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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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님께서는 4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가버나움으로 향하십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바다, 북단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삶을 바꾼 예수님은 안식일이 도자 어부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있는 유대인 회당으로 향합니다.
21절에 회당에 가신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포와 연결되어지는 가르침이 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은 세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번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모두가 놀랐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사람들과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선포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어떤 종교지도자들의 권위보다 권위가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 하고 있고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었고, 확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같은 장소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더러운 영”에 사로 잡혀 자신의 뜻대로 살아 가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등장 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더러운 영은 자신이 사로 잡았던 사람의 입술을 통해 예수님께 이야기 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악한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일어 납니다. 더러운 영에 사로 잡힌 불행한 한 사람에게서 “더러운 영"을 떠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 복음을 통해 우리를 위해 악한 영의 세력들과 싸우시는 분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위해 분투 하시고 싸우시고, 승리하시는 분이 십니다.
악한 영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를 괴롭게 하고, 사람들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인도 하면서, 예수님께는 자신들의 멸하러 왔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일에 대해 비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습니다. 우리와 관련이 없다. 왜 우리를 간섭합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때 예수님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병든 자들에게 귀신 들린 자들이든 인간의 삶의 표면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대립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형태로 나타 나기도하며, 때로는 자연의 힘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의 인생가운데 재난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그 더러운 영을 꾸짖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꾸짖다는 스승이 제자를 꾸짖거나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 것과는 다른 말입니다. 더러운 영이 하는 일에 대해 금지 하고 중지하는 엄격한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피하지 않으시고 대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영과의 싸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세를 빼앗기 위해 오셨습니다. 악한 영들이 하는 말들은 예수님에 대한 저항이고 반항이었습니다. 설령 그것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말한 다고 하더라도 악한 영들에게 그것을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말할 권리도, 사람들을 소유할 권리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예수님은 자신을 숨기십니다. 가버나움의 많은 사람으로 부터 자신을 알아보는 귀신을 내어 쫒으실때, 한 나변환자를 깨끗게 하실때,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을 “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 할때 베드로로부터 그리스도라 고백을 받았을때, 변모 산에서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 실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함으로서 한 가지를 우리에게 주목하고 바라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꾸짖음으로 더러운 영은 더이상 버킬수가 없었습니다. 더러운 영은 사로 잡고 있던 사람을 발작하게 하면서 그 사람에게서 빠져 나갔습니다.
21-22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권위 있는 자와 같다”
27-28절 귀신을 쫓았을 때 대한 사람들의 반응: “권위 있는 새 가르침이다.”
가르침- 귀신을 쫒음- 가르침 이라고 글을 구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내어 쫓는 분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으로만 주목되기 원하지 않습니다. 축귀와 기적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귀신을 쫒았을때 기적을 행했을때 사람들에게 혼동과 오해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실제로 예수님이 미쳤다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축귀하시고 성공한 것이야 말로 바알 세불에게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 났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정말 그일이 일어 났는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이 하신 일인지, 사탄이 하는 일인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할 것입니다. 신비한 체험에만 몰두하고 말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잊어 버리고 하나님에 ㄷㅐ한 경외도 하나님께 대한 영광도 없을 것입니다. , 어려움에 쳐했던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귀신을 쫒고, 기적이 일어나며, 이것들이 확대되고 과장되는 것보다 우리가 더욱 집중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서 나타 나는가 하는 문제 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은, 기적과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수난과 고난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을 가르치시고, 삶을 깨우치는 참 스승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기적과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가운데 어떻게 임하는 지 가르치시고, 병들고 아파하고 고난당하는 자들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하시는지, 한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능은 기적과 카리스마의 과시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진정한 권능은 에수시아 말씀의 권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은 언제나 권능이 있습니다. 그가 말씀 하실때, 악령이 떠나가고, 풍랑이 잔잔케 되고 죽은자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실때 병든자가 치유되고, 그의 말씀에 대적자들이 굴복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의 말씀의 권위 앞에 진지하게 그 말씀을 들을때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적과 이적과 신비, 카리스마적 신비주의에서 벚어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만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