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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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
본문말씀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게으름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
참으로 냉혹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대부분 교회에 가면 거져 밥도 주고 돈도 주고 나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면 채워주는 곳이라고는 많이 알고 있는데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표현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설어 보이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균형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 간혹 잘못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먹고 사는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없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저절로 만들어 줄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면 오늘 부터는 그 기대를 완전히 접어서 쓰레기 통에 넣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여러분은 말씀의 지식에 따라 순종하고 일해야 합니다. 아무 근거없는 믿음으로 자신감만가지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창조된 인간에게 맡기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산을 가꾸고 유지하는 일 입니다.
(창2:15) 주 하나님께서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더라. And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to the garden of Eden to dress it and to keep it.
동산을 가꾸고 지키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죄로 타락하기 전의 에덴의 동산은 오늘 날의 자연환경과는 완전히 달라서 적절하게 비유를 들 수는 없습니다.
어쩔수 없이 오늘 환경을 예로 든다면
잔디밭 하나 가꾸고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우리가 원하는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잡초를 뽑고 적절한 영양제를 주고 제초제를 주고 너무 길게 자라기 전에 잘라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안을 관리 유지하는 건 어떻습니까?
유지 하려면 매일 청소를 해줘야 하고
문고리가 흔리면 더 흔들리기 전에 조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로 조여주지 않으면 문고리 구멍까지 망가지고 문이 망가지게 됩니다.
아담이 당시에 동산을 가꾸는 일이 오늘날 보다 더 쉬웠을 것같지는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에는 일하는 것이 기쁨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일이라는 것이 땀을 흘려야 하는 힘든 상황이 된 것은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부터인 것 같습니다.
(창3:19)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부터는 즐거움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기위해서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이후에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린 형벌에 예외 일 수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여자의 자궁을 통해서 이땅에 오셔서 이간이 격어야 하는 일을 그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몸소 겪으셨습니다.
(히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예수님도 직업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목수로 일해왔습니다.
(막6: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니라. I
목수는 구약에서 대표적인 기술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목수는 성전을 건축할때 언급되기도 하고
우상을 만드는 일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목수는 나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쇠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목수라는 일이 고소득 직종이 아니었을 겁니다. 땀흘려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사44:12) 대장장이는 부집게로 숯 가운데서 일하고 쇠망치로 그것의 모양을 내며 자기 팔의 힘으로 그것을 가공하나 참으로 배가 고프면 그의 힘도 없어지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그가 활기를 잃는도다.
사랑 이외에는 빚지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롬13: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느니라. Owe no man any thing, but to love one another: for he that loveth another hath fulfilled the law.
일을 해야하는 이유는 일을 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딤전5:8) 그러나 누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집 사람들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나쁜 자니라. But if any provide not for his own, and specially for those of his own house, he hath denied the faith, and is worse than an infidel.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제시로 주님 명령이 있습니다.
일을 해야하는 이유는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이유와 다른 다람에게 빚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오늘날 일하지 않는 게으름의 문제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후3:7) 너희가 어떻게 우리를 따라야 할지 너희 스스로 아느니라. 우리는 너희 가운데서 질서 없이 행하지 아니하였고 For yourselves know how ye ought to follow us: for we behaved not ourselves disorderly among you;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형제 자매들 사이에 질서있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는 질서를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생각은 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할지니라. Let all things be done decently and in order.
바울은 자신이 질서있게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 가운데서”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다른 곳에 손님으로 가서 질서 없이 행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후3:8) 누구의 빵이든 거저먹지 아니하였으며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수고와 해산의 고통 속에서 밤낮으로 일하였나니 Neither did we eat any man’s bread for nought; but wrought with labour and travail night and day, that we might not be chargeable to any of you:
바울은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것을 거저먹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손님으로 찾아간 곳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폐를 끼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빵의 문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지게 된다면 복음을 통해 혼을 얻는 일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하기위해서 손님으로 찾아간 곳에서 금전적인 문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역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위치에 있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그리스도인)이 가능하면 베푸는 위치에 있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금전적인 문제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3절로 가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3차여정의 마지막 즈음에 에베소에서 감독을 세우고 에베소 형제들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행20:33) 내가 어떤 사람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내지 아니하였으며 I have coveted no man’s silver, or gold, or apparel.
