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사랑합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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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사랑합시다.2
오늘은 2주전 설교에 이어서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의 2번째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서로 인사 나눌까요?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제가 지난 주는 라오스에 단기선교여행을 다녀와서 여러분을 못 뵈었습니다. 2주만에 여러분을 만나니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2주전에 오늘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는 이유 3가지를 말씀 드렸는데 기억하시는 분 혹시 있으신가요? 첫째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면 부모를 닮아 가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했고요, 두번째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창조를 통해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우리가 사랑할 때 그것이 거듭났다는 증거가 됩니다.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드러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지막은 영적 지식을 가진 것,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말씀: 요한일서 4장 7-11절]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음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인사말-도입]
오늘의 말씀도 형제 사랑이 주제입니다. 지난 시간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와 18장 ‘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 비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형제 사랑은 잘생기고 능력 있고 학벌과 좋은 직장을 가진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낮은 자, 그러면서도 어리석고 연약한 지체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열심이 있어서 리더나 엘더나 찬양팀에서 봉사하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왔다 가는 한 사람, 아무런 관심도 가지 않는 한사람, 새로 등록한 사람, 수군거리는 나쁜 태도를 가진 약한 사람, 자기 자랑이 넘치는 연약한 사람, 단정하지 못한 사람, 경건하지 못한 사람, 병들고 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사랑이 아니어서 우리 안에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는 도저히 행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 안에 있노라! 하면서도 스스로 열등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죄에 대한 지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다는 지식 말입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지식 말입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자각이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해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가 죄인임을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를 오늘 같이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죄인에 대한 자각입니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선한 행실을 자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그 마음의 동기까지 명명백백 드러나면 누가 있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 있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의 선한 행실 조차도 그 밑바닥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혹시 동의 못하시는 분이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지! 나는 십일조도 잘 내고 예배도 잘 드리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잘 돕는 편이잖아요!” 이런 생각이 들면 성령의 빛 비추임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간증)”23세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믿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알았지만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고 교회가 사회정의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불의한 권력에 협력하는 모습에 분노하여 비판적이고 대적하는 사람이었고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혁명을 꿈꾸며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갈수록 처음의 사랑은 식어가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은 점점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나는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고 괴로워 했습니다. 심할 때는 구원의 문제까지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왜 거룩하지 못하지? 나의 믿음이 잘 못되었나?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할까? 내게 주님이 말씀하신 자유 함이 가능할까? 그렇게 30년을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교사로 순장으로 집사로 겉모습은 거룩하였지만 개인적인 삶, 교회밖의 삶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삶입니다. 당연히 아무런 열매도 없습니다. 누구도 나를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는 경건한 사람을 뽑으면 항상 먼저 뽑히는 사람 이였고, 선교사님들 지원하는 선교헌금과 구제의 열심으로 알아주는 신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의 빛 비추임이 제게 임합니다. 그날도 성경을 읽고 있을 때였는데 너무도 내 자신의 추악함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연민이 생겨서 통회하며 하나님께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 도저히 이렇게 살수가 없어요! 이제 세상과 하나님 모두를 사랑하는 삶에 지쳤습니다. 진절머리가 납니다. 저 좀 어떻게 해주세요! 마구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그때 저의 모든 죄를 보여 주십니다. ‘저의 추악한 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기사랑, 자기방어, 자기의, 자기연민, 자기기만, 끝없는 이기적이고 교만한 생각, 선한 행실들 속에도 도사리고 있던 더럽고 역겨운 위선을 보게 하셔서 회개의 길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저는 세상에 다시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을 때, 회개하였을 때 이런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나의 죄값을 치르셨다는 사실이, 그 사랑이 벅차 올라서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려 하셨음이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불멸의 존재인 하나님이 유한한 시공간에 찾아 오셔서 죽으시는 이 이해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지? 그분이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수가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하던 사업도 내려놓고 이제 남은 인생을 오로지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으로 신대원에 진학을 해서 오늘 이자리에 서있는 것입니다. 간증을 하자면 몇 날 몇일을 다해도 끝이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고쳐 쓸 수가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제불능의 죄를 깊이 알면 알수록 우리에게 은혜가 더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온 몸으로 받아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두움속에 있으면 어두움이 잘 보이지 않듯이 빛이 내속에 어두움을 비치기 전에는 내 안에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세리와 창녀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마태복음 23장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바리새인과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통렬한 질책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선하고 착하게 살고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경쟁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세상 종교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가 얼마나 무가치한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은혜를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십자가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인간의 자존심(자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사도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10절,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는 앞에서 말한 것을 잘 정리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 스스로 선한 것) 이 아니라고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바로 (은혜) 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였을 때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게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마침표인 십자가를 깊이 바라보고 묵상할 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아 알때만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오직 한가지는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행전 13:38–39 입니다.
