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보다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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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식보다 순종
본문: 히브리서 5:8-9
(히5:8)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Though he were a Son, yet learned he obedience by the things which he suffered;
(히5:9)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 And being made perfect, he became the author of eternal salvation unto all them that obey him;
오늘은 지식과 순종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 지식의 문제는 창세기 3장에서부터 우리에게 죄의 유혹을 받는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창세기 2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창2:16)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thou mayest freely eat: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thou shalt surely die.
동산의 모든 남우에서 나는 것을 마음대로 먹으라는 말씀에 순종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여자는 하나님께서 금지한 지식과 관련된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창세기 3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창3:6)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으니라. And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make one wise,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gave also unto her husband with her; and he did eat.
지금도 우리가 말씀에 대해서 순종의 자세를 갖기 보다 지혜롭게할 만큼 탐스러운 지식의 열매에 관심을 갖는건 아닌지 되돌아 봤으면 합니다.
순종이란
주님이 행하라고 하는 명령에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주님이 믿으라고 하는 명령에 믿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종의 자세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특히 고난이 따르는 일에 순종할때 그 순종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즉 하기 싫은 일도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내가 이해가 되면 하고 이해가 안되면 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인의 뜻을 잘 이해하고 순종하면 더 좋겠지만
주인의 뜻이 뭔지 잘 몰라도 주님이 명하면 행해야 합니다.
자신이 이해될때까지 기다렸다가 명령에 순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이 이해할때까지 행하지 않거나,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 행하려고 하는 분들이 계신것 같습니다.
(요6:38)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 For I ca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ine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아브라함의 순종
(창22:1) 이 일들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22:2)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줄 산들 중의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헌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주셨다면 이 명령을 여러분의 지식이나 지혜로 다 이해하고 따를 수 있으신가요?
이 사실을 후대 신학자가 어쩌구 저쩌구 분석을 할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이 자신의 두뇌로 이해가 되어서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식으로 전부 이해하고 행동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의 순종은 그냥 순종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가 가질수 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거슬러서 주님께 순종한 것입니다. 즉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서 주님께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최종 결과물로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은 순종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한 내용을 종이에 적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서로의 지체들에게 자신의 순종을 결과물로 내어 놓아야지
자신의 분석력을 결과물로 내어 놓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교회 감독과 교사들을 통해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것은 과정이고 결과물은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순종으로 주님의 명령에 화답하지 않고
가르친것에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말로 답변하고 이야기만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종착점이 아닙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배우고 익혀서 믿을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결과물은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창22:10) 자기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더니
(창22:11)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므로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22:12)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하니라.
(창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릴 순종을 행할 것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아야 했고,
마귀가 보아야 했고, ->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야 합니다.
이삭이 보아야 했습니다. -> 이삭을 통해 믿음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는날 우리가 그 기록을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창22:15) ¶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창22:16)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였노라. 곧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즉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창22:17)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창22:18)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왜 제 아들을 바치라고 했는지 이해했습니다.
이런 답변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구했던 유월절 사건으로 가보겠습니다.
유월절 사건으로 가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1장과 12장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 땅에서 데려나오기 위해서 10번째 마지막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그 재앙은 이렇습니다.
(출11:4) 모세가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자정이 될 즈음에 내가 이집트 한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출11:5) 이집트 땅의 처음 난 모든 것은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처음 난 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처음 난 자까지 죽고 짐승의 처음 난 모든 것도 죽으리라.
(출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서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자기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이로써 주가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을 두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양을 잡아 그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양옆 기둥과 위의 문기둥에 뿌리도록 했습니다.
(출12:7) 그들은 피를 취하여 그것을 먹을 집의 양옆 기둥과 위의 문기둥에 뿌리고
(출12:13) 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가 되게 할지니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표가 되어있는 집은 넘어가고 아니면 재앙을 당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표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실 수 없을까요?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것을 보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탄도 보아야 합니다.
이집트사람이 보고있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고 전해야 합니다.
투덜거리면서 하던 즐겁게 하던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한대로 했는지 안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절대로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편하게 잠을 청한사람이던
걱정하며 밥을 새운 사람이던 우리의 상태나 감정은
주님의 약속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 당시 이들에게 주어진 명령이고 이 명령은 믿으라고 주신 명령이 아니고 행하라고 주신 명령입니다.
홍해를 가르게한 순종
(출14:15) ¶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되
(출14:16) 너는 네 막대기를 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를 나누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 마른 땅 위로 가리라.
이스라엘이 행하는 것이 먼저고 기적은 다음입니다.
우리의 순종이 먼저 있어야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행할 것을 먼저 요구하십니다.
