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변화가 필요해

그리스도인의 삶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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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 것도 없던 이스라엘 2. 은혜를 경험한 이후 3. 깨달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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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 것도 없던 이스라엘

지난 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헌금봉투 뒤쪽에 3가지 감사를 붙여두었어요.
헌금봉투에 헌금을 넣을 때 한번씩 읽어본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해요.
(쉬고) 헌금을 하면서 3가지의 감사를 고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 있어요.
오늘 설교 제목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훈련. 연습을 매일 매일 하는 것이 세상 중요해요.
나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헌금을 드릴 때 감사를 고백할 수 없어요.
헌금 할 때 감사를 고백하기 위해선, 작은 것이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해요.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좀 드리고 있나요?
사실 우리는 “감사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어요.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왜 감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감사는 어떤 대상이나 혹은 이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거잖아요?
(허공을 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고 다니면 다들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죠. 그것처럼 구원을 받기 전 우리는 감사할 대상이 없었어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로 살아가는데 감사가 왜 필요하겠어요.
(쉬고) 하지만 우리는 감사할 대상. 예수님이 있어요.
그 분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잖아요.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면, 반드시 그 분에게 감사를 고백해야 해요.
(쉬고)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기 보다 불평과 불만이 좀 더 많은 삶을 살아가요. 아니 어쩌면 불평도 불만도 감사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죠.
삶에 감사가 없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이랑 친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쉬고) 오늘 본문에 광야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 등장해요. 이스라엘의 삶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들은 애굽. 세상의 노예였어요.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없다는거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노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꿈도 희망도 없어요.
또한 주인이 변덕을 부리면 언제든지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하루 하루 살아갔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을 만나기 전 우리는 세상의 노예. 세상과 더 가깝고 친한 사람들이었어요.
(쉬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셨어요.
애굽의 노예.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죄의 노예.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도 우리도 애굽. 세상. 죄에서 풀려나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5초 쉬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자유가 주어졌는데, 노예로 살 때가 훨씬 더 편했다라고 이스라엘이 이야기 하는거에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게임이, 친구가, 세상이 더 좋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해서 불러주셨는데, 이스라엘도 우리도 하나님보다 나에게 더 편하고 익숙한 세상.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는거에요.
(쉬고)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서 바로 약속의 땅으로 자신들이 갈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어요.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가도록 만드셨어요.
하나님은 왜 바로 그들을 약속하신 땅으로 데려가지 않고, 40년동안 광야에서 살게 하셨을까요?
(쉬고)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살게 하신 이유는 ‘노예의 옷. 못된 습관을 벗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세상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는 시간을 갖게 하신거에요.
하나님보다 더 편하고 익숙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게 하셨어요. 편하고 익숙한 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습관이에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었던 이스라엘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나를 구원해주셨고, 나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셨음을 알지만 아직 다른 것을 더 좋아하는 우리.
이스라엘과 우리의 눈과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돌리고 고정하도록 하기 위해 40년이라는 시간을 광야에서 살도록 하신거에요.
(쉬고) 그만큼 나에게 익숙한 것.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거에요. 40년이 들만큼 어렵다는거에요.
대학교에 가서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12시에 모여서 매일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날 기타를 칠 수 있는 선배가 안온거에요. 그래서 목소리로만 찬양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양휘석 반주 할 줄 아니까 기타도 칠 수 있을거야”라고 하면서 기타를 갑자기 저에게 줬어요.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기타표를 옆에 펼쳐두고 더듬거리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어찌어찌 찬양을 하고 기도회가 끝났어요.
그렇게 몇년을 기도회 때 기타를 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타를 정말 잘치는 친구에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알려주는 리듬을 하나도 못 치겠는거에요.
내 느낌대로 스트록을 해오다보니까 그것이 제 습관으로 굳어버린거에요.
결국 저는 저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친구에게 기타 배우는 것에 실패했어요.
이스라엘이 그랬던거에요.
400년 430년동안 노예로 살아가면서, 이상한 습관이 생겼어요.
하나님을 진짜 예배하지 않으면서, 예배한다고 착각하는 그리고 온통 불평만하는 습관이 들어버린거에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주셨고, 약속의 땅 앞에까지 데려가셨지만 차마 이들을 그 약속의 땅으로 보낼 수 없으셨어요.
이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자신들을 그 곳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이 분명했거든요.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다가오지 않는,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지 않을 것이 분명했거든요.
40년동안 광야에서 지내지 않고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어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배 했을거에요.
하지만 전혀 마음이 담기지 않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 가득한 채로 예배를 드렸을거에요.
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기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기타 칠 수 있어요. 기타 들고 찬양인도 가능해요.
하지만 그래서 더 문제에요.
그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거든요.
습관을 버리지 못했지만 저는 어떤 찬양이던 맞춰서 기타를 반주 할 수 있거든요.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드려서 습관을 버리지 않아도 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 노력하지 않아요.
(쉬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에요.
만약 그들이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면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에요.
그저 해왔던데로, 습관처럼 하나님 말씀을 읽고 아멘하면서 예배를 드렸을거에요. 아무런 감정도 마음도 없으면서 예배를 드리는 종교행위를 했을거에요.
하나님과 친해지려는, 알려고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을거에요.
(5초 쉬고) 여러분은 어떤 습관을 갖고 있어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죠. 한번 습관이 들고나면 버리기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 잖아요.
여러분은 어떤 습관을 갖고 있어요?
하루를 살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 혹은 행동은 무엇인가요?
(쉬고) 나에게 익숙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진짜 쉽지 않아요.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이스라엘은 400년 430년을 노예로 살면서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이 이상하게 변했어요.
못된 습관이 생긴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40년동안 광야에서 살게 하시면서, 못된 습관들을 버리고 제대로 된, 바른 모습을 갖도록 하셨어요.
(쉬고) 그들이 살고 있는 광야는 사막이에요.
아무 것도 없어요. 사막에 가보니까요 진짜 모래밖에 없더라구요.
낙타몰이꾼들 말로는 사막에 길이 있다는데, 제가 봤을 때 보이는 길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진짜 온통 모래 뿐인데, 낙타몰이꾼들은 길을 기가 막히게 찾아 가더라구요.
베이스 캠프에 데려다 주면서 하루 자고 내일 만나자고 하면서 그들은 사라졌어요.
이대로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길과 모래 뿐이었어요.
광야는 길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랑 가야 해요. 그래야 살아나올 수 있어요.
(쉬고) 제가 필리핀에서 살 때 목사님께서 운전을 해야 하는데 길을 모르니까 네비게이션을 하나 구매하셨어요.
그런데 이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어요.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네비게이션이 자꾸 시내 밖으로 외각으로 나가게 하는거에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가는데, 갑자기 바다가 나왔어요.
갑자기 네비가 바다를 가르키면서 “Go straight” “Just Go straight”라고 하면서 울기 시작하는거에요.
네비가 알려주는데로 갔다면? 저와 목사님은 물에 빠졌을거에요.
(쉬고) 광야는 길을 정확히 아는 사람과 함께 가야해요. 그래야 목적지에 갈 수 있어요.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광야의 길을 가장 잘 아는 분은 하나님이셨어요.
길과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계신 분께서 일부러 그들을 40년 동안 돌고 도는 삶을 살도록 하셨어요.
바다로 직진하라고 했던 네비게이션처럼 길을 몰라서, 이상하게 작동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갖고 광야에 살게 하신거에요.

