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언약(사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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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창 9:8-11)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 본 이야기이고, 또 이를 주제로 만든 영화나 각색해서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줄거리로 만든 문학작품도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들을 때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야기만을 기억한다. 뒤이어 나오는 오늘의 본문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한데 말이다. 물로 온 세상의 생명을 심판하셨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심판,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지는 인간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스스로 땅을 일구고 살아야 했다. 아담은 오랜 세월을 살며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점점 타락해 갔고, 세상은 은혜와 평화로 가득한 곳이 이니라 죄악이 가득차고 미움과 다툼만이 가득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셨던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해 지셨다(창 6:6). 그리고 내리신 하나님의 결론은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였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노아라는 사람을 택하였고, 하나님의 계획을 그와 그의 가족을 통해서 이루셨다. 홍수로 인한 모든 심판이 끝나고 난 다음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b)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해주셨던 말과 동일한 말이다. 하나님은 노아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가 복을 받으며 살았던 것처럼 그들도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언약을 맺기로 하셨다.
오늘 본문 창세기 9:9-10 을 보면
Genesis 9:9–10 NKRV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말씀은 “노아를 비롯한 자녀들과 모든 생명들과 언약을 세우시겠다”라는 것이었다.
언약은 약속을 의미하는데, 본문에 사용된 언약의 의미는 “하나님과 사람, 혹은 사람 사이에 맺어진 계약적인 약속으로 하나 때론 양쪽 당사자의 행위를 요구한다. 보통 한쪽이 더 높은 지위를 갖는다.” 이다. 한마디로 양자 간의 관계수립을 위한 협정이다.
하나님은 지금 노아와 세 아들을 온 인류의 대표로 삼아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던 것처럼 노아와 세 아들에게 그와같은 복을 주겠다 하셨고,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던 것처럼 노아와 언약을 맺고 계신다.
그리고 이 언약을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본문에서 언약이란 단어가 무려 7번이나 나온다. 그마만큼 하나님은 지금 노아와 맺으시는 언약이 중요했고, 그 언약의 내용이 곧 온 인류와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 사건은 왜 인류가 홍수로 심판을 받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보여주신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모습이 바로 11절에 있다. 창세기 9:11
Genesis 9:11 NKRV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언약의 내용은 다시는 하나님께서 홍수를 일으켜서 이 땅의 어떤 생명도 다시 하나님의 손으로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한 것이다.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해주셨다. 노아아와 그의 가족은 이 언약의 증인이었으며 동시에 온 인류를 대표하여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우리가 언약을 맺을 때에는 증인을 세우고 증표를 받습니다. 남녀가 결혼할 때 반지를 예물로 주고 받습니다. 동그라미가 시작과 끝도 없는 것처럼 서로 반지를 끼워줌으로 부부간에 서로 영원히 사랑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 반지 안에 담겨 있다.
물로 세상을 심파하신 하나님께서도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며 남여가 결혼할 때 반지를 교환하는 것처럼 언약을 영원히 깨트리지 않으시겠다는 증표로 무지개를 주셨다.

