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_하나님의 버려두심(롬 1: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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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_하나님의 버려두심(롬 1:26-32)
<서론>
바울은 모든 인간이 진노 아래 있는 이유를, 하나님의 공의(성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18).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구체적인 죄는, “모든 경건치 않음”이라고 말했습니다.(1:19-25).
이 시간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인간의 죄악상을 살피고,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발장 같습니다. 어찌나 죄목이 많은지, 그 뜻만 풀어도 하루가 걸릴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하구나!」 탄식한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렇게 악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바울은 26절에서 “이 때문에”로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는 25절을 이어가는 내용입니다.
풀면, 사람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기때문에」 하나님이내버려 두셨다」(26)것입니다.
그런데 28절에서도,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내버려 두사」(28)라고 말합니다.
「내버려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론처럼 말한다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끝장이 「내버려 둔다」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하다」입니다.
어릴 적(국민학교 때) 저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끔씩 할머니를 대신해서 하는 일이었는데, 리어커를 끌고 가서, 돼지에게 줄 잔반(구정물)동네 식당에서 걷어오는 일이었습니다.
무서운 할머니가 시켰으니 안할 수는 없고, 입이 이~만큼 나와서는 징징대고 갑니다. 하기 시른 일이니 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번은, 어느 정도 채워진 구정물 리어커를 세워두고, 마지막 식당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리어커가 없어요. 하~~ 리어커는 혼자서 구정물을 튀기면서 신작로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손잡이를 다시 잡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뛰어서 따라갔지만 리어커는 더 빨리 굴러가다가 경계석에 걸려 뒤집혔습니다. 저는 그날 무지 혼났습니다. 창피! no no 돼지 굶었으니까!
죄에 대한 진노의 일면이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입니다.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의 결과비참함입니다. 타락한 본성은 더욱 악하게 타락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심(26–27)
바울은 먼저, 싫어하는 자를 하나님은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욕심’(πάθος)은 성적 욕구(욕정)으로(살전 4:5; 골 3:5),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범하는 대표적인 죄는 ‘성적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중에 특히 ‘성적타락의 극치’인 ‘동성애’를 지적합니다.
바울은 “여자들이 순리(順理)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逆理)대로 쓴다”고 말합니다(26下).
순리대로 쓸 것”은 원어 적으로 ‘자연적 사용’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질서를 따라 자연스런 성적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리대로 쓰며”는 원어 적으로 ‘자연을 벗어난(거스르는) 사용’입니다(롬 11:24).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벗어난 동성 간의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왜 여자들의 죄가 여기에 먼저 나온 것일까요? 여자들의 죄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성범죄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먼저 여자의 동성애를 말함으로, 죄의 심각성을 말하기 위해 점강법으로 서술합니다.
그래서 27절은 “그와 같이”(27) 남자들도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성 간의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27절).
여기서 바울은 동성애를 “부끄러운 일”(27)이라고 말합니다.
부끄러움’의 어원은 원래 ‘규격에 맞지 않아서 수치를 가져오는 행동’입니다.
동성애가 왜? 부끄러운 일이냐 하면, 단순히 남들이 하지 않는 튀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님의 규격과 이치에 맞지 않는 불법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병’(病)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피해야 할 ‘죄’(罪)입니다(레 18:22; 20:13; 고전 6:9–10; 딤전 1:10).
바울이「순리와 역리」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부패한 인간에게 제일먼저 오는 현상옳고 그른 것’에 대한 혼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치관 타락의 극치가 성적 타락; 동성애입니다.
창세기 19장에는 동성애 실례가 나오는데요, 천사들이 소돔(롯의 집)에 들어가자, 남녀노소 온 동네 사람이 모여들어서 들어서그 사람들을 내놔라! 우리가 상관(יָדַע 성관계) 하겠다’고 했습니다.
로마 초기 15명의 황제 중 14명이 동성애였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로마사람들은 번영을 누리다 보니 권태가 왔습니다. 무엇을 해도 이제 더 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자, 동성애에 빠졌습니다.
이 시대는 어떤가요? 소돔과 로마보다나아졌나요? 아닙니다. 소위 ‘성 소수자’라는 그럴싸한 면책권까지 부여하며, 예전에는 이라고 말하더니, 이제는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합리화 시킵니다. 권리포장되고 미화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입니다.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이기에,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는 것”(27下) 말합니다.
