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유익, 오직 주님께로만(몬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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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2월 7일 수요일
제목 : 진실된 유익, 오직 주님께로만
본문 : 빌레몬서 1:11-17
1.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빛을 발견하다
1)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에 집중된 아시안컵, 그러나 진짜 빛은 조현우
오늘 새벽, 요르단전 경기를 보신 분 계십니까? 경기를 보신 분들에게 이번 아시안컵 결과는 매우 아쉬울 것입니다.
또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경기를 보지 않으셨더라도 대한민국의 패배와 탈락의 소식은 당연히 아쉬울 것입니다.
저 역시 축구를 좋아하고, 또 한 명의 팬으로서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이 ‘전승 우승’하는 그림을 꿈꿨습니다. 물론 이 그림은 전략적인 분석과 지금까지의 전적들을 비교하여 나온 그림은 아니고, 그저 사심 100%의 개인적 바램에서 나온 그림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바램과 다르게, 한 경기, 한 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조별예선에서 바레인을 이긴 경기 외에 모든 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졸이다 극적으로 이긴 경기가 얼마나 많은지, 어떤 때에는 경기가 끝나면 심장이 아팠던 적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기도 참 많았습니다. 그 중 저는 가장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난 위기를 함께 이야기 하며 설교의 문을 열어보려 합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의 첫 위기는 아무래도 첫 경기였던 바레인 전에서 지난 6년간 골문을 지켜온 김승규 선수의 부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김승규 선수의 이탈로 꺼내든 카드는 바로 조현우 선수였습니다.
조현우 선수가 뛰어난 선방능력을 가진 선수라는 것은 이미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2순위로 밀려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불안요소 였습니다.
하지만 왠걸요? 이번 아시안컵에서 장갑을 끼고 골문을 지키는데, 그저 빛입니다. 너무 잘 해서 오히려 조현우 선수가 없었더라면 더 큰 점수차로 이미 졌거나 또 졌다는 언론이 나올 정도입니다.
분명 아시안컵 시작 전, 모든 포커스는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그리고 황희찬과 같은 선수들에게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보니 포커스는 이제 조현우 선수입니다. 또 벤치에만 앉아 있다 한국에 귀국할 줄 알았는데,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기에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전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그 반전은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결국 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자리기에, 아무런 도움 없이 또 빛도 없이 지내다 돌아올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너무 큰 도움이었고 덕분에 기뻐할 수 있는 반전이었습니다.
2) 무익한 줄 알았던 오네시모, 그런데 빛을 발하다
그런 상황이 지금 본문 속에서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로 오네시모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저 무익에 그칠 줄 알았던, 아니 그의 존재 자체를 알지도 못할 뻔 했으나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어버린 강력한 반전 스토리가 등장합니다.
2. 사도 바울(이미 믿는 자)을 통해 복음의 유익이 증명되다
1) 해를 입힌 자와 진리를 전한 자의 결말, 감옥
지금 이 반전 스토리의 배경이 어디입니까? 바로 로마 감옥입니다. 변두리에 있는 감옥도 아니고 문화의 핵심, 로마에 위치한 감옥이니 갇혀서도 당할 고난과 고통 역시 상당할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반전이 있다면 무엇이 반전이겠습니까? 그저 무죄로 풀려나거나, 말도 안되는 일들이 펼쳐져 탈옥하는 것이 반전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들이 감옥에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오네시모, 그는 왜 감옥에 있습니까? 정확히 죄목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역시 로마 감옥에 있는 것으로 보아, 범한 죄가 결코 가볍지는 않을겁니다. 다만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건, 그가 주인 빌레몬에게 해를 입혔다는 겁니다.
또 사도 바울은 왜 감옥에 있습니까? 어쩌다 그는 오네시모와 감옥 동기가 된 것입니까? 그의 죄목은 복음전함 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사실로 로마 감옥에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쪽은 해를 가했습니다. 빌레몬에게 상해를 입혀 감옥에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쪽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이에게 진리를 전해 감옥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유 모두 로마 감옥에 갇힐 정도로 아주 중한 죄목이라는 것이지요.
2)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옥살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옥살이
이 둘은 다른 사유로 감옥에 갇혔을 뿐 아니라 감옥에 갇혀서의 태도 역시 다릅니다. 오네시모에게 감옥은 그저 ‘죄 값을 치루기 위함’에 그쳤을 것입니다. 적당히 시간을 채우다 나오거나, 어쩌면 나올 가망이 없어 채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다릅니다. 비록 감옥에 있으나 채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 때문에 이곳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즉 감옥을 또 다른 복음의 기회의 장처럼 여기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당당한 겁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에는 실수가 없음에 떳떳한 겁니다. 자신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비록 처한 환경은 감옥이나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3) 예화 : 한 치의 부끄러움 없는 진술서
제가 군생활 할 때 일입니다. 조교로 군생활을 하면 주말이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말이라해서 조교들 쉬라고 훈련병들이 집에 다녀오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제 동기가 당직근무를 서는 날이라 주전부리 몇 개 챙겨주고자, 저희가 쉬는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훈련병들도 낮잠을 잘 때라 한가하다 못해 적막함까지 흐를 시간대였습니다.
그렇게 주전부리를 챙겨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쨍그랑’ 소리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즉시 소리가 난 곳으로 갔는데, 훈련병들끼리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하는 겁니다.