누가 뭐 거저 안주나, 누가 뭐좀 안사주나, 이런 마음은 다 탐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표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물질로 섬기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건 섬김에 대해서 탐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행20:34) 참으로 너희가 알거니와 내가 이 손으로 나의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였고 또 나와 함께한 자들을 섬겼노라. Yea, ye yourselves know, that these hands have ministered unto my necessities, and to them that were with me.
바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자신과 함께한 자들을 섬기는 것을 자신의 수고로 마련한 것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남의 돈으로 섬기는 것은 내가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행20:35)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되 곧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하고 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 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였느니라. I have shewed you all things, how that so labouring ye ought to support the weak, and to remember the words of the Lord Jesus, how he said,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하고”
각자가 수고해서 자신의 것으로 다른 사람 약한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남의 것으로 남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적어도 내가 돕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자”는 일할 수 있는데 일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과부
자녀가 있는 과부는 자녀가 부양해야 합니다.
(딤전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이 먼저 집에서 효성을 보여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려면 줄 것이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줄 것을 마련하려면 수고하고 일해서 벌어야 합니다.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을 통해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일하고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교회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왔다면 그것은 교회가 도운 것이지 내가 도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심심치 않게 많은 사역자들이 교회의 공적인 돈으로 사적인 선행을 베푸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교회에서 뭔가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도 종종있어 보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게 하면 도둑질 이라고 합니다.
제가 회사돈으로 불우 이웃을 도우면 그것은 회사 이름으로 돕는다고 해야 합니다.
회사돈을 천만원 빼서 방송사에 불우이웃 도움 성금으로 제출하면서 안성식이 기부한 것으로 되면 공금 횡령입니다.
교회와 성도 개인은 이런 일에 더 정직해야 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이 권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교회의 자금은 교회 목사가 이리저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전권을 가지고 있어서
성도들이 목사에게 잘보이면 교회 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정당한 질서가 아닙니다.
교회는 공평한 저울로 성도들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대로 운영되어야 혼란이 생기지 않습니다.
만일 성도든 교회 목사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질서가 아닌 방법으로 교회 돈이 외곡되게 집행된다면 하나님의 돈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성경적 기준으로 구제받을 대상인지 명확해야 다른 성도들이 승복할 것입니다.
교회 목사가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 주면 교회에 혼란이 생기게 되고
교회 안에서 화평이 깨지게 됩니다.
(말3:8) ¶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 Will a man rob God? Yet ye have robbed me. But ye say, Wherein have we robbed thee? In tithes and offerings.
우리는 형식은 선함을 갖춥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의 저울과 판단이 없다면 그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9절로 이어 가겠습니다.
(살후3:9) 이것은 우리에게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너희의 본으로 만들어 우리를 따르게 하려 함이었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 사역으로 성도들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권한도 예수그리스도의 올바른 본을 위해서 그 권한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드러날 수 있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의 권한을 포기할 필요가 있을때도 있습니다.
다음 10절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명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면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일하지 않고 먹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둑질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수고로 빵을 먹어야 하기때문 그런 행위가 도둑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엡4:28)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것을 할지니라.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엡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리스도인이 되고 몇년이 지났는데도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구걸하는 간증을 하는 경우를 자주보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기도를 했더니
갑자기 저희와 연락도 없던 부모님들이 먹을 것과 용돈을 보내 주셨어요..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에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제가 조금 비약한 면이 있지만 이런 구걸식 간증을 자주 듣게 됩니다.
만일 구원받지 않은 부모님이라면
연락을 끊고 있던 부모님이 차마 자식 굶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먹을 것과 용돈을 보내 주셨다면
그런 부모님께 복음을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된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구원받지 않은 부모님께 먹을 것과 용돈을 드려야 그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더 좋은 마음밭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요?
열심히 일했는데 잘 안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후3:11)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 하는도다. For we hear that there are some which walk among you disorderly, working not at all, but are busybodies.
전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참견하는 일이 그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살후3:12) 이제 그러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명령하며 권면하노니 그들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빵을 먹을지니라. Now them that are such we command and exhort by our Lord Jesus Christ, that with quietness they work, and eat their own bread.
