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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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 우리 교회 28주년 창립기념 주일 입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날,
이제, 사도행전의 대단원의 막을 올립니다.
사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한 묶음의 책이라는 측면에서 대단원의 막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사는 방식과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사도행전을 통해, 주님의 승천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강림과 그 후 폭팔적으로 부흥하는 초대교회와 예수님의 가르침에 온전히 부합하는 메세지를 전파하고 능력을 나타내는 사도들의 열전을 살펴 볼 것입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어디로 귀결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결론 부터 말씀 드리자면, 그것은 ‘교회’ 입니다.
사도행전의 주요 주제 중에 가장 중요한 주제를 꼽으라면 당연히 성령과 교회 일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시어 교회가 탄생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이 기록된 주후 50년경 전 이미 교회는 성립 되었고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교회 중에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모든 이미지를 걷어내고
순수하게 주님 승천 후 성령강림 후 1세기의 초대교회를 상상 해보십시오.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제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바로 그때 입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기쁨과 순전함” 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원하는 심령들의 모임이었을 것이고
누가 할 것없이 각자의 달란트 대로 아낌 없이 나누고 봉사하고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립주일을 맞는 우리교회를 마음에 두고 오늘 말씀을 듣다보면,
아마도 우리교회의 모습도 초대교회 처럼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에 흐뭇해 하실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지점도 있을 것이고 안타까운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분명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30주년 50주년, 주님 오실 때까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우리교회로 인도 하실줄 믿습니다.
1. 한 마음과 한뜻으로
1. 한 마음과 한뜻으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려면 먼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6 (KRV)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NRSV)
46 Day by day, as they spent much time together in the temple, they broke bread at home and ate their food with glad and generous hearts,
초대교회 모임에서 무엇을 했나요?
1.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2.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3. 집에서 떡을 떼며
4. 음식을 먹고
제가 여러 번역본을 살펴 보았지만, 특별히 한국어 번역에만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같이 하여” 라는 표현 입니다. 가장 많이 통용되는 NIV를 보면,
Every day they continued to meet together in the temple courts. They broke bread in their homes and ate together with glad and sincere hearts,
그냥 “날마다 성전에 모였다” 정도의 표현이 나옵니다. 어디에도 마음을 같이 하였다 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They followed a daily discipline of worship in the Temple followed by meals at home, every meal a celebration, exuberant and joyful, as they praised God. People in general liked what they saw. Every day their number grew as God added those who were saved.
MSG 메세지 버전에는 “Daily discipline of worship” 매일의 예배훈련에 의해 모였다 라고 표현 합니다.
이 번역본의 차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한국인이 생각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아마도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이고 또한 한 마음으로 일치를 이루는 곳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충돌하는 각축장이라면 교회는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같이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이 번역에 반영 된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또한 마음을 같이 한다는 더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동상이몽이 아닌, 일심동체 라는 의미 입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손과 발이 싸우는 법이 없습니다. 눈과 귀가 내가 본 것이 맞다 하거나 아니다 내가 들은 것이 더 정확하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뇌가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면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팔이 아프면 팔만 아프니 다른 몸의 지체들은 괜찮은 것이 아니라, 손톱에 작은 가시만 들어가도 하루 종일 신경쓰이고 배가 아프면 온몸이 컨디션이 좋지 않듯,
교회는 각 성도가 고난 당하거나 시험 당하면 함께 아파 하고 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기쁨을 시기와 질투 하지 않고 기뻐해주는 것
그것이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의미는 뭘까요?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마음이 착착 맞는 것을 말합니다.
눈짓만 봐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월요일에는 누구 누구는 빨간고추 가서 점심을 먹고 화요일에는 글로리아 진스 가서 누구 만나서 커피 마시고 수요일은 누구 만나서 물리치료 받고 등등 그냥 말 안해도 다 아는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인들은 말 안해도 교회로 모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가장 행복한 곳, 위로가 있는 곳, 나와 함께 기도해줄 사관님이 늘 있는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전화 안해봐도 교회가면 다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교회도 마찬 가지 입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교회의 리더인 사관이 수요일날 영성훈련 합시다. 교리공부합시다. 모이십시오 하면 당연하게 모이는 교회가 기쁨과 순전함으로 부흥하는 교회 입니다.
날마다 주님따라 유투브 찾아서 매일 아침 기도하고 하루 맡기고 시작 합시다 하면 셀장들이 셀원들 다독여서 다 참여하게 하면 그게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금요 모퉁이사역 반찬봉사 김치담그기 참여합시다. 나오라고 나오라고 하지 않아도 그냥 좋아서 나오는게 원래 교회 였다는 것입니다.
주일 성결예배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목숨같이 지켜야 하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인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 하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2.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2.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그리고
초대교회 모임에서 무엇을 했나요?