결국, 소돔과 로마는 “그릇됨”에 대한 “보응”으로 멸망 받음으로, 그 부끄러운 일을 종식했듯이, 우리와 이시대가 이 추악한 죄를 멈추지 않는다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상실한 마음에 내버려 두심(28–32)
그런데, 바울은 내버려 두심더 강하게그들을 상실한 마음에 내버려 두신다”고 말합니다.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내리막길로 내달리는 타락은에 대하여, 바울은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다”(28上)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께 동의」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삶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고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적용해 본다면, 성도의 마음에서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고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하는 불신앙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람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28中)고 바울은 강하게 말합니다.
상실한 마음’은 「합당치 않은 생각」이란 뜻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합당치 않은 생각」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 결과 “합당하지 못한 일”(28하)을 행하는 것, 온갖 죄악 된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죄악의 내용이 29–32절입니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내버려 두는 자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로 가득하다(29上).
불의」는 의가 없는 것으로, 하나님께 맞서는 부당한 삶의 방식입니다.
모든 불의」라는 단어에 주목해야합니다. 이는 그 삶의 태도가 「하나님께 맞서는 삶의 방식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집착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릇되게 이용하는 행동입니다.
어머님과 함께 드라마를 볼 때, 어머님은 한 번씩 드라마에 몰입하신 나머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이~잘 코뱅이, 이~ 저년은 미친년이여~~ 지가 잘못 혀 노코, 맨~날 넘 탓만 헌 당게~’
가끔씩 막장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캐릭터자신의 악행 자체도 제 탓이 아니라며,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떠난 인생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모든 불의」로 자신과 이웃들의 인생의 밭을 망가뜨리는 난동을 부리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결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만 해당 되는 메시지가 아니고, 저와 여러분의 삶의 방식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 손에 붙들림 받아야하는 이유입니다. 다윗이 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고 기도했는지 실감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이 내버려 두는 자의 모습‘「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다’(29下)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내버려 두는 자의 모습을 대해 말합니다.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오만하여)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하는 자」(약속을 무시하는 사람)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29끝-31)
눈에 들어오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수근수군 하는 자」는 ‘뒷담화’라고 하죠. 은밀하게 다른 사람의 등 뒤에서 험담하면서 그에 대해 수군거리며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다.
비방하는 자」는 뒷담화와는 다르게 큰 소리로 공개적으로 중상모략자입니다.
수근수군 하는 자」「비방하는 자」는 양태만 다르지 똑같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이든 아니든 퍼뜨리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명성에 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패한 마음으로 쉬 범할 수 있는 죄라서 두려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이 내버려 두는 자가 범하는 죄를 하나 더 말합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32)
이 모든 죄를 범하는 사람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도, 「자신들만 이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는 자의 종점이고 최고의 죄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죄를 정당화할 꺼리를 찾는 행위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우리는 부끄러운 욕심을 따라 죄를 짓습니다.
그 대표적인 죄가 성적 타락입니다. 특히 동성연애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죄입니다. 동성애를 「」으로, 혹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며 「갠찬다」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동성애는 「순리가 아닌 역리」 「하나님 창조질서에 거스리는 죄 이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우리는 온갖 죄를 더합니다.
옛날이나 이 시대나 하나님을 떠나간 사람들은 죄는 짓는 죄인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이런 죄를 짓는 사람들을 옳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죄는 아무리 숨기고 핑개하고 그 안에서 거짓 위안을 찾으려 해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싫어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억지로 따르게 하지 않으시고 내 버려두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내버려 두시는 것은 자유(행복)가 아니라 불행(저주)입니다.
죄악 투성이인 우리에게 사형이 아닌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길은 없습니다. 깨끗한 모습으로 완전히 바꿔야합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부패한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새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이시오 구원자로 믿는 순간 모든 죄는 용서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마음과 행동을 이끌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주님으로 모신 성도의 특권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손을 꼭 붙잡고 계십니다. 이 은혜를 믿으고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우리 손을 붙잡으셔서, 인생의 수레가 죄악의 구렁으로 구르지 않도록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고백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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