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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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시다 (마 26:47–56; 눅 22:47–53; 요 18:2–12)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도망하다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들어가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에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 드리는 성도님들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깨어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말씀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보았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가버립니다. 이후에 베 홑이불을 두른 한 청년이 나오는데 그 청년도 예수님을 잡은 무리에게 잡히자 자신이 두르고 있던 것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을 가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굉장히 처참하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비참함도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만 할 수 없는 오늘날의 현실임을 또한 보게 됩니다.

본문

1. 가룟 유다
먼저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첫 부분을 보면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나옵니다. 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파송한 무리들, 곧 성전 경비대를 이끌고 옵니다. 그리고 미리 계획을 맞추고 자신이 입 맞추는 자가 예수니 그를 끌고 가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유다는 예수님께로 와서 “랍비여”라며 입을 맞추고 경비대가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이 가룟 유다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비참한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 한 명이었는데 예수님을 져버리고 은 삼십에 넘겼다는 사실이 매우 비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유다를 볼 때 굉장히 나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입을 맞출 때 다른 호칭으로 예수님을 부른 것이 아닌 “랍비여”라고 예수님을 지칭하였습니다. 곧 유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써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습만 보아도 유다는 상당히 나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깊게 들여다 보면 가룟 유다만이 그러한 모습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은 삼십에 넘긴 자가 가룟 유다였던 것이지, 그 외의 다른 모습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 또한 가룟 유다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자신들의 욕심이 있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자신들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과거 그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랍비여”, “선생님이여”라고 칭하는 일들도 나왔습니다. 그들 또한 이 땅을 구원하실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기보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자로써 보았다는 것입니다.
2. 검으로 귀를 친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보면 성전 경비대가 예수님을 붙잡을 때 예수님의 곁에 있던 자 중에 한 명이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칩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칼로 내리친 자가 베드로라고 말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그 곁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데 우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이 모습을 보면 검으로 내리 친 자가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해 보입니다. 지금 이 상황을 떠올려 보면 경비대를 이끌고 나왔는데 그에 대항하는 모습이 용맹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검으로 내리 친 자 또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했습니다.
3.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4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지금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잡히신 모습의 내용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은 나름 기대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주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무기력하게 잡히실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잡혀있는 이 장면에서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할 말씀과, 그 일들을 헤쳐나갈 말씀을 기대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그들이 기대한 말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으로 하여금 그들은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가버립니다.
4. 내가 원하는 예수님
지금까지 보았던 말씀을 보면 모두가 예수님을 져버렸습니다. 은 삽십에 예수님을 넘긴 가룟 유다도 그렇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나머지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던 자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자들이 다 예수님을 져버리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이렇게 됐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을 내가 원하는 예수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과 다른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님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은 삼십에 넘긴 가룟 유다를 보면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한 예로 과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을 때, 마리아를 책망하였습니다. 유다가 말하기로는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나은 게 아니냐고는 하였지만 그의 의도는 그것도 아니었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 그 비싼 향유를 붓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 구세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자신이 원하는 유익을 줄 수 있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런 중에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계속 말씀하시니 그의 마음에 갈등이 생겼을 것이고, 결국 은 삼십에 팔아버리는 일을 벌이게 됩니다.
말씀을 시작할 때도 말씀 드렸지만 이러한 모습은 가룟 유다 뿐만이 아닙니다. 유다가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팔았던 것이지, 다른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성경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예가 마지막 만찬에 나오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은 생각지도 못한 채로 자신들 중 누가 큰 자냐고 다툼을 벌입니다. 이 다툼이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유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곧 그들은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하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따름이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나온 그들의 모습을 볼 때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보다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까지도 이와 같은 모습들이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겉으로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실상은 나의 유익, 내가 원하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49절에서 예수님께서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곧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버렸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나의 유익을 위한 예수님, 내가 원하는 예수님을 믿을 때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버리고, 내가 바라는 것이 안 되면 예수님을 떠나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실망하고 떠나갑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새벽에 말씀을 묵상하지만 기도라는 것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단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나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면 오늘 말씀에 나온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가 믿었던 예수님은 나의 유익을 위한 예수님이었던 것이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살펴 본다면 결코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마냥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습니다. 바로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에게 문제나 소원이 있으면 예수님을 믿고, 나에게 유익이 되면 예수님을 따르는 그 모습이 오늘 말씀에 나온 가룟 유다와 다른 제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5. 도망가는 청년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51절과 52절을 보면 한 청년이 나옵니다. 베 홑이불을 두른 청년이 나오는데 이 청년은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청년 또한 자신이 두르고 있던 베 홑이불을 버리고 발가벗은 채로 도망을 가버리게 됩니다. 오늘 보았던 말씀에서도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이 다 도망을 가버리는데 이 청년마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버립니다. 그것도 옷을 버려둔 채로, 발가벗은 채로 도망을 갑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본다면, 예수님의 시선에서 본다면 굉장히 비참하고, 처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복음서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장면들이 어떻습니까? 모두가 예수님을 져버리고 도망가버립니다. 곧 그들이 말했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 것과 예수님을 따른다고 한 것은 아까도 계속해서 말씀 드린 것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한 믿음이었고, 내가 원하는 예수님만을 따랐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 예수님께서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땐 모두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떠나가 버리게 됩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방금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나의 의가 여전히 살아서 욕심이 가득하고, 나의 성질이 가득해서는 예수님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가야하는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되돌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했던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인지, 내가 따른다고 했던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분명하게 되돌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두 가지의 길입니다. 가룟 유다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던 자들이 보였던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 길, 나머지 하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 이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34절 말씀에 이어서 35절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오늘 말씀에 나왔던 예수님을 져버리고 도망가 버린 자들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잃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결단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있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새벽, 나의 모습을 철저히 되돌아보고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동안 내가 믿는다고 했던 예수님, 따른다고 했던 예수님이 어떠한 예수님이었는지 돌아보기 원하고, 올바른 주님을 따르는 결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철저히 나를 부인하는 삶, 십자가를 짊어 지는 삶을 결단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이 인도하신 생명의 길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분명하게 나타내어질 줄로 믿습니다.
[기도]
오늘 말씀
우리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힘든 자들
마무리 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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