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을 세우셨으니(막 3:1-19)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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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마가복음 2장 1절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와 그것이 야기한 논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논쟁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함으로 인한 논쟁,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죄인들과 식탁 교제 때문에 발생한 논쟁, 금식 논쟁, 그리고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른 일로 발생한 논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논쟁의 마지막 이야기로 역시 안식일과 관련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갔을때 거기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손이 말랐다는 말은 손이 오그라들어서 펴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6절 말씀은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즉 뭔가 잔뜩 음모를 지니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주시하다라는 말은 ‘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이번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정을 따르면 이 날에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치료행위가 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생명이 당장 위태로운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로 치료를 미뤄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만약 이 사람을 치료한다면 안식일 규정을 근거로 예수님을 고발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동안에 예수님이 한 일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날에 회당에 설치된 손마른자라는 덫을 놓고 예수님이 그 덫에 기다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아시는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회중들 한 가운데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지만 너무나 답이 자명한 이 질문에 아무도 선뜻 정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에 있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드신 안식일의 본래 정신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덧붙인 규정에 얽매인 나머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악을 행하고 생명을 죽이는 일을 옳은 일로 여기는 완악한 자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답이 자명한 질문에도 묵묵 부답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돌같은 마음을 확인하시자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으로써 그의 오그라진 손을 고치시며 안식일에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 마땅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도리어 악을 행하고 생명을 죽이려하는 안식일의 범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완악해 지면 이렇게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아픔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생각과 사고에만 매몰되어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바쁘게 됩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에 아픔을 가중시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해서 아이들이 죽어도,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에게 칼에 찔려 죽어도, 정치인들이 칼에 찔리고 돌에 맞아도, 축제현장에서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은 별로 관심이 없고, 좌파니 우파니에 매몰되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피해자를 조롱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기도 부족한데 때로는 상대의 아픔을 기쁨으로 여기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이든 의인이든 생명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한 사람을 살려내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완악함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긍휼과 사랑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이 더욱 좋은 세상이 되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될 것입니다.
연속된 다섯 논쟁이 끝난 후 예수님의 명성이 온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서쪽으로는 갈릴리, 남쪽으로는 유대와 예루살렘, 동쪽 이방지역으로는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 그리고 북쪽으로는 두로와 시돈까지 전해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정결법을 거부하고, 세리및 죄인들과 식사를 나누며 사회적 경계선을 철폐하시고, 바리새인의 안식일법 조항에 얽매인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안식일의 참된 정신을 설파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열려있고 얼마나 포용적인 것을 보여주시자, 이런 소문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사역이 승승장구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몰려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고요,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서 엎드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외쳤습니다. 율법을 잘 알며 경건하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불신하고 대적했지만,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귀신 같이’알고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과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을까요? 눈앞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시고, 놀라운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이 정말 누구인지 몰랐을까요? 그분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몰랐을까요? 아니요, 그들은 정확히는 몰라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나사렛의 시골뜨기가 놀라운 기적을 행하니 배가 아플 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보다 뛰어나게 보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여러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중요한 것은 질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만 해주면 되는 것이지, 괜히 시기하고 질투하다가는 이 바리새인들처럼 분별할 능력이 사라져서 누구를 죽이려고하는 아죽 악한 행동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여실 새 시대의 일할 사람을 세우려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고,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돌을 세운것처럼, 예수님도 새로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12명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요, 이 열 두명은 시험을 쳐서 선발할 인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께서 원하여 따로 불러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사람들이 열두 명의 제자였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면서 새 시대를 보여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뭔가를 하기 전에 먼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로서 사역하기 전에 제자로서 예수님에게 제대로 배워야 했습니다. 제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시로 받고, 예수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전수받아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세상속으로 보냄을 받아 사역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던것처럼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악한 영적인 세력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세상으로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과 함께 머물고 예수님과 함께 거닐며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움직인 그 말씀의 원리를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우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하면 무조건 예수믿고 천국가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전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갈때에, 예수믿으면 평안하다 좋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믿으면 죽어도 천국간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에게 사명이 있음을 기억하며 그 사명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런 사명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장되고, 악한 권세가 사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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