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3 설교

10차 힌두권 선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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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남은 자

우리 힌두선교팀 여러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 모든 선교팀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선교지의 자리에서 크신 은혜로 함께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함께 말씀을 나누고, 또한 함께 기도함을 통해서 크신 은혜를 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로마서 말씀입니다. 저는 항상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에 대한 간단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신대원에서 그렇게 배우기도 했구요, 그렇게 나누었을 때, 더욱 말씀의 이해가 잘 되는 부분들이 있기에 그렇게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눌 로마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로 보내는 편지글입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울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이죠.
바울이 이런 식으로 각 교회에 편지로 전한 서신들이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등등 많은 서신들이 있죠.
그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로마서를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 담긴 성경으로 꼽는데요, 그것은 정말 이 로마서의 내용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논리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1장부터 이방인들이 죄인임을 드러내고, 2장에서는 유대인들도 죄인임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3장에서 모든 인류가 죄에 빠졌음을 나타내죠.
그리고 4장에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그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음을 말하고, 5장에서는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으나 또 한 사람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의롭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6장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어지는 7장에서는 율법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서 우리는 율법의 정죄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8장에서는 성령에 대해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로움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9장에서는 그 은혜가 택함받은 자들에게 허락되었음을 말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영역에 있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10장에서 그리스도와 말씀을 믿는 이들에게 그 구원이 허락되어있음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오늘의 11장 말씀인 것입니다.
11장 말씀까지는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 내용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요, 이어지는 12장부터는 성도들이 믿음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 어떤 것들이 필요한 것인지를 적용하는 내용들이 등장을 합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로마서의 말씀을 훑었는데요, 사실 바울의 이 복음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방인의 구원을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유대인에게는 한가지 큰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라는 것이죠.
출애굽기 19:5–6 NKRV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그랬기에 그들에게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유대 ‘민족’에 속하는 것이 중요했고, 할례를 통해 자신들의 민족이 되어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방 백성들에게는 구원이 허락되어있지 않다라고 여겼던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가 시작하는 1장부터 그 명제를 완전히 깨어버렸습니다.
로마서 1:17 NKRV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지금까지 유대인들에게 의인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유대인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바울이 뭐라고 한 것이죠? 믿음만 있으면 된다라고 주장을 한 것이죠.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죠? 이방인들도 죄가 많지만, 유대인 너희들도 죄가 많다.
너희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손을 펼치신다. 이런 이야기들을 한 것이죠.
이렇듯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할 정도로 이방인들에 대해서 진심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이방 민족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며 다녔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유대인들을 배제하고 싫어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 처음부터 등장하게 됩니다.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허락이 되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던 유대인들은 완전히 버리신 것이냐? 그렇지 않다. 내가 바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냐.
바울이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유대인인데, 나와 같은 유대인들을 쓰시지 않느냐. 이런 것이죠.
그러면서 2절부터 바울은 그 증거구절로 엘리야를 인용합니다.
3절과 4절에 이어지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인용된 내용은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내용이리라 생각됩니다.
엘리야하면 대표적인 사역인 갈멜산 전투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바알 선지자들과의 종교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모두 멸망시킨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으로 엄청난 거리를 도망하게 되죠.
그리고 엘리야는 지쳐서 로뎀나무에 앉아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힘을 내게 하시고 호렙산으로 엘리야를 데려가십니다.
그때 엘리야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고발을 한 것이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죄악에 완전히 물들여서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고, 이제는 저까지 죽이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 19:18 NKRV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가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수많은 백성들이 죄에 물들었지만, 칠천명의 죄에 물들지 않은 백성들을 남겨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바울은 이 남은 자 이미지를 사용하여서, 현재의 상황에 적용시킵니다.
