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5새벽]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하길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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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헌금명단 낭독 후 대표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의 잠을 깨우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간구하는 주의 종들을 굽어 살피시사 천국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위기와 시험거리들이 찾아오겠지만, 존귀하신 아버지의 자녀들답게 주눅들지 않고 시험에 시험당하지 아니하며, 늘 하나님 편에 서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예물들을 주님께서 기뻐 받아주시옵고, 그 마음의 소원을 주께서 아시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막14:43-52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 무고한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했다. 사건을 저지른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이런 광기 어린 학살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들은 학생들을 캠퍼스의 한군데에 모아놓고, 한 사람씩 총구를 갖다 대며 이렇게 물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믿는다고 고백하면 죽이고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 주는 것이다.
여러분, 만약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분이 놓였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는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단다. 이내 캐시 버낼이란 학생 차례가 되었고 그는 죽음의 총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리고 너희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만 한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곁으로 가라” 하며 총을 쏘았고, 결국 캐시 버낼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 끔찍한 사건 속에서 살아난 학생들은 캐시 버낼의 순교 앞에서 자신들의 비겁함을 한없이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도 캐시 버낼과 같은 담대한 증인으로 서야 되겠다는 신앙 운동이 일어났다. 급기야 미국 전역의 각 학교에서는 ‘우리도 캐시 버낼의 길을 따르자’라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고, 캐시 버낼의 순교적 결단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대 앞 기도회는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생명을 내어놓을만큼의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으로 결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결단이 아닐지라도 인생이란 매일 매 순간이 선택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잘못된 선택 앞엔 실패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잘 된 선택 앞엔 성공과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비장의 결단을 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만났다. 소설로 말하면 이제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른 것이다. 산헤드린 공회의의 지시를 받고 배신자 유다의 안내를 받아 무장한 로마 군인들과 성전 군관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때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때이다. 만약 이런 현장에 우리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떠나는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결단을 하라.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떠나는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결단을 하라.
유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결단하는가? 그는 하나님을 떠나는 결단을 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먹는 결단을 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예수님의 제자 열 둘 중 하나였다. 나름대로 주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제자라는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는 결단을 한다. 본래 ‘유다’라는 이름은 “찬양하라!” 라는 의미인데, 도무지 부모의 소원을 담아 지어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결단을 한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제정을 담당했던 핵심 측근이었는데, 신뢰를 저버리는 결단을 한다.
그는 보통 폭동을 진압하던무장한 로마 군인들과 당시 성전을 지키던 성전 군관들을 이끌고 왔다. 이 체포는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이 주축이 되었다.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체포하라는 영장을 발부하였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무장한 군사들을 파송했습니다. 요18:12 를 보면 이 무리 중에 천부장도 있었다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수백 명의 군인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동원이 되었을 것이다.
단지 죄인 한 사람을 사로잡기 위함 치고는 너무 과한 병력이었다. 아마도 예수님의 무력적인 저항을 염두해 두고 실수 없이 체포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특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가룟 유다는 체포조와 미리 군호를 짜 놓았다. 체포조 중에는 예수님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설령 안다하더라도 어두워서 예수님의 얼굴을 식별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입 맞추는 자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고 말한다.
보통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는 "입맞춤"은 헬라어로 "펠레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45절에 나타난 "입맞춤"이란 말은 정렬적인 키스를 의미하는 단어인 "카테필레센"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는 유다가 얼마나 철저히 위장을 했는가를 짐작하는 단어이다. 유다는 실수 없이 예수님을 잡으로고 군인들에게 닦달한다. '단단히 끌어가라'는 악한 말을 퍼붓는다. 유다가 이렇게 체포 조에게 닦달한 것은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다는 배신의 키스로 간교하게 속마음을 감추고 예수님께 접근한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위장, 편법, 술수, 사기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했던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떠나는 결단이 결국에는 비참한 인생의 종말로 끝이 나버렸다.
