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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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본문말씀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죽고 사는 문제
모든 사람이 종교를 가지려고하고 또 종교를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잘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우리가 죽음을 이기지 못하면 이런 것들은 그저 잠시 인간의 욕구를 해결하는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는 죽음을 해결하거나 죽음 후에 좋은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해결하는 것이 최종 목표하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살기위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약도 먹고 병원에도 다니고 하지만 결국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는 속도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죽음의 문제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죄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죄로인한 사망이 우리 모두에게 임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왕도 죽고, 대통령도 죽고, 의사도 죽고, 과학자도 죽고, 철학자도 죽고,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모든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목격해 왔습니다.
이문제는 현재 여러분이 목격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지않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믿음으로 살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복음을 믿으면 얻게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고 주님이 주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살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 방법은 우리가 그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인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와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의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을 때는 각자 자신의 의를 내세우게 됩니다.
우리는 전부 자신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삿21:25)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우리 모두 각자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동일할까요?
각자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이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 좋은 일이고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의 제삿날에 가족을 모아 놓고
보이지도 않는 조상신이 와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듣는것처럼 이야기도 합니다.
그들은 제삿상을 안차리면 조상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이라고 욕하곤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양로원에 다니면서 나이드신 노인들을 살피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은 의로운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장애인들을 돌보며 자신의 의를 성취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을 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의가 가장 숭고하고 가치있는 것 처럼 여기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런 의는 하나님께 더러운 누더기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사64:6)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갔나이다.
이제 여러분은 올바른 지식에 따른 하나님의 의를 알아야 합니다. 지식에 따르지 않는 의는 자신의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롬10:2)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3)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의의 수준은 하나님과 동일한 수준의 의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더 잘났고 내가 더 의롭다고 말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귀신은 저런사람 안잡아 가지?
나는 그런 죄는 안지어?
재는 왜 저러고 사는지 몰라!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의”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창15:3)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은즉,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창15:4)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 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더라.
(창15:5)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창15: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하늘의 별을 셀 수 있을까요?
미래에 태어난 자신의 자손들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주님 제가 주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곧 주님을 믿는 것이 “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15:12) 해가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였고, 보라, 큰 어둠의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라.
말씀의 전개를 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세어 보라고 한 시점이 밤이 아니라 한 낮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낮에 부르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는데 낮에 하늘을 보고 별을 세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에 별이 보여도 사실 셀수 있는 양의 숫자는 아닐겁니다. 하지만 낮에는 별을 볼수 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한 낮에 볼 수 없는 별을 세어보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의 자손의 숫자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믿을 수 있다면 다른 것도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15: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성경에 “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면서 이 “의”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이 등장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약속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그것을 믿겠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내가 그 약속을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바로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된 “의”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된 “의”를 보겠습니다.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불리더라. 그분은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느니라.
성경의 첫번째 책에 등장하는 “의”와 성경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의”가 기록된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 내용입니다.
첫 번째 등장은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의”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시는 내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로마서로 돌아오겠습니다. 의와 복음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롬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믿고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모든 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은 모든 자에게 나타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자에게는 이 구원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로 내용이 이어집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은 구원에 관한 것이고 그 구원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의는 그것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구원, 하나님의 의, 믿음은 한 세트로 작동해서 우리에게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생명을 제공하게 됩니다.
지금 이 구절만 가지고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복음의 정의
그럼 복음이 뭘까요? 고린도전서 15장에 복음의 정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고전15:3)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제시하십니다.
17절 “하나님의 의가 … 계시되어 있나니”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 방법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죄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바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구원받을 방법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구원받을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죄인을 구원하고 계시고 있고 그분이 제시한 방법으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의로운 방법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스스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방법으로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그분이 제시하는 구원의 방법이 옳은 길이고 여러분이 그 길을 따라오기만 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으며 그럴수 있는 모든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요17:2)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육체를 다스리는 권능을 주셨사오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그가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해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제시하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그 무엇도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여러분의 수고를 통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보다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실 수 있으신가요?
이렇게 쉽고 간단한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결국 여러분을 모두 멸망시켜 버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꾸 자신이 한 무언가를 가지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1억을 조건으로 구원을 준다거나
평생 술을 마지지 않으면 구원을 준다거나,
또는 낮은마음 침례교회를 10번 참석하면 구원을 준다거나,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을 제시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래도 불공평하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1억이 없다고 불평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나는 술없이는 잠시도 못산다고 불평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교회가 집에서 멀어서 10번을 참석하기 힘들다고 불평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믿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매번 믿음을 행사합니다.
다리를 건너갈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건너갑니다.
버스를 탈 때도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다 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탑니다.
믿음은 누구가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구원의 방법 보다 더 쉬운 방법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제시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올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언가 희생하기를 원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방법만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하는 옳은 방법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옳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은자를 의로 여기시고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복음안에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사람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 보다 더 선한 일을 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머지 인생을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 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 충분한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제시할 수 있는 그 어떤 희생과 의로 하나님 그분의 아들의 피보다 값진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죄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내 아들이 그 죄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런데 네가 나에게 너를 부당하게 대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감히 네가 내 아들의 피값보다 더 의로운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으냐?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는 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잘못하고 있는데 그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혼내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그 자녀들이 지옥으로 향하는 것을 돕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할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우리를 꾸짖지 않고 혼내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대하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이야기 한다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내려오셔서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 모두 하늘나라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때문에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와 동일한 수준의 완전한 의를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우리 교회가 어떻고 우리 목사가 어떻고
우리 교회를 다니면 뭐가 좋은지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교회에서 저교회로 옮기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지 않다면 믿을 필요가 있을까요?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길과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롬3:22)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불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구원받기에 충분한 상태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ㅛ 섬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폭행을 하는 사람들을 벌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만 세상의 정부를 향해서는 의롭지 못하다고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가 집행되기를 원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조금 의롭지 않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남의 물건을 훔치다 걸리면 긍휼을 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 걸리면 감옥에 가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하늘의 별을 보면서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의를 알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뿐입니다.
그곳은 바로 복음입니다.
하늘의 별이나 바다나 나무들 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갈보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롬10:1) 형제들아, 이스라엘을 위한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곧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니라.
(롬10:2)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3)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4)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
복음에만 하나님의 의가 계시됩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죄들을 사면하신 하나님의 의
(롬3:25)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롬3:26)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천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천사는 성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낳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인들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었다면 그 죄는 그들 자신이 모두 책임을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사보다 조금 낮게 만들어졌고 사람은 자신의 죄가 아닌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 아기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지 않고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상황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의 피로 대신 이들의 모든 죄값을 위해 지불하셨습니다. 우리 인류역사의 과거의 모든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의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날 것을 예언한 하나님의 의
(사56: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판단의 공의를 지키며 정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이르렀고 나의 의가 곧 나타나리라. Thus saith the LORD, Keep ye judgment, and do justice: for my salvation is near to come, and my righteousness to be revealed.
하나님의 의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뭔가요? 그것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사야 56:1에서 기다려라 곧 내가 그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곧 나타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로 가보겠습니다.
1장 17절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계시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Revealed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갈보리를 보라고 하십니다.
보아라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저것이 바로 나의 의다.
(롬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롬3:22)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