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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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
본문: 롬3:23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이르기를 바라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 지점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출애굽기로 가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때 하나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출33:12) ¶ 모세가 주께 아뢰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이르기를,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셨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이름으로 알고 너도 내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도다, 하셨나이다.
“너를 이름으로 알고”
누군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으로 알고 계신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바벨탑에서 이름을 알리고자 했던 사람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거지 나사로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시고 모세의 이름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10:3)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들을 이름으로 불러 그것들을 밖으로 인도하느니라.
휴거때 일어날 일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듣고 올라가게 됩니다.
(출33:13) 그러므로 이제 원하오니 내가 주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이제 주의 길을 내게 보여 주사 내가 주를 알게 하시고 또 내가 주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또한 이 민족이 주의 백성임을 깊이 생각하소서, 하매
(출33:14)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앞에서 너와 함께 가리라. 내가 네게 안식을 주리라, 하시니
중보기도의 위력으로 뜻을 바꾸셨습니다. 3절에서는 같이 안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출33:3) 너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네 한가운데서 올라가지 아니하리라. 너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내가 길에서 너를 소멸시킬까 염려하노라, 하시니라.
(출33:15) 그가 그분께 아뢰되, 주께서 내 앞에서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여기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주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 어느 곳도 의미가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데 주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기도합니다.
(출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은 줄을 여기에서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니니이까? 그리하여 우리 곧 나와 주의 백성이 지면 위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구별되리이다, 하매
주님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증거는 주님이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민23:9) 내가 바위들 꼭대기에서 그를 보며 작은 산들에서 그를 바라보나니, 보라, 이 백성은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지 아니하리로다.
(출33:17)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한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네가 내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또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아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줄 율법을 모세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은혜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계십니다.
율법은 은혜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은혜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은혜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루시는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출33:18) 그가 이르되, 간청하오니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소서, 하매
모세가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영광이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불꽃이 튀기는 모습? 불빛이 번쩍거리는 모습?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현에 엄청난 현상을 상상하게 됩니다.
(출33:19)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고 주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할 것이요, 또 내가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내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은 바로 자신이 얼마나 선하고 은혜로운지를 그리고 긍휼이 많은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선하심입니다. 그분의 선하심은 그분의 은혜와 긍휼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내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가운데 보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별이있으라 하면 별이 생기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한 죄인이 있습니다.
이 죄인 그 자신의 죄로 하나님의 선함의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죄인은 의롭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형제를 미워합니다.
결국 이 죄인은 살인자이며 우상숭배자입니다.
이 죄인은 그대로라면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날 빛을 만드셨습니다.
(창1: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1: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셋째 날
(창1:10) 하나님께서 마른 육지를 땅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것을 바다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2) 땅이 풀과 자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자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나무 곧 열매 속에 씨가 있는 나무를 내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넷째 날 큰 광체 작은 광체를 만드시고
(창1:18)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고 어둠에서 빛을 나누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다섯째 날
(창1:21) 하나님께서 큰 고래들과 물들이 풍성히 낸, 움직이는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날개 달린 모든 날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섯째 날
(창1:31)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
이곳에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이브를 살게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죄를 지어서 선한 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더이상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로 가보겠습니다.
(갈4:4)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갈4:5)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충만한 때가 이르매 예수님이 여자에게서(남자없이) 나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아들로 입양하십니다.
요한 복음으로 가겠습니다.
(요1: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1:2)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말씀”이 창조자 이십니다. 그분은 오래전(처음에) 창조를 하셨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이미 모든 창조가 이루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영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그분이 구유에서 태어나실때도, 걸음마를 할때도, 12살에 회당에서 성경학자와 토론을 할때도, 목수로 일하면서 가족을 돌볼때도 이 땅에서 드러나 보이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한 분 만이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딤전3:16)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성령님께서 심사를해서 판단을 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는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의롭게 되었다고 성경님께서 판단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 이외 어떤 인간에게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하신 것이 없습니다.
