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주일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3 views
Notes
Transcript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본문말씀
(벧전2:12)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너희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자기들이 바라볼 너희의 선한 행위들로 인해 돌아보시는 그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선함과 악함 VS 정직과 거짓
선한 일진지 악한 일인지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가치 판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기준으로 선하고 악한 것을 구분해 주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기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제 각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것과 정직하지 않은 것은 사실에 기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귀한 화분을 잘못해서 깼을때 우리는 아이에게 물어 봅니다.
“이거 니가 깼니?”
그럴때 정직한 아이는 “네 제가 깼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않은 아이는 다른 핑계를 댈것입니다.
정직한 아이에게 우리를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잘 했다 어차피 너무 낡아서 버리려고 했는데 왠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네가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정리하게 만들어 줬구나.”
하고 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고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직하지 못한것이 드러난다면 여러분이 전한 복음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이 정직하다고 인정받지 못한 다면 여러분의 무엇이 선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겸손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좋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겸손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면서 종말론을 꾀뚫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어떻게 여러분을 통해서 드러나겠습니까?
거짓말은 드러나게 됩니다.
만들어진 변명은 드러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거짓말하고 변명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그 복음이 어떻게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선한일에 철저히 갖추어져야 합니다.
(딤후3:15) 또 어린아이 때부터 네가 거룩한 성경 기록들을 알았나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딤후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실을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들은 선한 방법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은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일종의 훈련소라면 여러분의 실전의 전쟁터는 바로 여러분의 일상의 삶입니다.
각자의 삶에서 여러분이 선한행위로 이방인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물론 말로 복음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복음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삶이 이방인들에게 선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도 여러분의 삶이
개판으로 보여진다면 그 복음의 메세지는 힘을 잃어 버릴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모욕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짓말쟁이로 드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잠30:6)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말을 하면서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인정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자신이 필요한데로 이어붙이고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전하다가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난 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조작은 나중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역자는 돈문제로 깨끗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로 보상을 가로채면 안됩니다.
엘리사와 게하시
(왕하5:1)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 대장 나아만은 자기 주인에게 크고 존귀한 자였으니 이는 {주}께서 그를 통해 시리아에 구출을 주셨기 때문이더라. 그는 또한 강한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더라.
(왕하5:9) 이에 나아만이 자기의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왕하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어 이르되, 가서 요르단 속에서 일곱 번 씻으라. 그리하면 네 살이 다시 나와 네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니라.
(왕하5:11) 그러나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보라, 나는 그가 분명히 내게로 나아와 서서 {주} 자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부위를 손으로 쳐서 나병 환자를 회복시킬 줄로 생각하였도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종교적 치유입니다. 그래서 많은 거짓교사들이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왕하5:12) 다마스쿠스의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의 모든 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씻으면 정결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이에 돌아서서 분노하며 떠나가니
(왕하5:13) 그의 종들이 가까이 나아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만일 대언자가 주인에게 명하여 어떤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라면 주인께서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하셨으리이까? 그런즉 하물며 그가 주인에게 말하기를, 몸을 씻어 정결하게 되라, 함이리이까? 하매
(왕하5:14) 이에 그가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르단 속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의 살이 다시 나와 어린아이의 살같이 되고 그가 정결하게 되었더라.
나아만 장군이 확실한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했다기 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하면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종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에 순종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능력은 순종하는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만 그럴싸하게 하고 엘리사앞에서는 “네 네 반드시 명령대로 하겠습니다.”하고는 비웃으며 돌아갔다면 주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왕하5:15) ¶ 그가 자기의 온 무리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돌아가서 나아가 그 앞에 서서 이르되, 보소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땅에 [하나님]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복된 선물을 받으소서, 하였으나
엘리사에게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목사님을 초청해서 가정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모임을 하고 나면 목사에게 사례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겁니다.
때로는 사업장에 와서 기도도 해주고 예배도 해주고
장례예배도 해주고 하면 목사에게 감사의 사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보겠습니다.
(왕하5:16) 그가 이르되, 내가 서서 섬기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리라, 하매 그가 그것을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므로
나아만 장군이 강권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적용하면 주머니에 꽂아주고 난리를 쳤는데 엘리사는 안받은 겁니다.
만일 오늘날 처럼 목사 즉 감독이나 장로를 초빙해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개인적으로 사역자에게 사례를 한다면 돈 없는 사람은 부담스러워서 초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신약교회에서 감독이나 장로에게 사례를 하는 것은 교회가 급여로 책정해서 주는 경우라면 교회가 필요한 만큼 급여를 지불하고 성도들은 사례없이 목사님을 질서있게 초빙해서 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례를 하면 성도와 감독간에 왜곡된 관계가 발생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것입니다.
목사에게 선물 열심히 사다주는 사람이 잘못하면 그사람의 죄를 정확히 지적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과 장로의 역할을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 주 업무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주 업무로 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정직한 고백
나아만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겠습니다.
(왕하5: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원하건대 두 마리 노새의 짐이 될 만큼의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이제부터 당신의 종이 번제 헌물이든지 희생물이든지 다른 신들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오직 {주}께만 드리려 하나이다.