2. 은혜를 경험한 이후

(5초 쉬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 습관대로 계속 불평해요.
“차라리 노예로 살때가 더 행복했다. 그때는 내가 마음 껏 고기와 떡을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는데, 지금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라고 불평해요.
그런데 여러분 이거 거짓말이에요.
이스라엘은 불평을 하다하다 이젠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거에요.
노예가 어떻게 마음 껏 고기와 떡을 배부르게 먹겠어요. 다 주인의 것인데 어떻게 노예가 함부로 그 것들을 소비할 수 있곘어요.
(쉬고) 왜 이렇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불평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 앞의 15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진짜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물이 귀한 사막에서 최소 60만명 최대 200만명 그리고 수만마리의 소, 양과 같은 짐승들이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셔도 남아도는 샘 열두개에서 그들이 시간을 보냈어요.
광야에 나와 고생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샘 열두개를 주셔서 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어요.
(쉬고) 그렇게 샘 열두개에 배터지게 마시고 쉬다가 길을 떠난 이스라엘은 “조금만 더 가면 또 샘이 있을거야” “조금만 더 가면 먹을 것이 있을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가도 물도 먹을 것도 보이지 않는거에요.
하나님께서 “조금만 가면 또 물이 있을거야”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한거에요.
그런데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이제는 막 화를 내며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죠.
(쉬고) 점점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너무 더우니까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한 이스라엘은 습관적으로 불평하기 시작해요.
불평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바라본다는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은혜를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달라는 거에요.
“우상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지금 주세요.”
“이렇게 할거면 왜 나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차라리 우상이 낫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주시고 빠지세요”
불평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어요.
(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데, 성경은 “양식을 비같이 내리게 하셨다.”라고 말해요.
혹시 만나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있을까요?
만나는 “이게 뭐여?”라는 뜻이에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고소하고 맛있는 만나를 주시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5일동안 매일 아침마다 거두어가되, 6일째 되는 날은 이틀치를 거두라”고 하세요.
그런데 또 말 안듣고 매일 먹을 것을 거두지 않고 더 많이 거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정해주신 양을 넘어서 가져간 만나는 다음 날 아침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먹을 것이 없어도, 넘치게 주어도 만족하지 못해 불평하는 습관을 가진 이스라엘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더 많이 가져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만큼 주신다. 주신 것에 감사하라.”
“무지성으로 불평하지 말고, 받은 것에 대해 먼저 감사하라”