아담도, 아브라함도 모세, 다윗, 솔로몬도 그 어떤 누구도 이런 평가를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마5:17) ¶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
(마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율법을 모두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어길 일은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전에는 없을 것이다.
(마9:10) ¶ 예수님께서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실 때에, 보라,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9:12)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마9:13)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의롭지 않은 자에게는 희생물이 필요하지 않고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긍휼이 많은 의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긍휼을 요구해야 합니다.
희생물을 태우고 곡물을 태우고 피를 흘리고 희생물을 흔드는 것으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긍휼의 하나님 만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 가운데 죽습니다.
(욥13:4) 그러나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없는 의사들이니라.
주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어긴적이 있는 사람은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주님의 법을 어긴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의사가 없었습니다.
눈이 아프면 안과 의사에게 가면 됩니다.
배가 아프면 내과 의사에게 가면 됩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를 고칠 의사는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희생물을 드리라고 처방전을 내리거나 율법을 지키라고 처방을 한면 그 방법으로는 죄의 문제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조상을 잘 모시면 여러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수 있을까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엉터리 의사입니다.
오래전 교도소 소장생활을 전국 여러곳에서 오래동한 하다가 정년 퇴임한 분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교도소에 온 흉악범 범죄자들의 부모님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 아들이 알고보면 착하다는 이야기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을 조직에 몸담고 있지 않아서 돌봐줄 조직도 없는 불쌍한 아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도소에 한 번도 안가 봤지만 마음에 탐심을 가져 본 적이 있다면 그 사람도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착한면도 찾아 볼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제일 악한 사람도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는 방법이 생긴 겁니다.
(요8:29)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도다.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 그분께서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요8:30) 그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더라.
아마도 우리 모두는 적어도 한 번은 주님을 기쁘게 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우리 중에 몇 분은 나는 가끔 주님을 기쁘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제외하고 나는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히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우리는 매번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마음이 생겼고 결국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도 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죄를 짓고자하는 마음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주님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소서”
“내가 나의 선함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내가 육신의 몸을 너희에게 가겠다.
그렇게 간 내가 바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다.
내가 그분을 통해 너희에게 나의 영광을 보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방법은 예수님의 삶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셨고 그분이 이땅에 오셔서 그분이 가신 모든 걸음이 선하셨습니다. 그분이 떠날때도 그분은 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는 장면에서
(마3:17)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변화산에서
(마17:5)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보라, 그 구름 속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므로
1-3절을 보면 이 자라리에 함께 있던 사람이
예수님까지 6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모세, 엘리야, 예수님
율법을 받은 모세와
많은 기적을 일으켰던 엘리야가 있었고
12사도중 대표자 3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여섯 명 모두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경에서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이들 모두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중에 오직 한 사람 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항상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의로우시사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선하심을 증언하고 계십니다.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께서는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셨으니 곧 그분은 거룩하시고 해가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실때 그분은 죄가 없으시고 거룩하셨습니다.
이 땅에 와 계신동안 그분은 어느 누구도 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거룩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으셨고
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어떤 죄나 죄인들과 결부되어 죄를 지으신 적이 없으시고
십자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영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방법은
바로 그분이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신화속의 많은 신들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신은 망치를 휘두르고 / 어떤 신은 번개를 내리치고 / 어떤 신은 물속에서 삽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신도 예수그리스도처럼 선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여자를 쫓아다니고 거짓말도하고 질투도 합니다.
한 분 한 하나님 만이 선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께서 희생물이 되셔서 단 한 번드려짐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영원히 해결해 주신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고 싶으신가요?
그분이 얼마나 선하신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영광은 기록된 율법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엄청남 힘이나 창조의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저와 우리같은 죄인을 향해 보여주시는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과 은혜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문장입니다.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학력이 낮아서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쉽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분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하는 것을 믿어야 그분이 무엇을 했는지를 믿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느니라.
그분을 믿으시나요?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분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분이 진리를 말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가 예수님처럼 선하지 않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의 선함이 예수님만큼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선함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시면 됩니다.
이보다 더 쉽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셨다면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며 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고 선하심으로 이웃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