[본론]
두번째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게 인식하고 인정하면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무안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게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오늘 본문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음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앞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 사랑이 죄인을 사랑한 놀라운 사랑이라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제대로 알았다면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도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말을 더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주제인 ‘우리 서로 사랑하자’는 권유보다 명령, 명령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자연적인 사랑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본문 7-8절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새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8절 후반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말씀을 따라 그분의 본성을 받은 존재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제 자연적인 사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세상속에 있고 세상을 사랑할 때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자연적인 사랑이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자연적인 본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조금도 봐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무가치한 자신을 인식할 때 그 무가치한 자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조차 ‘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방심해도 우리의 자아는 다시 살아나, 우리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선한 사람으로, 나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사랑, 자기 기만이 복음의 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속의 사랑을 받아 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나의 죄를 죄 없는 다른 사람이 대신 값을 치루나? 하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저의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작년에 신대원을 다니던 중의 일입니다. 합신 신대원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학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저를 더 괴롭히는 일은 학교의 행정이 너무 체계가 없고 원칙과 프로세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쌓이고 쌓여서 마음속에 분노가 일었습니다. 이것은 학교가 학생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이다. 실수가 아니다. 이런 일을 가만히 두면 개선이 되지 않고 반복된다. 이것은 순종이 아니다. 강력하게 학교에 항의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학교 행정을 맡은 사람들에게 눈물이 나도록 혼꾸멍을 내줄까? 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처럼 힘들어 하는 동기들이 있어서 같이 세를 규합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십니다. 태형아! 네가 화내는 것이 정당하니?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네가 내 종이 되겠다고 하더니 종이 무슨 자존심이 있니? 종은 주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종에 대한 평가와 모든 것은 주인에게 있다. 너는 너를 위해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순간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게 대접받는 것은 저의 형편과 실재 모습을 알면 너무도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의 외적인 모습을 근거하여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제 속에 더러움은 그들이 절대 알 수가 없지만 저 자신과 하나님만은 아십니다. 제가 또 다시 저를 기만하였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였습니다. 주님! 저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학교 행정에 대한 일은 총장님과 대화를 통해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회개 이전의 저의 자아가 살이 있는 마음으로 대화를 했으면 결과는 같아도 불편한 자리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같은 행동에도 다른 동기가 있습니다. 나의 자아를 충족 시키는 동기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한 동기가 다릅니다. 선해 보이는 일에도 그 동기가 바르지 못하면 열매가 씁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결론]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수시로 여전히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고 나에게 부당한 대접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솔직히 주님 앞에 나아가서 여러분의 마음을 바라보시고, 주님이 빛 비추어 주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하나님은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다 그대로 걷으리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기만의 선수입니다. 자신의 삶에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일이 가득하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어 평안과 기쁨을 빼앗아 갑니까? 요10:9-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빼앗으려는 것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 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변의 형제자매의 모습속에 시험을 받고 자그마한 티끌도 용납이 안되십니까? 잘못된 모습을 보면 지적을 하여 고쳐주지 못하여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도움이 필요하거나 부족한 지체를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섬기는 것이 수고롭고 번거로우신 가요?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주님이 그 형제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우리의 옛사람을 못박고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서로 사랑하자는 말은 지킬 수 없는 또 하나의 율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위대한 로마서 8장 3-4말씀을 보십시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통해서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십자가 외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읽고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9-12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기도 하시겠습니다.
함께 찬양 하겠습니다. 우리 찬양을 한 후에 하나님의 빛 비춤을 통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에 대하여 깨닫고 그것을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시고 바라보시고 묵상합시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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