깨달아야 할 것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습관적인 불평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셨어요.
주위에 먹을 것도 없고, 모래밖에 없는 광야이지만 아무 걱정하지 말라. 내가 함께한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셨어요.
애굽에서 나와서 자유를 얻었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삶은 노예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아무리 오늘을 열심히 살아도 노예 때처럼,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모래 위에 있었어요.
내일을 기대하거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노예 때처럼, 그들은 광야에서 어떤 꿈도 가지지 못했어요.
노예 시절에도 풍족하게 먹지 못했는데, 광야에서는 더 먹을게 없어요.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이 불평하는 것이 당연해보여요.
저였어도 당연히 불평했을거에요.
약속의 땅에 데려가 준다고 애굽에서 꺼내놓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데다가 여전히 나는 모래 위에서 살고 있어요.
모래를 침대 삼아 누워서 자야하고, 아침에 눈을 떠도 모래밖에 없어요.
조금이라도 풍경이 바뀌면 기대라도 하겠는데 맨날 똑같아요.
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어요.
그들은 자유. 구원을 받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샘 열두개에서 충분히 쉬었어요.
60만 200만 수많은 가축들이 굶어죽지 않았고, 아무런 사고도 나지 않았어요.
이미 충분히 넘치게 받았는데도 그들은, 지금 잠시 나에게 없는 것만을 보면서 불평만 하고 있어요.
(쉬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말로 믿고 있어요?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5초 쉬고) 지난 주 두 렙돈을 낸 과부 이야기 기억하세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하나님께 다 드렸어요. 그 돈 없으면 내가 굶어죽을 수도 있지만 드렸어요.
왜요?
자신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돈이 없어도 나에겐 하나님이 있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쉬고)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혹시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하나님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있지는 않았어요?
(쉬고) 혹시 하나님보다 나에게 더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에서 힘과 위로를 받으려고 했어요.
다시 애굽에 노예가 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을거라 생각했어요.
다시 노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거에요.
그래서 계속 불평한거에요.
(쉬고) 여러분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면서,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불평하는 습관이 생길거에요.
(쉬고) 어쩌면 이미 생겼을지도 모르죠.
혹시 내가 여기에 속하지 않은가 잘 살펴 보세요.
첫째, 감사보다 불평이 많다. 혹은 감사도 불평도 없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말이 거칠거나 행동을 함부로 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에요.
이 것은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에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과 행동에 조심을 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학교에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들 꽤 있죠?
그 친구들에게 “하나님” “예수님”의 이미지는 “여러분을 통해 만들어져요”
내가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사랑하고 섬겨준다면, 그 친구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겠지만,
조심하지 않고 막 행동하고 말을 한다면, 그 친구들에게 하나님은 “함부로 하는 하나님”이 될거에요.
불평도 감사도 아예 없거나, 불평이 더 많은 상태라면, 아직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는 것이 어색한 상태에요.
(쉬고) 둘째, 기도하지 않는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기도가 없는 삶 혹은 밥 먹을 때 빼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요.
하나님과 친해지면 피곤하니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겠다. 라는 표현과 같아요.
(쉬고) 기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뭔지 아세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있지만, 기도를 길게 해야 한다라는 막연한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기도를 길게 해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기도를 하겠다. 해보자. 짧더라도 할거야! 라고 마음을 먹고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요.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마음을 다 열어 두셨어요.
부르기만 하면 “어 그래 나 여기 있어!”라고 말씀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세요.
30분, 1시간 이상 기도해야 응답하는 치사한 분이 절대 아니에요.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는 마음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계셔요.
두 렙돈을 드린 여인처럼,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눈을 감고 “하나님!”하고 부르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계셔요.
혹시 기도 아니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평소에 없었다면, 아직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는 것이 굉장히 어색한 상태라는거에요.
(쉬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이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먼저 오늘 나눠 주는 이 감사노트를 집에 들고 가세요.
자기전에 하루에 한가지씩 (더 써도 괜찮아요) 감사했던 일을 쓰는거에요.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 하루 지켜주셔서 감사해요.도 괜찮아요.
중요한 것은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쓰는거에요.
불평이 습관인 것처럼, 감사도 습관이 될 수 있어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불평의 습관을 벗어버릴 수 있어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내가 감사했던 일을 셀 방에서 나누세요.
“아 이런 부분까지 감사할 수 있는거구나!” 서로에게 알려주는거에요.
감사노트를 쓰고 기도하고 자는거에요.
기도하는 것은 인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만약 할 수 있다면 학교에서 점심시간 등에 만나서 잠깐 기도하세요. 학교에 기도 모임이 있거나, 만들고 싶다면 저에게 말하세요.
감사노트를 쓰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그 감사가 정말 나의 고백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에요.
하나님께 진짜 감사를 고백도록 하기 위해서에요.
(쉬고)
중요한 것은 기도와 감사를 함께 실천하며 사는거에요.
그래야 내가 갖고 있는 불평의 습관 혹은 그 이상의 나쁜 습관들을 다 고칠 수 있어요.
귀찮더라도 해야, 우리 마음의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어요.
작지만 이 것을 실천하면, 우리 마음에 변화의 은혜가 계속해서 생겨날거에요.
(쉬고) 여러분 우리 함께 해봐요. 저도 감사노트를 작성할게요.
다음 주에 만났을 때, 한주간 감사했던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우리 자유교회가 되기를 바래요. 셀에서 나눌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길 바래요.
꼭 이 두가지를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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