47절을 보면 수백명의 무장한 군인들 앞에서 어느 한 사람이 용기있게 무력으로 저항하고자 했다. 요18:10 에서는 이 사람이 베드로였다고 명시하였고, 검에 맞은 사람은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Malchus) 였다고 밝힌다. 베드로는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 무장 투쟁을 하려는 마음까지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검을 휘두르며 예수님의 체포를 막고자 할만큼 그는 용기있는 사람이었고, 담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무런 저항없이 그들에게 포박당하시는 것을 보며 그의 믿음이 흔들렸고, 결국 마지막에는 작은 여종 앞에서 자신을 저주까지 하면서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게 되었다.
또한 51절을 보면, 한 청년이 홑이불을 두른 채로 주님을 따르고 있었다. 다른 성경 번역본에서는 이 청년이 두르고 있었던 것이 값비싼 세마포였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이 청년은 부잣집 사람이었을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이 청년을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로 유추한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성전에서 주님의 가르침도 들었던 목격자였다.
그가 왜 알몸으로 주님을 따라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주님의 마지막 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내가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노라고 급히 나오느라 알몸에 이불만 두른 채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막10:50 에서 등장하는 맹인은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겉옷까지 버리고 주님께 나아갔지만, 마가는 이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겉옷까지 내어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치는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위기를 맞게 되자 하나님을 떠났다. 자기 안위를 염려하며 하나님과 반대되는 편에 섰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결단하셨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결단을 하셨다.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결단을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군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마가복음 14:48–49 를 보면,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주님은 순순히 저들에게 사로잡히신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셨다. 주님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편에 서셨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사야 선지자는 오래 전에 이미 메시아께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범죄자 중 하나"로 취급받게 될 것을 예언했다. 스가랴 선지자 역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칼로 치실 것이며, 그때에 제자들이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주님의 체포는 바로 이러한 예언의 성취였다. 또한 주님도 이미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다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지 않았나.
여러분, 우리 주님은 결단의 순간에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고, 기적을 통하여 그들을 다 제압할 수도 있는 분이셨다. 그들에게 결박되지 않을 만큼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셨다. 그들에게 잡혀가면 수많은 수치와 수모를 당하실 것을 아셨다. 채찍을 맞으며 고문당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허리에 창을 받으시고 십자에게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아주 비참하게 돌아가실 것을 알고 계셨다.
누군들 이런 죽음을 피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옮겨 달라고 3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는 것임을 아셨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단하셨다.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결단하셨다.
성도 여러분, 멀리 보는 자가 바르게 갈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인생 속에서 만나는 위기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하길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죽음 너머에 부활의 영광을 알고 계셨기에 하나님의 편에 서는 걸 주저하지 않으셨다. 이 땅 뿐만 아니라 장차 임할 나라에서도 유일무이한 주권자가 우리 하나님임을 아셨기에 그분의 말씀을 이루길 멈추지 않으셨다.
마찬가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여러 위기를 만나겠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편에 서길 결단할 수 있는 것은 죽음 이후에 예비된 영광스러운 부활이 우리 앞에 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 아니겠는가?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말도 안되는 폭정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수많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 믿음의 선진들이 총칼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 편에 서기를 결단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의 부활이 있음을 그들은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소원한다. 지금 당장 눈 앞에 거대하게 보이는 저 위기가, 저 문제들이, 저 고난들이 우리를 집어 삼킬 것처럼 밀려오지만, 그보다 더 크고 강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확신하라. 장차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음을 늘 기억하며 담대히 위기를 마주하라. 인생의 여러 위기 속에서도 이 믿음의 확신으로 인하여 늘 하나님의 편에 서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스러운 부활을 바라보며 늘 하나님과 함께 하길 결단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기도문
주여, 인생 속 여러 시험거리들, 위기들이 계속해서 찾아오겠지만 늘 주님의 편에 서길 결단하는 주의 종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늘 하나님의 편에 서며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이루신 주님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영광스러운 부활과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오늘의 어려움, 오늘의 시험, 오늘의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늘 하나님의 편에 서길 결단하는 주의 백성들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