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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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6:4–9 NKRV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당도하기 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일종의 설교이다.
그래서 신명기에는 특별히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
바로 전장까지의 말씀은 바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명령인 “십계명”에 관한 내용이다.
상상해보면, 지금 그 중요한 십계명의 언약을 5장에서 계속해서 설교했다.
십계명을 듣고 이제 숨을 고르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오늘 본문의 내용을 얘기하고 있다.
그 내용은 “쉐마 이스라엘” “들으라 이스라엘아!”였다.
아직도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4절의 말씀 즉 “쉐마”의 말씀을 하루에 2번 암송한다고 한다.
“쉐마”라는 히브리어는 “들으라”라는 명령어이다. 출애굽 연대가 대략 BC 1400년대라고 추정되는데, 현재 약 3500년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이 “들으라”라는 한마디의 명령이 유대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왜 이 명령 하나가 현대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명령이 되었을까?
1. 이스라엘아 들으라
4절의 말씀은 두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하는 명령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라고 하는 선포이다.
특별히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할 때 “듣다”라는 명령은 단순히 귀로 듣는 감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쉐마”라는 동사의 뜻은 “듣다”라는 말과 동시에 순종의 뜻이 내포되어있다.
부모님이 “너 내 말 잘 들어야해!”라고 하면 어린 자녀가 “네!”라고 대답하면 이게 무슨 뜻인가? 그냥 들으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속뜻은 “너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해야해”라는 일종의 명령을 나타내는 것이고, 자녀가 “네!”라고 대답한 것에는 “네 제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할게요!”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치사한 분들 아이라면 “엄마가 그냥 말 들으라고만 했잖아요. 그래서 듣기만 한건데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죠? 꼭 박대범같은..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고, 혹은 장난끼어린 아이의 장난이라는 것을.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들으라” 즉 “이 말에 순종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2. 선포에 담긴 의미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 말에 순종해야하는 이유, 당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선포에 담겨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이 선포는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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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여호와는 여호와시다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여호와라는 단어의 의미는 바로 영어로 I am who I am.이다.
즉 직역하면 “나는 나다”라는 말의 의미이다. 이 말에 담겨있는 의미는 “나는 다 존재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존재를 필요로도 하지 않는 절대자”라는 의미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무언가에 영향을 받고, 무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먹을 것이 필요하고, 보호자가 필요하고, 안전한 세상이 필요하다.
지금 대기의 산소 비율이 약 21퍼센트인데, 이게 상당히 이상적인 비율이다.
그런데 딱 2퍼센트 이하만 떨어져도 호흡곤란, 피로감, 집중력 저하가 나타난다. 15퍼센트 이하로 내려가면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10 퍼센트 이하로만 떨어진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사망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은 무언가에 의존하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어떠한 것도 없었을 때부터 계셨던 절대적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이 절대 존재인 하나님에 의해 피조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I am who I am이라는 말이 “나는 나다”라는 말인데, 즉 “나의 존재의 이유는 나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존재에게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영향을 받을 수 없는 분이다. 그게 여호와에 담긴 의미이다.
또한 “유일한”이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
여호와가 하나님의 절대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이 여러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유일하다는 의미가 바로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고대 근동의 세계관은 “신들의 세계관”이다.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 로마 제국 시대까지도 거의 모든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신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백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그 많은 신들 중 유일한 절대 존재의 신이라는 고백인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신앙 고백의 중심이었다.
이러한 선포는 이스라엘이 “듣는 것” 즉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3. 유일한 여호와의 신앙 고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4절에 선포와 그에 따른 명령을 듣고 순종한다면 이들은 무엇을 하게 되는가?
신명기 6:5 NKRV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사랑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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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뜻, 힘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과 뜻은 당시 고대 사람들에게는 “감정”으로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구약을 보면 마음&뜻은 짝처럼 감정을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였다.
힘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의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명령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마음과 뜻의 감정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힘의 의지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할까? 우리의 감정으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의지로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놀라운 사실은 감정과 의지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배려하신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감정이라고 많이 착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랑은 감정과 의지가 함께 수반된다.
만약 사랑을 감정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감정이 식어버린 자들에게 사랑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극단적 로맨티시즘에 빠져있는 자들이다. 극단적 낭만주의자들은 감정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믿는다.
혹은 사랑을 의지로만 생각한다면, 이들은 성경의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율법주의자들이 되어버린다.