유대인들이 선민사상에 젖어 그리스도를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핍박하는 죄악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유대인들 중에 남겨두신 자가 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은혜로 택하심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여긴 것이죠.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행위가 아닌 은혜라는 것이 택하심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어지는 6절에서 말하고 있죠.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원이 어떤 사람의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은혜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에도 택하신 자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렇게 선교를 할 수 있게 하는 큰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이 인도라는 먼 곳에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인도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어쩌면 이상한 잡신들을 섬기고, 소를 우상시하는 참 어려운 민족이라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 속에서, 복음전파라는 것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라고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처음 주변 분들에게 힌두권으로 선교를 간다라고 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이 바로 ‘힘든 곳으로 가네’ ‘쉽지 않겠다’ 이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물론 거리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이 인도라는 나라의 이미지에 담긴 종교적인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들어가기 어려운 나라라는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내내 이방인들을 바라보았던 모습처럼, 반대로 신약시대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바라보았던 모습처럼, 저들에게는 구원이 거의 없을거야! 라는 생각이 우리 가운데 있다라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죄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도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칠천명의 남은자들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서는 죄가 충만해보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에도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예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이 인도 땅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인도 땅에도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 택하신 남은 자들을 부르시기 위해, 지금 우리들을 이 자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 선교팀 가운데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사역의 자리에 나아가는 모습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7절부터 바울은 남은자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고, 오직 택함받은 자들만이 그것을 얻었고,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앞선 내용과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서 구원을 얻으려 했지만 그것을 얻지 못했죠.
대신 구원은 누구에게 허락되었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허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택함받았다라는 것의 의미는 반대로 어떤 이들이 있다는 것이죠? 택함받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의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 채 우둔해져버립니다. 여기서 우둔하다는 표현은 바보가 되었다라는 것보다는, 마치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 앞의 바로처럼, 완악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그 복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울은 이어지는 8절부터 10절까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29:10 NKRV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신명기 29:4 NKRV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백성들에게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행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택함받지 못한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행하셨음을 말하는 것이겠죠.
또한 시편의 말씀도 인용합니다.
시편 69:22–23 NKRV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이 역시도 말씀을 듣지 못하는 택함받지 못한 남은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택함받지 못하고 넘어지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구원이 열리게 되는 큰 은혜의 풍성함이 가능했음을 바울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선교의 자리에도 이와 같은 택함받지 못한 다른 의미의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우리를 흐린 눈으로 주시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이들의 행동이 우리가 나아가는 선교의 자리에, 또한 복음 선포의 자리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남은 자들로 인해 구원의 풍성함이 이루어졌다고 말이죠.
우리의 눈으로는 그들의 이러한 모습들이 걸림돌로 느껴지고, 우리의 사역에 행하는 방해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으십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완전하고 완벽하신 분이시기에 사단이 행하는 그러한 모습들에 절대로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큰 구원을 이루어 내십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일들로 인한 불편함이나 불안감이 있으십니까? 모든 것을 통해 선을 이루실 주님을 의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함을 이루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저 인도의 택함받은 남은자들을 일으키실 것이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또한 이 인도 땅에 구원의 풍성함을 이룩해내실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엘리야는 자신만이 온전한 선지자로 남았다고 여겼기에, 비관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홀로 두시지 않았습니다. 남은 자 7천명을 남겨놓으셨죠.
우리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자리에 인도의 남은자를 부르기 위한 말씀의 전달자로 이 자리에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의 처소에서 남은 자로 계실 것입니다.
학교에서의 남은 자, 직장에서의 남은 자, 가정에서의 남은 자로 말이죠.
그리고 어쩌면,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홀로 남은 것 같아 힘들어 지쳐있는 모습이 여러분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또한 이 인도 땅에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도 말씀하십니다.
너에게는 내가 준비한 칠천명의 남은 자가 있다 라고 말이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곁에 함께할 이들을 반드시 예비하십니다.
이 선교의 자리를 통해서 그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는 우리 팀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남은 자로서 그의 구원을 전하는 우리 모든 귀한 택하심을 받은 팀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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