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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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게

마가복음 14:1–11 (NKRV)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대재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냐하면 유월절과 무교절을 이틀 앞둔 날이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둘다 출애굽과 관련된 절기이다. 다시말해 그들이 그들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구원을 받은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과 무교절은 매우 중요한 날이다. 절기대로는 유월절 다음날부터 무교절이 7일간 이어진다.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급히 탈출하느라 빵을 발효시킬 겨를이 없어 누룩 없는 빵을 먹었던 일을 되새기는 날)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가족이 함께 모여 어린양, 포도주, 쓴 나물, 무교병이 포함된 특별한 식사를 한다.
이렇게 유월절을 앞두고 유대인들이 하는 것은 이 절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이야기하고 기념한다.
모든 유대인들이 이처럼 유월절과 절기를 준비하는데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잡아 죽일 계획을 새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더이상 절기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절기보단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우선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안에도 이러한 마음이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절기를 기념하는 것은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더나아가 그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 또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에서 기념하는 절기를 쉽게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개인적인 날도 기념하지 않는가? 왜 그 날을 기념하는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 날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된다. 사순절을 기념하기 위해 다음주부터 청년교회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 잘 참여하길 바란다.
여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절기를 준비하지 않고 자신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진행하려 한다는 것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한 증거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우선순위를 온전히 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믿음이고 신앙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런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계획을 한 종교지도자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피하자고 말을 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 할 것이 두려워서이다. 이들은 이러한 행동은 비겁하다. 이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눈이 중요하였다. 물론 현재 목회자로써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사람들의 눈을 기준으로 삼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리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종교 지도자들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결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준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기준이 되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온전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판단하였을 때 예수님이 이단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던 예수님을 죽였어야 맞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언제나 항상 뒤에서만 속삭였지 대중들 가운데서 선포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올바른 종교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시몬이라고 하는 집에 식사를 하러 가셨다. 그런데 일이 생겼는데 한 여자가 매우 비싼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이 여인에게 화를 내었다. 그 이유는 여인이 향유를 낭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향유를 팔아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울 수 있는데 그것을 왜 다 버리냐는 것이다. 제자들이 그렇게 말 할 수도 있는것이 깨트린 향유를 3백 데나리온에 팔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1데나리온이 남자 성인의 하루치 품삯이다. 그러니 300데나리온은 1년치 연봉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이 이렇게 벌쩍 뛰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제자들이 화를 내며 여인을 책망한 이유는 그 비싼 향유를 낭비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을 위해 한 행동임에도 제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것이 낭비가 된 것이다. 지금 제자들은 여인이 예수님께 한 행동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도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하는 행동을 바라보며 그것이 낭비라고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 제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예수님이 칭찬해주시리라 생각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늘 가는 곳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이 잘하고 있다며 여인을 칭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녀의 행동이 당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좋은 일이라고 선언해 주셨다.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헌신을 평가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분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누군가의 헌신을 내 잣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한분 주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무엇인가? 우선순위인 것이다. 그 무엇도 주님을 예배 하는 것보다 먼저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예배 드리러 오다가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을 무시하고 에배를 먼저 드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유와 목적이 그것도 예수님을 예배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도 예수님께 예배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연인의 행동은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일이었다. 인류의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실 주님을 위한 일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든 도울 수 있지만, 주님은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실 것이다. 따라서 여인의 행동은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성도는 헌신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워야 한다.
지금 해야 할 것이 있고, 나중에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주님 안에서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을 할 때 우리는 그누구의 시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시선만을 의식해야 한다. 그것이 옳고 틀리고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신다. 여인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은 제자들의 관점과 전혀 다르다.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여인이 행한 일도 전해져 기억되리라고 선언하신다. 주님을 위한 헌신의 행위는 잊히지 않는다. 주님이 기억하시고 칭찬해 주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베푸는 작은 섬김도 주님이 다 기억해 주시기에 우리의 수고는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는다. 주님이 보상해 주실 것이다.
이와반대로 가룟유다는 최고의 헌신을 드린 여인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몸값을 흥정한다. 그가 왜 이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던 그것은 가룟유다의 욕심인 것이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얻을 것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더는 예수님을 따라다녀 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유다는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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