마른 땅을 가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여러분이 바지춤을 잡다 당겨서 뒤꿈치를 들고 젖은 당을 이리저리 물을 피해 건너게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완전하고 온전한 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요르단강을 가르게 한 순종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는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수3:7) ¶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이 날 내가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너를 크게 만들기 시작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 같이 너와 함께할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수3:8) 너는 언약 궤를 메는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르단의 물가에 이르거든 요르단 속에 가만히 서라, 하라, 하시니라.
(수3:13) 주 곧 온 땅의 주의 궤를 메는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르단의 물들 속에서 멈추어 서면 곧바로 요르단의 물들이 위에서 내려오는 물들로부터 끊어지고 일어서서 한 무더기 위에 쌓이리라, 하니라.
주님은 이들이 발바닥이 요르단 물들 속으로 먼저 들어가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가 없이도 강물이 멈추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의 행위를 보이도록 명하고 계시는 겁니다.
(수3:14) ¶ 백성이 요르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에서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백성 앞에서 언약 궤를 메니라.
(수3:15) (요르단이 수확할 때에 항상 그것의 모든 둑에서 흘러넘치므로) 궤를 멘 자들이 요르단에 이르매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서 잠기니라.
(수3:16)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물들이 일어서고 솟아올라 사르단 옆의 도시 아담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무더기 위에 쌓이며 평야의 바다 곧 염해로 내려가던 물들은 모자라서 끊어지매 백성이 똑바로 여리고를 마주보며 건넜더라.
(수3:17) 주의 언약 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르단 한가운데서 마른 땅에 굳게 섰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마른 땅을 건너더니 마침내 온 백성이 깨끗하게 요르단을 건너니라.
언약 궤를 멘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다 건너갈때까지 강 가운데 멈춰서있게 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다 건넌 후에야 제사장들이 언약 궤를 매고 마지막에 건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하나님께서 일을 완성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건너는 백성들은 마음이 조마조마 하지 않고 건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언약 궤가 문제의 한 가운데서 모든 백성이 건널때 까지 문제를 해결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분이 우리 주님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하지 않으신가요?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말씀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요일5: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우주보다 크신 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요3:1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We speak that we do know, and testify that we have seen; and ye receive not our witness.
(요3:12) 내가 땅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 If I have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e believe not, how shall ye believe, if I tell you of heavenly things?
(요3:13)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And no man hath ascended up to heaven, but he that came down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이 땅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자신이 하늘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래도 여전히 하늘에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태로 와 계시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에 계신다고 말 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분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처녀탄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리아의 처녀 출생과 예수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여러분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노력일 뿐입니다.
그러한 불가능한 노력은 오히려 여러분의 믿음에 악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머리는 결코 이에 대한 해답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며 억지로 이해하는 척 하려다고 엉망이 되어버려 처리할 수 없는 엉터리 이론 만을 생산해 낼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모한 노력은 오히려 어둠만 가려올 것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Behold, a virgin shall be with child, and shall bring forth a son, and they shall call his name Emmanuel, which being interpreted is, God with us.
억지로 이해하려하면 안됩니다.
(벧후3:16) 또 그의 모든 서신에서도 이것들에 관해 그 안에서 말하였으되 그 안에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므로 배우지 못하여 불안정한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과 같이 그것들도 왜곡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느니라.
(벧후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들을 미리 알았은즉 그 사악한 자들의 오류에 이끌려 너희도 너희 자신의 굳건함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시119:130)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
(시119:105) (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빛을 주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들어오면 내안에 빛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왜곡이 생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어둠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성경이 제시하시는 그 이상을 알기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암흑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는 그 이상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기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뭔가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생각으로 뭔가 만들어 낸다면 여러분은 빛의 세계가 아니라 어둠의 세계를 맛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알려주는데 까지만 알면됩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지나쳐서 빛의 경계를 넘지 마셔야 합니다. 지나치다 판단이 되면 멈추시고 그냥 빛가운데 머무시며 즐기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통해 완전하게 되심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되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점점 이해되고 깨달아 지는것이 있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된 자세로 섬긴다면 주님의 명령은 내 이해와 상관없이 행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머리로만 주님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머리 수준의 양 만큼밖에 알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주님의 수준을 알려면 순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먼저 순종했고 사흘길을 떠나면서 아들 이삭과의 대화에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22:7)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그가 이르되, 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And Isaac spake unto Abraham his father, and said, My father: and he said, Here am I, my son. And he said, Behold the fire and the wood: but where is the lamb for a burnt offering?
(창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And Abraham said,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 so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
우리모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시길 바랍니다.
순종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종의 자세가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이 뭔가 안다고 하면서 그에 합당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불순종 하는 사람입니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그들은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대해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They profess that they know God; but in works they deny him, being abominable, and disobedient, and unto every good work reprobate.
(고후5:10)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very one may receive the things done in his body, according to that he hath done, whether it be good or bad.
(고전8:2)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 And if any man think that he knoweth any thing, he knoweth nothing yet as he ought to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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