1.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2.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3. 집에서 떡을 떼며
4. 음식을 먹고
집에 가서도 모여서 떡을 뗀다는 것은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서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의 가장 바탕에는 바로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매일 모일때도
집에서 떡을 떼며 예배드릴때도
약한 사람, 도움 필요한 사람들 초대해서 또는 성도간의 교제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음식을 나눌때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 구원 받은 성도의 아이콘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 하는 단어 입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도 영혼의 기쁨으로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에서 주인공 귀도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들 조슈가 잠시라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무자비한 수용소 생활을 단체게임이라느 하얀 거짓말을 하고 1,000점을 따는 우승자에게는 진짜 탱크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있는 힘껏 즐겁고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수용소를 무사히 나오게 되는 내용 입니다. 안타깝게도 귀도는 해방 하루 전에 목숨을 잃습니다.
비록 전쟁과 학살의 현장에서도 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상황이 어떠하던지 내세의 소망과 구원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 입니다. 그런 기쁨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 입니다.
또한 순전 하다는 것은
순전하다 (純全--) 순수하고 완전하다
순전하다 (純全--) 순수하고 완전하다
순전한 (Generous)
⁑gen·er·ous[dӡénәrәs] a. 1 활수한, 후한: 돈을 잘 쓰다. 2 푸짐한, 풍부한(plentiful): ~ fare 푸진 성찬. 3 관대한, 아량 있는; 고결한; 편견 없는: 남을 평가할 때에는 관대하게 하도록 애쓰시오. 4 (땅 따위가) 건, 비옥한(fertile); (빛 따위가) 진한, 짙은(deep); (술 따위가)
관대하고 아량이 있고 포용력이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넉넉한 마음 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서로 받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용납하고 성령을 통해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마치 아무일이 없고 다툼이 없었고 사람들이 다 천사같아서 서로 용납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신앙 생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에 사는 동안은 그 어느 곳도 그런 곳은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베드로파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어 서로 싸웠습니다. 할례냐 무하례냐 교리적으로 다퉜고 헬라파과부를 먼저 도울 것이냐 히브리파 과부를 도울 것인가 실강이를 했습니다.
다 다툼이 있고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괸실히 미워하고 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중에도 우리가 기쁨과 순전함으로 포용하고 용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판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충평판 조언 충고 평가 판단을 하지 말고
내게 맡긴 일 헌신하고 다만 사랑 하십시오.
내가 좀 아프더라도 품으십시오.
그것이 초대교회의 화합을 가능케 했던 넉넉한 마음, 순전함 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마음이 순전하고 넉넉하게 훈련 된 성도는 자연히 겸손합니다.
내 생각이 달라도 교회의 방향에 맞추는 것이 교회의 중직자와 성도의 기본 자세 입니다.
교회 내에서 누가 높나 다투지 말고 그저 낮은데 처하고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마십시오 교회의 일치를 위해 참으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이런 넒은 마음이 바로 순전한 마음 입니다.
교회에서 모든 일이 물흐르듯 잘 돌아가고 모든 일이 덕스럽게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고, 침목동호회도 아닙니다.
교회는 그야말로 교회 입니다. 일을 하러 모인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분만 쌓으려고 온 곳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부합한 목회계획을 짜고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동시에 낙오하거나 약한 자들을 품어주는 곳이 교회 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라는 말씀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닌, 실질적으로 용납하고 포용하며 서로를 위해 헌신 하는 삶을 말합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많은 윤리와 함께 기독교인이 더욱 더 지켜야 할 신앙의 윤리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 나타납니다. 교회 내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부족하고 아픈 지체를 보면 한 몸처럼 아파해야 그게 교회 입니다.
형제 자매가 고난 당하는데, 나랑 안친하니까 하면서 외면 하면 그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를 향해 품으셨던 주님의 마음 입니다.
마땅히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포용하고 용서하며 관용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우리교회 창립 28주년을 맞아 병사 입대식도 있었고 매우 의미 있고 기쁜 날입니다.
28년 동안 우리 교회를 지켜주시고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시 한편을 소개해드리고 설교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원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 민영규, 글씨/그림: 신영복)
교회는 때론 흔들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도 때론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흔들렸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가리키고 있는가? 입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연약하여서 나침반 바늘 같이 흔들릴 지라도
여전히 주님을 가리키고 있다면 주님은 영원히 우리 교회를 지키실 것입니다.
성도가 잠깐 시험에 들 수 있지만 여전히 주님을 바라보고 부르짖고 있다면
주님은 그 성도를 잊지 않으시고 천국으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구세군 시드니 한인교는 주님 향해 묵묵히 전진 합니다.
30주년에도 40주년에도 50주년에도 주님을 향해 변함없이 나아갑니다.
오늘도 주님 다시 오심을 고대하며,
기쁨과 순전함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되어 교회를 섬기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