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의 사람, 모세

부르심의 사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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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많으신 주님, 이 시간 정결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기 원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힘입어 나아갑니다. 주께서 보혈로 저희를 새롭게 하시고, 깨끗케하여 주옵소서.
요셉과 함께 하신 주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케 하셨던 것처럼, 이 자리에 함께 하는 모든 지체들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지켜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귀한 지체들 형통케하시고, 간구하는 필요들 채워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물질을 구별하여 주께 믿음과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 주님께서 더욱 크신 하늘의 축복을 허락하시고, 세상의 방식이 아닌, 주님의 방식으로 이들의 기업을 풍성케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으로 호흡하시는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각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고, 필요한 말씀들 전해지게 하시며, 보다 성경의 말씀이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에 아로새겨진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고 돌아가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모세
Main-point. 신을 벗으며, 가라, 그러나 불이신 하나님을 힘입고 가라.
특히나 추운 날씨에 따스한 온기를 주는 불멍, 오늘 모세는 불멍의 힐링을 가장 먼저 경험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을 인간에게 건내줌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고통받게 했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그만큼 불은 특별한 힘을 상징합니다.
불은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하며,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성경 가운데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15장에서 언약을 맺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이 불로서 등장했고,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불기둥으로 역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면서도 산에 불과 같이 보이셨습니다.
오늘 모세가 마주한 장면에서 가장 메인적인 부분은 떨기나무에 타지 않는 불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아주 특별한 것은 타지 않는 불로서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께서 불로 나타내십니다. 왜 불로 나타나실까요. 불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신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면서, “스스로 계시는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바로 떨기나무에 계시되, 태우지 않는 불로서 임재하신 것이 더욱 효과적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인생은 이후로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무너지지 않는 인생을 경험합니다. 오히려 그는 지상의 가장 온유한 자라. 하나님과 대면하여 알았던 자라고 부르십니다. 이러한 모세를 통해서 다시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살피기 원합니다.
도무지 하나님께서는 언제 부르시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은 입체적이다.
1) (개인의 축) 모세가 하나님을 찾았을 때이다. (출 3:1)
원래 모세는 잘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뻔했지만, 오히려 왕궁 바로의 딸에게 입양되어 길러졌습니다. 이집트 왕자나, 학자들도 일면 그가 길러졌던 왕녀는 역사적인 인물로는 하셉수트로 당시 정치계에 실권을 가진 여인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공주의 아들로 부와 영광을 다 누릴 수 있지만, 이를 거절하듯, 민족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몇몇 과정을 거쳐서 그는 살인자가 되었고, 표적이 되어서 도망자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애굽에서 40년, 떠나온 도망자의 삶 40년, 어느새 인생의 2/3 지점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출애굽기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공동체의 축)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족적인 부르짖음이 상달되었던 때이다.(출 2:23-25) - 출 3:7
출애굽기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3) (악의 축) 가나안 땅의 사람들의 죄가 가득 찰 때이다.(창 15:16) - 출 3:8
창세기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2. ‘떨기나무에 입혀진 불’의 모습으로 부르신다.
4) 모세의 입장에서는 가장 불합리한 시점이다.
애굽의 왕자의 때가 아니다. 떨기나무와 같은 시점이다.
출애굽기 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성경에서 이름은 부모의 심정이 담기기도 함.
원래 모세는 아들이 2명이다. 그런데 한명의 이름만 이곳에 등장한다. 다른 한명은 18장에 가서야 등장한다. 그렇다고 애를 뒤에 낳았느냐. 아니다. 4장에 보면 애굽을 향해 가는 아이의 숫자가 2명이다. 의도적으로 한명만 언급하고 있다.
