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5-45)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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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동트기 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 갈 곳을 정하십니다. 거기서 한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에 다시 한적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십니다.
먼저 35절에서 예수님은 새벽 밝기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 전날까지 예수님은 하루 종일 무리에서 둘러 쌓여 계셨지만, 다음날 날이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 즉 광야에서 기도하십니다. 광야에서 사역을 준비하셨던 예수님은 사역 내내 광야를 찾아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틈나는대로 예수님은 광야로 가셨습니다. 광야는 부당한 오해와 곤욕을 당하거나 그릇된 찬사와 기대를 한몸에 받을때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새롭게 결단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의 근원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떻씁니까? 우리는 더더욱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해야할 일들이고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부당한 오해나 곤욕이 있으면 하나님께 아뢰셔서 여러분들의 걸림돌들이 사라지고, 온전히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분에 넘친 찬사나 기대를 받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도록 기도함으로 어떠한 상황에도 잘난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 일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내려 주시는 일들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40절 부터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치십니다. 한 나병환자가 와서 예수님께 치유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즉시 그를 치유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셨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사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래 의미는 분노하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분노하셨을까요? 성경학자들은 나병환자가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수 있나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고 있었지만 나병환자를 치유하실 의도가 있는지에 관해 의심하였기에 이렇게 분노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왜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의심하였을까요? 탈무드에 보면 “병자는 그의 죄가 사함받기까지 그의 질병으로부터 치유된 것이 아니다”라는 랍비 히야라는 사람의 어록을 언급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병의 원인은 죄라고 생각했기에, 병자는 죄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나병환자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죄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병은 죄 때문에 생겼고, 죄 용서 없이는 치유될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환자는 치유를 받고 싶었지만 예수께서 자기와 같은 죄인도 용서하실지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합니까? “예수님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돌려서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대답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의 죄를 다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의 병도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병이 어떤 병입니까? 부정한 질병입니다. 그 어떤 사람과도 접촉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다 나을 때까지 마을 밖으로 격리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4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의 몸에 손을 대시어 치료하십니다. 소외된 자를 품기 위해서 예수님 스스로 율법을 넘어서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삶을 회복시킬수만 있다면 예수님은 스스로 정하신 율법도 어기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규정이라는 것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법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그 모든 규정과 법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회복시키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도 사람을 살려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속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려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약한 자들을 보듬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격리가 해제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의 통념대로 정결법을 이행하게 하셔서 사회의 일원으로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율법준수의 유무가 아니라 오로지 한 사람의 완전한 회복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황자를 치유하신 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치유로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려주는 기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닐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피신하십니다. 그들에게 군사적인 메시아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명하게 되시자 도시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계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한적한 곳인 광야로 몰려왔습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의 무대가 광야였던것처럼 예수님의 사역도 광야를 무대로 전개가 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찾아다니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자발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광야를 택하셧고, 사람들은 광야로 몰려왔습니다. 이처럼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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