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런 주님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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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의 영광(막 9:2-4)

오늘도 주의 은혜를 사모하여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분들께 우리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직전 주일인 ‘산상변모주일’이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기를 대신 짊어 지시기 전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산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영광스러운 변화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변화된 주님을 알아보고 따르게 되는 은혜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성경에서 지대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늘 하나님과 영적인 교감이 깊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게 되는 것을 말해준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서 하나님을 만났고, 삼손은 소라에서 내려올 때마다 사사로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도 산으로 오르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지시기 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문 2절에서 예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 변형되었다고 말한다. ‘변형되다’는 말 그대로 어떤 새로운 존재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서 ‘변형되사’라는 말이 예수께서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여 변호가 일으킨 뜻을 가진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의 변화는 스스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변화된 것을 말한다.
마가는 그 모습을 3절에서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고 말했다. 정말로 남루했던 예수의 옷이 빨래를 한 것처럼 변한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한 것을 말한 것이다.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 예수의 옆에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의 옆에 나타난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지자였다. 특히 이 두 사람은 에녹과 함께 죽음을 보지 않는 자들이었다. 왕하 2:11 에서 엘리야는 엘리사가 지켜 보는 가운데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
그런데 모세는 성경 어디에도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승천했다는 기록이 없다. 대신 모세는 느보산에서 불가사의하게 사라져 그의 알려진 무덤이 없다(신 34:5-6). 그래서 유대의 전승은 모세도 승천했을 것이라 사람들 사이에 전해졌다.
제자들의 놀람은 당연하다. 바로 산 밑에서 자신들과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했던 주님이 초월적인 존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게가다 초월적인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는 지금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엘리야와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위대한 선지자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세상에 올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세례 요한이 타났을 때 그렇게 착각했고, 또 막 8 에서 예수를 향해서도 그러한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예수는 이들과 다르며 더 놀라운 분이시다. 이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가간 이들이지만,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후 다시 3일 만에 부활하고 40일을 세상에 계시다 승천하셨다.
마가는 오늘 본문을 읽는 사람들, 특별히 마가복음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란 암시를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께서는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분이심을 깨닫고 만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소리 (막 9:5-7a)

베드로는 이 초월적인 광경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베드로가 한 말은 5절에서 마가복음 9:5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라고 했다.
이런 베드로의 말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분을 만나면 마음 속에 있는 생각과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이 다를 때가 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런 모습은 주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거룩한 산 제물로 준비하는 것(변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산 제물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가 엘리야와 모세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가복음 8 에서 베드로는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란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받은 자입니다”라는 말이다.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했다.
그런데 여전히 베드로는 주님을 메시아로서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3일만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실 때,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 내놓고 선포하실 때 그것을 가로막다 책망받았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빌립보에서 자신이 했던 고백도 잊어버렸고,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라고 드러내고 선포한 것도 잊어 버렸다. 눈 앞에서 변화된 예수를 보고 그와 함께 있던 엘리야와 모세를 보게 되자 이번엔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머물러 살자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가는 “그들이 못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고 말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다 함께 본문 7절을 읽자.
Mark 9:7 NKRV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마가는 다시 한번 더 베드로가 예수가 메시아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아직도 예수가 메시아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음성을 빌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메시아임을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 7절은 마가복음 1 에서 예수가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와 같은 소리이다. 마가복음 1:11 은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고 말한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려는 예수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로 인정하셨다.
그리고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 지셨다.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의 목숨을 구원해 주셨다. 예수는 자기 죄가 아닌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3-6 에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어두운 마음으로 인하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란 사실이 가려 있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그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셔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말한다.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백의 절정은 예수의 처형을 담당했던 백부장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마가복음 15 에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 달리고 나서도 갖은 모욕과 매질을 당했다. 그렇게 피가 철철 흘러 내리면서도 십자가 위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 보았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c)라고 고백했다.
빛이 어두움을 비추니 예수가 메시아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백부장의 고백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고백이었다. 구원의 은혜는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가 허락되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b)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의 말을 들으라 하셨다. 7절의 ‘들으라’는 말은 귀가 열려 있으니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그냥 들으라는 말이 아니다. ‘귀를 기울여 듣다’라는 의미이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경청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같은 단어가 사도행전 10:44 에서 고넬료와 함께 집 안에 있던 이방인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들을 때 같은 단어가 사용됐다. 이때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말씀을 경청했을 때 성령이 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 임했다. 그리고 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는 주님의 모습을 닮는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예수의 말을 허툴게 듣지 말고 귀를 기울여 마음으로 들으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도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9)라고 하셨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했다. 귀를 기울여 마음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에 목마르지 않는 사람들, 자기 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전혀 변화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녀도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찾아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요 8:31b)라고 하셨다. 제자는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의 말을 경청하고 따르는 자가 제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제자라고 고백한다면,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한다면 이제는 진정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원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께서는 모두가 높아지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낮춰 병들고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의 자리로 오셨다. 무언가를 해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이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보잘 것 없는 삶은 사는 이라해도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주님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사실을 말로가 아닌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은 무기력하지 않았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은 무기력한 삶에서 깨어나 역사의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따라 나서야 한다. 변화될 부분이 많을 수도 있다. 아무리 변화가 많이 일어나야 한다 할지라도 영광스런 주님을 알아차리고 만나면 변하게 되어 있다. 내 삶의 변화, 우리 교회의 변화, 지역의 변화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다. 주님의 변화를 기념하는 오늘 이 주일부터 우리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 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4년 갑진년이 벌써 한달하고 열흘이 지났다.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영광스런 주님을 만나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라.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구원의 감격이 회복 될 것이고, 삶이 변화 될 것이고,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변하며, 우리는 주님을 더욱 닮게 될 것이다. 이런 귀한 은혜의 간증을 끊임없이 나누게 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섬기며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게 하여주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언제나 함께 하여주시며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주시며 일으키며 살게 해 주옵소서. 영광스런 주님을 끝까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송: 137장 하나님의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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