구경할 틈도 없고 말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들의 싸움을 말렸고 다른 사람들의 동참으로 이들을 떼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싸움의 최초 목격자가 되어 이들과 함께 행정반에 갇혀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는 행정반이라는 한 공간에 갇혀 진술서를 작성했지만, 저는 한 점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비록 주전부리를 들고 내려오는 주말 근무 없는 군인 아저씨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 저는 조교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기에 부끄러울 필요가 없는 겁니다.
4) 고난 중에도 복음의 유익은 상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처한 환경은 절망만 가득한 로마 감옥이었지만, 부끄럼 하나 없었습니다. 왜요? 본인이 전한 복음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본인이 자랑한 예수 그리스도는 실수가 없었고, 복음을 전하는 삶이 자신에겐 마땅한 삶이고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와 같은 고난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유익을 믿어 의심치 않는 자에게 고난은 또 다른 복음 증거의 현장에 불과했습니다. 그 안에서 복음은 여전히 유익했습니다.
결국 감옥이라는 배경은 곧 믿는 자에게 복음이 얼마나 강력한 힘과 능력과 은혜를 지니고 있는지 증명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고난 중에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의 유익은 절대 변치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서 더욱 빛을 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더욱 강하고 밝게 비춰질 것입니다.
3. 오네시모(복음을 들을 자)를 통해 복음의 유익이 증명되다
1) 복음을 듣고 무익에서 유익으로 변화된 오네시모
그리고 그 빛은 믿는 자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의 유익은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채념과 절망 가운데 놓여 모든 것을 포기한 오네시모를 향해 이어져 갑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오네시모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유익을 오네시모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오네시모에게 전해 줍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해 들은 오네시모, 어떻게 변화됩니까? 11절입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무익에서 유익으로, 엄청난 변화 아닙니까? 아무런 도움이 안될 존재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뒤바뀜되는 것이야 말로 엄청난 변화 아니겠습니까?
2) 예화 : 일대일 양육을 통해 변화된 삶
저는 일대일 양육을 담당합니다. 물론 다른 신앙 강좌들도 은혜가 있고 또 인도하는 목사님들이 탁월하다는 사실에 저 역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는 일대일 양육에 강력한 애정이 있습니다.
한 분, 한 분 16주간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간증문을 볼 때마다 감격과 감동이 옵니다. 보여주기식 신앙생활을 하며 그저 칭찬받고 싶은 욕심에 행위들을 앞세웠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사로잡힌 삶으로의 변화된 이야기, 두려움에 사로잡혀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붙잡아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편안함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잘 할 수 있을까? 잘 알지도 못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삶이 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게 되었고, 가르치며 배우며 기도하며 전하는 일에 희망을 꿈꿔본다는 이야기 들이야 말로 이어진교회에서 우리 성도님들이 누리고 계신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 합니다.
저 역시 엄청난 변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과 교제하고 소통하며 바뀌어 가고 있음을 크게 느낍니다. 물론 여전히 변화되어야 할 영역은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변화될 것이기에 걱정보단 기대가 큽니다.
4. 진정한 유익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이미 들었던 사도 바울에게도 증거할 수 있는 기쁨을, 그리고 복음을 이제야 들었던 오네시모에게도 무익에서 유익으로의 변화의 기쁨을 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진실된 유익을 얻는 방법은 세상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오네시모는 세상의 것을 취해야 유익할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인에게 해를 입혀서라도 유익을 찾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세상은 끝내 절망과 고난이라는 결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절망 가운데 놓인 오네시모에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복음을 전해 들었다 해서 감옥에 갇혔다는 현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헛된 유익을 쫓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진실된 유익, 복음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익은 어떤 세상도 줄 수 없는, 오직 예수로만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고난 중에도 복음을 붙잡으십시오. 복음은 곧 우리를 살리고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요셉은 형들의 계략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위협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쓰셨듯, 하나님께서 다윗을 쓰셨듯,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오네시모에게 복음이 흘러갈 수 있도록 쓰셨듯, 이제 우리 성도님들을 쓰실 것입니다.
조현우 선수는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주님 함께 해주세요.” 그는 경기에 나가서도, 경기를 하면서도 몇 번이고 주님을 외치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는 긴 시간 공백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손을 비로소 붙잡아 일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 비록 감옥에 갇힌 것 같으나 사도 바울처럼 우리 성도님들을 쓰실 것입니다. 내 비록 감옥에 갇힌 것 같으나 오네시모처럼 복음을 듣고 다시 일어날 힘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나를 쓰신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쓰신다.’는 믿음 가지고 믿음의 여정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나를 통하여
-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그 분의 계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흘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감옥은 복음이 필요한 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였습니다. 주여 내게 하나님의 복음에 흔들림 없는 자 되게 하소서. 복음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날마다 예수를 높이며 주님을 경배하는 자 되게 하소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사용하소서.
- 오네시모처럼 세상의 것을 쫓아 유익을 구하는 자가 우리 주변에 있지는 않으십니까? 또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제자리 걸음하는 성도님들 계십니까?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주여,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복음이 깊숙히 찔려 그 복음을 누리게 하소서. 주여, 내게도 변치 않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유익함을 내게 허락하소서.
2. 나를 통하여(후렴) + 사람을 살리는 노래(후렴)
- 설 명절을 맞아 복음이 필요한 자들이 있습니다. 나의 가족, 나의 친척.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모습이 올 한해 담대함 가운데 일어나게 하소서. 그들을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들고 나아가는 일꾼되게 하소서. 주님 보시기에 ‘잘 하였다.’ 칭찬하심에 부족함 없는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