무지개 징표(창 9:12-16)

본문 12b-13까지를 보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지개 말고도 언약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자연현상들이 정말 많이 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언약의 증표로 삼으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 말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에 놀랐던 사람은 비슷한 상황만 닥쳐도 겁을 먹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속담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그 음식을 먹다 크게 채하게 되면 다시는 그 음식을 거들떠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과거에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노아아와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본문 속 세상에 사람은 아직까지 노아와 그의 가족 전체 딱 8명 밖에 없었다. 그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갈 때 날씨가 흐려지면 겁을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비가 40일간 내렸을 때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를 경험했고, 큰 방주에 올라타 1년이란 세월을 보내고서야 겨우 땅을 딛을 수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비가 내리려는 구름이 잔뜩낀 하늘을 보게 되면 지래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가 그치고 난 다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게 하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시려 했다. 인간의 연약함을 배려해 주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마음이 이 무지개 안에 담겨 있다. 이것이 바로 무지개를 증표로 사용하신 첫번째 이유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구름이 다양한 사건에 나타나는데 특별히 구름 덮일 때 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고 영광이 가득했으며 또 언약이 체결 되기도 하였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을 때 짙은 구름이 내려왔고 거기서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이 들렸다(출 19:9; 24:15; 33:10; 34:5). 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막을 만들었을 때 지성소(출 40:34, 민 9:15)와 솔로몬이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옮겼을 때(왕상 8:10, 대하 5:13) 성전 안에 구름이 가득하였다. 이러한 신비로운 모습이 나타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 주셨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언약이기도 했지만, 계약적인 약속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복이 있지만, 반대로 불순종하고 우상숭배를 할 경우 심판이 있을 것이다라는 조건이 항상 따라왔다. 하나님의 마음이 편엽해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거룩해 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을 달고 언약을 맺으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언약은 앞서 말씀드린 언약들과 다르다. 본문 창세기 9:16 을 같이 읽자.
Genesis 9:16 NKRV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께서 구름 사이에 나타난 무지개를 보시고 기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기억하다’라는 말은 ‘알아보기 위하여 표시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는 기억한다 하면 머리 속으로 과거의 무엇을 떠올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기억하다는 말은 눈으로 직접 보고 때론 손으로도 만질 수 있게 표시해 놓은 어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언약의 증표로 삼으시고 그것을 하나님이 보실 때마다 기억하신다고 하신 것은 노아의 요구 때문에도 그러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건망증이 있으셔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찬 것으로 인해 비록 물로 땅을 심판하셨지만,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셨다. 부모가 자녀를 채벌할 때 순간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채벌이 다 끝난 후 아이가 방에 들어가 울다 지쳐 잠이 드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도 편치가 않다. 어릴 적 아버지께 아주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얼마나 대나무 회초리로 많이 맞았는지 종아리가 매 자국으로 퉁퉁부었다. 그날 밤 아버지가 엎드려 자고 있는 제 종아리를 문질러 주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잠결에 스치듯 보았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그 회초리로 맞는 일이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마 이와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물로 땅의 모든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내신 하나님께서 더이상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인간과 언약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다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무지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무지개와 같은 표식이다.
우리는 지난 주 산상변모주일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나눴다. 영광스런 형체로 변형되신 예수께서는 새하얗게 빛이 났다. 그리고 구름이 일어나 예수를 중심으로 거기 있는 모든 자들을 뒤덮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아라”(막 9:7b)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비슷하지만 구름이 없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가 바로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바라보시고 사람들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막 1:17b)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도 스스로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 14:62)고 하셨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실 때 구름 속으로 올라가시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행 1:9).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계시고 또 사람들과 함께 거니시는 예수를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라. “내가 때가 되면 참고 참았던 내 분노로 저들을 꼭 심판하겠다.”라고 하셨겠는가 아니면 “상한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 자녀들이 너무나 불쌍하구나”라고 하셨는지는 본문의 무지개 증표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예레미야 29:11 에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남유다를 향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고 하셨다. 요한복음 3:16–17 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를 보실 때마다 이 세상을 향한 스스로 하신 사랑의 다짐을 늘 떠올리셨다.
이제 우리는 노아에게 보여준 무지개와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다짐 뒤에는 하나님의 마음은 엄청난 아픔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아픔은 죄악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아픔이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깨끗하게 하셨지만, 다시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선택했다. 이 세상은 미움과 다툼이 넘쳐나고, 강한자가 약한자를 괴롭히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월을 아껴야 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부질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간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시며 하나님은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시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더 간절하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맺으신 언약은 심판이 아닌 회복이다. 채찍이 아닌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창 9:17)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연약하여 아무 것도 모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 때문에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사람들이 요구하기 전에 사랑의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세상을 심판하지 안으시겠다는 언약을 지키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자 그 사랑의 증거이다. 홍수 후, 무지개가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였던 것처럼 예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유일한 증거이다.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확실히 믿고 그 언약을 늘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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