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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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회개의 의미
“회개하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참회시간에 하는 생각나는 죄의 목록 고백?
처음에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여러 죄를 고백하면서 눈물어린 회개를 했지만, 어느샌가 그런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왜? 계속 반복이어서…
안하면 큰일나는 것?
회개 안하면 구원을 못 받는다
그럼 얼마만큼 해야하지? 이정도면 구원 받을 수 있나?
죄인을 불쌍히 여긴 판사이야기(이정규목사님,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큰 죄를 질러 법정에 섰습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판사는 불쌍히 여겨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판사가 옳습니까? 불의한 판사이다!!!
죄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 그것이 정의요 공의이다!
회개하면서 죄의 값을 치렀나? 그 고통이 그 죄책감이 과연 죄 값에 상응한다고 생각하나?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회개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회개 = 속죄가 아니다. 회개와 속죄는 같을 수가 없다.
오해1 - 평생 짓는 죄를 회개로 용서 받을 수 있다
회개라는 행위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는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
그럼 여러분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있나요? 아니, 할 수 있나요?
베드로전서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 죄를 속죄했습니다. 우리의 회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회개가 하나님께 의미가 있게 되었다.
오해2 - 구원받기 이전의 죄는 십자가로 용서받지만 이후의 죄는 회개로 용서받는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그 이전의 죄를 자동으로 사하심을 받고
새출발하면서 묻어지는 죄만 회개로 씻어내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하는 마음이 그럼 죽기 직전에 예수님 영접하면 되겠네?
이 생각의 문제점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떠한 순간에만 효력이 있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많은 이단들이 이것으로 미혹하고 있다.
회개라는 고행을 하게 만든다.
히브리서 9:12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오해3 - 과거현재미래의 죄를 모두 십자가에서 용서받았으므로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구원파라는 이단 종파의 생각이다.
회개하면 속죄의 공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오해가 나타나게 된 것은 회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하면 다들 회개기도를 한다.
그 회개기도의 내용은? 주님 이러 이러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러나 회개기도는 회개의 한 부분이지 회개가 곧 회개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치자 사람들의 반응과 요한의 가르침은 어떠했나?
누가복음 3:10–14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회개하라 라고 하니까 다들 산에 올라가 회개기도 하나요?
회개는 삶을 바꾸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삶과 마음을 바꾸기 위해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바로 회개기도이다.
마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의 삶에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마틴로이드존스)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한다. 삶에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회개는 단순히 회개 기도를 이르지 않습니다. 회개 기도는 죄를 지우는 효력이 있는 무슨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실제로 무효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공로로 날마다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얻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범한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신다. 징계는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드는 사랑의 매이다.
어떤징계인가? 하나님은 그런 신자를 징계하기 위해 그에게 스스로를 가리시고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며 그를 멀리하십니다
그럴 때 신자는 구원의 확신을 잃고 기쁨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며 열정도 사라집니다(이런 일을 경험한 분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때 신자는 ‘회개’하게 됩니다. 헷갈리지 마십시오. 이것은 ‘회개’이지 ‘속죄’가 아닙니다
이렇게 신자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공로’에 근거하여 신자를 용서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의 회개를 안 받으시면 그리스도가 이룬 공로를 무시하시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회개란?
우리 구주께서 신자에게 “이미 내가 십자가와 부활로 네 죄를 다 사면하고 너를 의롭다고 선포할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죄에 빠져 살지 말고 내게로 와서 다시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교제를 회복하려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신자는 회개할 힘과 용기와 마음을 얻습니다. 회개는 제사처럼 자신의 특정한 죄를 없애는 의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의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한 순간의 행동이 아니라 삶이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확신은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오는 것이지, 회개라는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불필요한 것일까요? 결단코 아닙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못하는 삶에서 회개하는 삶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매일은 회개로 가득해야 합니다. 회개를 멈출 때 타락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삶을 요구하시는 이유?
여러가지 회개의 사례들을 보면서 생각해 봅시다.
강퍅한 죄인 - 출애굽기 9:27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단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중에 잊어버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 마음을 가진 자 - 민수기 22:34 “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한때 천사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바로 악마의 영혼이 있었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의 고백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형벌이 두려운 자 - 사무엘상 15:24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은 선지자들 가운데 있었다가 쉽게 선지자로 변했고, 그 후에는 마녀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울이 선지자 중에 있느냐? ==> 선지자 중에도 있고 점술하는 사람과도 있고 소속이 어디냐?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뿐이에요
발람이 크게 논 사람이면 사울은 작게 노는 사람이
절망의 후회 - 마태복음 27:4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회개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양심의 가책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나는 그가 구주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를 미워하고 그도 나를 미워합니다. 나는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내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주님의 용서 조차도 믿지 못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자도 있다.
복된 고백 - 누가복음 15:18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주님께 나아온다는 것이야 말로 복된 고백이다.
당신이 돌아올 때마다 그분은 당신을 영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그리스도께 나아온 불쌍한 죄인은 그리스도께서 거절하신 적이 없습니다
앞의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시는 이유?
단지 형벌이 두려워서 회개하느냐?
겉으로는 회개한다고하지만 사실상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냐?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니냐?
자신의 죄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지 않으실꺼야 하면서 절망에 빠져 있거나 아예 떠나버리느냐?
아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사함의 은총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회개를 요구하셔야만 한다, 왜?)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렘 3:14).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렘 25:5).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호 14:1).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 2:12).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3).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회개의 좋은 예 – 다윗, “난 지금 하나님밖에 안 보여”
복음적 회개는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고 화해하며 즐거워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반면에 율법적 회개는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고행일 뿐입니다. 복음적 회개의 끝에 용서와 화목이 있다면, 율법적 회개의 끝에는 교만과 불만족과 거절감만 있습니다.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회개를 요구하셔야만 한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회개를 요구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너를 벌하지는 않겠다. 네가 나와 가깝지 않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회개를 요구하셔야만 한다, 왜?)
“돌이켜라! 벌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화목하기 위해 돌이켜라! 네가 받을 형벌은 이미 내가 다 받았다. 네가 돌이킨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를 모두 마련해 놓았으니 내게로 와서 나와 함께 먹고 마시자!”
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회개를 요구하셔야만 한다, 왜?)
그러니 지금 생각나는 모든 죄를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나중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생각나면 하겠다고, 환경이 좀 변하면 하겠다고, 그럴 마음이 생기면 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청교도 토머스 브룩스는 “하나님은 늦은 회개도 용납한다는 약속을 세우셨지, 늦은 회개가 괜찮다는 약속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지만, 늦은 회개는 거의가 참되지 않습니다”15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그분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