-게르솜: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출 2:22), 그가 다시 돌아가야 함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연약하고, 나약한 상태임을 말하기도 한다. 나그네라는 용어가 이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돌아갈 곳을 떠나있는 존재가 나그네이다. 그러나 또 한편 힘이 없어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또한 나그네이다. 떨기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무엇으로 쓸 수 없는 나무, 소모되는 나무일 뿐이다. 덤불나무이기에 불에 잘 타는 나무이다. 목재로 쓰거나 열매를 내는 나무가 아니다. 때로는 이 떨기나무 가시떨기, 또는 가시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나무 자체로도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 가시까지 있는 나무이다.
-엘리에셀: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출 18:4), 처음 바로로 부터 구원받았음을 상징하겠지만, 이것이 홍해 사건 이후에 언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호렙산 떨기나무 전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언급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명의 과업, 가장 큰 과업 애굽으로 민족적으로 자유롭게 되었을 때, 둘째 아들에 대한 고백이 주어진다.
*세상적으로는 가장 불합리한 순간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가장 적합한 때이시다.
이전에 모세가 힘과 권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도 속에서 그가 활동하기에는 무수히 많은 제약이 있었다.
계략을 세우고, 그의 힘으로 무언가 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비질란테, 사형투표 등의 느낌이다. 은밀하게 의를 행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불의이다. (출 2:12-14)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의 왕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출애굽기 2:12–13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출애굽기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그러나 이러한 과정 또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제도 밖에서도 일하심을 보여주신다(히 11:24-25).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Romans 8:28 NKRV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도, 모세도 그렇다.
하나님의 능하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고린도후서 12:9 (NKRV)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기 3장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모세를 설득해나가신다.
1)내가 누구이기에
2)동족에게 여호와의 이름은 무엇이라
3)바로와 애굽인들이 모세를 믿지 못함(표징)
“사흘길 광야로 가도록,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함”
4)말 못함(히브리어)
5)다른 이
3. 신을 벗기시고, 새롭게 덧입히시고, 보내신다.(출 3:5, 9)
출애굽기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의 부르심은 계속해서 그를 벗겨내신다. 신을 벗겨내신 것처럼, 왕자의 방식, 애굽의 방식을 벗겨내신다.
모세: 왕자-40년, 미디안-40년(장인의 양), 부르심
부르심 이후에도 모세는 정작 간절히 만나고자 했던 하나님을 만났지만,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찌보면 그는 어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신다.
출애굽기 3: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또한 그를 이전에 인간의 방식, 애굽의 방식으로 실패했던 곳으로 다시 보내신다.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하나님께서는 의외의 곳으로 보내시기도 하신다. 마음 한켠에서 가장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은 곳,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보내신다. 그렇기에 모세는 또한 하나님께 길고 긴 실랑이 같은 질문을 연이어 나간다.
11절 이후에 모세는 계속해서 묻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어서 철저하게 묻는 과정이 연이어진다. 4장 중반부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귀찮아하시지도, 또 왜 이리 불신하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물론 맨 마지막 다른 이를 보내라는 말씀에만 화를 내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옷 입히시는 것이다. 타지 않는 불로서 그를 입히시는 과정이다.
출애굽기 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우리가 때로는 준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의 친밀하심을 나타내시면서 깊은 훈련의 과정을 시작하신다.
모세의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시는 바는 성경의 분량과도 같다.
전반기와 중반기 80년은 성경의 1-2장에 불과하지만, 이후 40년은 그의 인생과 사명의 시간들로서 창세기와 출애굽기 1-2장을 제외하는 모세오경 전반이 그의 여생과도 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하나님과 나눈 친밀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출애굽기 33:11 (NKRV)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그러하기에 우리 또한 늘 거룩한 임재의 자리를 구하며, 그 자리에서 나의 것, 나의 부정한 것들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들로 나아가기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제 가라”고 하시지만, 그곳은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곳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또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하게 있을 수 있는 자리이다.
출애굽기 3:9 (NKRV)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학대받는 자들이 있는 곳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다시 전하며, 하나님을 함께 예배함으로 초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신명기 33:16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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