자기 먹을 빵은 자기가 일해서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최소한의 일입니다. 더 할 수 있다면 일을 더해서 나누어 줄수 있도록 일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게으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다른 구절들을 찾아 보겠습니다.
개미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잠6:6) ¶ 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개미의 길들을 깊이 살펴보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 Go to the ant, thou sluggard; consider her ways, and be wise:
부지런해야 부하게 됩니다.
(잠10:4) 손을 느리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나 부지런한 자의 손은 부하게 만드느니라. He becometh poor that dealeth with a slack hand: but the hand of the diligent maketh rich.
부지런해야 성공합니다.
(잠22:29) 자기 업무에 부지런한 사람을 네가 보느냐? 그는 왕들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들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Seest thou a man diligent in his business? he shall stand before kings; he shall not stand before mean men.
(왕상11:28) 그때에 이 사람 여로보암은 강한 용사더라. 그 청년이 부지런한 것을 솔로몬이 보고 그를 치리자로 삼아 요셉의 집의 모든 책무를 맡게 하였더라. And the man Jeroboam was a mighty man of valour: and Solomon seeing the young man that he was industrious, he made him ruler over all the charge of the house of Joseph.
게으른 것은 악한 것입니다.
(마25:26) 그의 주인이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으니 His lord answered and said unto him, Thou wicked and slothful servant, thou knewest that I reap where I sowed not, and gather where I have not strawed:
직장에서 주님을 섬기듯 일해야 합니다.
(골3:22)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Servants, obey in all things your masters according to the flesh; not with eyeservice, as menpleasers; but in singleness of heart, fearing God:
(골3: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And whatsoever ye do, do it heartily, as to the Lord, and not unto men;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 As sorrowful, yet alway rejoicing; as poor, yet making many rich; as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all things.
물론 이 말씀들은 영적인 부요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열심히 일할 때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라면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하는 길입니다.
(고전15:9)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니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불리기에 합당치 못하되 For I am the least of the apostles, that am not meet to be called an apostle, because I persecuted the church of God.
(고전15:1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which was bestowed upon me was not in vain; but I laboured more abundantly than they all: 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which was with me.
자신은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이자만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열심히 실하시기 바랍니다.
주부는 가정에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해셔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입니다.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고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길 입니다.
게으름은 무책임한 것이고 돌보아야 할 것을 돌보지 않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들은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힘든일은 하지 않고 쉽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입니다.
작은 일에 신실하지 않으면서 큰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작은 일에 신실해야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눅19:17) 그가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한 종아, 네가 매우 작은 일에 신실하였은즉 열 도시를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라, 하니라. And he said unto him, Well, thou good servant: because thou hast been faithful in a very little, have thou authority over ten cities.
신앙생활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빵과 가족 부양에는 게을리 하면서 자신의 육신적 쾌락을 위해서는 열심인 사람이 있습니까?
잘못된 부지런함
집이 싫어서 교회에 열심인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나중에 물으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그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였는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더 사용하였는지..
내가 준 재물을 헛되이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준 재물을 올바로 나누고 베푸는데 사용하였는지
내가 준 건강을 올바로 사용하였는지…
부지런히 일하고 수고하고 섬기는데 잘 사용하였는지…
(잠26: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The slothful man saith, there is a lion in the way; a lion is in the streets.
(잠26:14) 문짝이 자기의 돌쩌귀 위에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도 자기 침상 위에서 도느니라. As the door turneth upon his hinges, so doth the slothful upon his bed.
(잠26:15) 게으른 자는 자기 손을 품에 감추고 그것을 다시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괴로워하느니라. The slothful hideth his hand in his bosom; it grieveth him to bring it again to his mouth.
(잠26:16) 게으른 자는 이유를 댈 수 있는 일곱 사람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The sluggard is wiser in his own conceit than seven men that can render a reason.
혹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일하지 않고 부자가 되고
노력하지 않고 형제 자매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종교로 생각하셨다면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자가 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하게 사셔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딤전6: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And having food and raiment let us be therewith content.
가난하게 산다고 해도 여러분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있어야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sk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아들을 먹이고 키우고 입히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고도 남아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것으로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입니다.
약한자들을 돕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해야 우리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요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