌어다! 강건케 될지어다!
우리의 모든 불안, 낙심, 절망도 감사와 평안으로 회복케 될지어다!
이시간 성령의 불로 아픈곳 태워주시옵소서 연약한곳은 온전케하여 주시옵고, 마비된곳은 풀어주시고, 죽었던 신경과세포는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부정적인 생각 의심의 세력 물리쳐주옵시고 믿어지는 믿음을 주옵소서
만군의 여호와시며 나의 왕이신 하나님아버지 나를 경외하는 너희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리라 하셨으니 저에게 치료의 광선을 내려주시어 영육이 연약한 성도님들에게 거룩한 주 나사렛 예수님 이름으로 병이 치료가 되어 건강과 활력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치료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본 받아 우리의 삶이 말씀 안에서 터를 잡고 세워나가게 하옵소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저희들을 믿음으로 붙들어 주시사 말씀 앞에 서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를 믿게 하여 주옵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며 주님을 닮아가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붙들어 주시옵시고, 여호와만을 섬기는 세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귀한 예물 드립니다. / 호명 / 이 예물을 축복하시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예물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역사하심이
오직 믿음으로 다른 세대가 아닌 그 세대, 여호와만을 섬기는 세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모든 성도들 머리 위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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