의지로 실천하는 행동만을 강조한 사랑은 결국 사랑이 아니다. 이들은 행동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며, 마음의 감정은 말살해버린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명령이 정말 복된 이유는 두 가지를 다 해야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감정과 의지는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우리가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살짝 사그라드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의지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도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감정이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반대로 우리의 의지적 행동이 사그러드는 것 같을 때 우리의 사랑의 감정은 다시 의지의 행동을 회복하게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연애나 결혼 관계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느끼게 된다. 연애 초기에는 감정이 많이 올라온다. 그러면 그 감정으로 인해 사랑하는 행동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연애가 오래되게 되면, 감정으로만 되지가 않는다. 그때는 오히려 내가 이 사람을 감정적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내가 행동하게 될까? 를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정말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감정조차도 회복되는 경우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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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랑의 방식이다. 그래서 제가 자주 언급하는 cs루이스의 말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지 알게 된다.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면 사랑하게 된다”
이 말이 바로 이런 감정과 의지의 사랑을 깊이 통찰한 명언이다.
인간 관계에서도 그렇듯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것이다.
하나님을 감정과 의지를 다해 사랑해야 한다. 내 감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의지적 실천에 대해서 고민해야하고, 하나님을 의지적 실천을 통해 사랑할 때는 감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5절 이후 6-9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말씀이 너무나도 확실해진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과 의지의 실천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이 선포와 명령 가운데 어려운 상황
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고대 근동 지방의 세계관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을 섬기라고 명령하신다. 다른 이방신들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풍요로움을 약속해주었다.
바알신 - 농사의 풍년 , 아세라 - 다산 등등.
그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그들이 약속해주는 모든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이며, 그분만을 사랑하라는 것은 곧 다른 절대적 존재라고 믿게 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 존재라고 착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스라엘에게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특별히 “생명”이었을 것이고,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생명을 위협받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지난 주 설교를 생각해보면 그럴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지켜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먹을 것의 부족으로 생명을 위협받자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내놓는다.
그들 앞에 만약 바알신처럼 풍요를 보장하는 신이 와서 그들을 속인다면 그들은 그 앞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신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할 것인가?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욕구가 이런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그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면 그러한 유혹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수많은 가나안 이방 족속들의 신들 앞에서, 그 신들은 생명을 보장해줄 것 같이 거짓 약속을 하고, 안전을 보장해줄 것 같이 거짓 약속을 하는데, 그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고백을 하기 힘든 이유이다.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1. 우리에게 오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유일하신 여호와”로 고백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과거 구약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도 여호와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신명기의 말씀은 바로 우리의 말씀이 된다.
여호와가 절대 존재이시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는 자들은 우리의 감정과 의지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2.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가나안 땅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땅은 이 땅 위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오게 된 하나님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나안 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가나안 땅의 삶 가운데 펼쳐지는 우상 신들의 위협
그런데 가나안 땅에 입성하였어도 여전히 우상과의 전쟁과 이방 나라와의 전쟁이 계속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면서도 우상과 전쟁, 이방 나라와 전쟁을 하며 살아간다.
즉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무언가를 충족시켜줄 것 같이 약속하며 속이는 헛된 우상들과 전쟁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상을 사랑하는 것 사이의 강력한 전쟁이다.
마치 이스라엘에게 생명과 안전을 약속해주는 것 같았던 우상들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것 같은 와중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자들이 감정과 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1.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을 향한 감정과 의지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셨고, 심지어 그 말씀을 우리가 할 수 있게 성취하여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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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루신 가장 놀라운 의지의 실천적 사랑은 무엇이었나? 바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사랑은 감정적으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감정적으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4:36 NKRV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감정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고 말씀하셨다.
이 잔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셔서 죽으신 대속 사역을 이루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도 감정적으로 그것이 싫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죄를 뒤집어 쓰시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단순히 죽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바로 예수님에게 그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저 짧은 한 절의 말씀에서 의지적 실천의 사랑이 나타난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진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다.
감정적으로 싫지만,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가장 지기 싫었던 십자가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지시고, 죽으신다.
예수님의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바로 오늘 본문의 감정과 의지의 사랑의 결정판이다.
2.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과 의지를 다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한다.
우리는 모든 세상의 우상들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택해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를 피하시는 우상을 선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하나님의 의지적 사랑을 실천했다.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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