(왕하5:18) 이 일에서는 {주}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내 손에 의지하시므로 내가 림몬의 집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집에서 몸을 굽힐 때에 {주}께서 이 일에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 원하나이다, 하매
(왕하5:19)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이에 그가 그를 떠나 조금 가니라.
나아만의 정직한 고백을 보게됩니다.
이번 일로 인해서 나아만은 어느 분이 진정한 하나님이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주”께만 희생물을 드리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고백을 합니다.
자신의 군사적 질서에따르면 자신이 복종해야 할 대상이 있어서 현재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아만 장군은 이미 자신의 나약함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하나님을 불편하게 할 일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아만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지만 정직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나아만의 고백에 엘리사가 그의 결정과 고백을 제제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잘 아십니다.
나아만이 정직하게 고백한 이상 하나님께서 그를 선하게 인도하셨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탐심으로 하는 거짓말
게하시의 거짓말
그런데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겠습니다.
(왕하5:20) ¶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이르되, 보라, 내 주인이 이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의무를 면제해 주어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왕하5:21) 이에 게하시가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매 나아만이 자기 뒤에서 그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병거에서 내려 그를 맞이하며 이르되, 다 잘 있느냐? 한즉
(왕하5:22) 그가 이르되, 다 잘 있나이다, 하고 내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보라, 지금 대언자들의 아들들 중의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에서 내게 왔으니 원하건대 그들에게 은 일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하매
(왕하5:23) 나아만이 이르되, 흡족히 여기고 이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는 그에게 강권하며 은 이 달란트를 옷 두 벌과 함께 두 주머니에 넣어 묶어 주고 자기의 두 종에게 그것들을 지워 주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그것들을 지고 가니라.
게하시는 은 일 달란트와 옷 두벌을 원했는데
나아만은 은 이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었습니다.
(왕하5:24) 성채에 이르매 그가 그것들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두고 그 사람들을 보내어 떠나가게 하니라.
(왕하5:25) 그러나 그가 들어가서 자기 주인 앞에 서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의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매
(왕하5:26) 그가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자기 병거에서 다시 돌아서서 너를 맞을 때에 내 마음이 너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돈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올리브 밭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왕하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굳게 붙고 네 씨에게 영원토록 붙으리라, 하니 그가 그의 앞에서 떠나가며 나병 환자가 되어 눈같이 희게 되니라.
거짓 선행으로 하는 거짓말
아나니야와 삽비라
사도행전 5장에 있는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이야기 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는 이야기 일 겁니다.
사도행전
(행5:1) 그러나 아나니야라 하는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 하나를 팔아
(행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는데 그의 아내도 이 일에 은밀히 관여하였더라. 그가 일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거늘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 차서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5:4)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
(행5:5) 아나니야가 이 말을 듣고 쓰러져 숨을 거두매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행5: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그를 싸서 들고 나가 묻으니라.
(행5:7) 세 시간쯤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아내가 이루어진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매
(행5:8) 베드로가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게 말하라. 너희가 땅을 그 값에 팔았느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예, 그 값이니이다, 하거늘
(행5:9) 이에 베드로가 그녀에게 이르되, 어찌 너희가 서로 합의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느냐? 보라, 네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은즉 또한 너를 메고 나가리라, 하니
(행5:10) 이에 즉시 그녀가 그의 발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니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그녀를 들고 나가서 그녀의 남편 곁에 묻으니
(행5:11) 온 교회와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이 부부는 주님의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친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체만 보면 선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인것이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선행을 뻥튀기하는 것도 거짓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정직하게 말하고 판돈에 일부만을 솔직하게 주었다면 격지 않아도 될 일인데 변명할 기회도 없이 주님께서 불러가셨습니다.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 정말 다행이죠. 초대교회 당시의 특수한 경우인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중에서 거짓증언을 하지 말하는 계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주는 정직함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롭고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 그것을 위하여 너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고백하였도다.
(딤후2:5) 또한 사람이 우승하려고 애써도 적법하게 애쓰지 아니하면 관을 얻지 못하며
선한 싸움이라는 것은 규칙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말씀의 법을따라 사는 싸움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운동 경기를 할 때 똑같은 규칙을 공평하게 지키면서 싸울때 이기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겠죠.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기는 것은 이 땅에서 잠시 승리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모든 것에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가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도 정직하게 경쟁해서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얻지 않은 승리는 승리가 아닙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여러분은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악한 싸움은 결코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만으로 남을 무시하고 거짓으로 이기는 것은 나쁜일입니다.
몰래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훔쳐보고
유학시절 시험을 치르는 과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예화로 설명해 봄
교만에 가려진 거짓 고백.
(마26:31)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밤에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의 양들이 널리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마26:32) 그러나 내가 다시 일어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시니
(마26:33)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로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마26:3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밤에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거늘
(마26:35)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모든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마26:69) ¶ 이제 베드로는 관저의 바깥쪽에 앉았는데 한 소녀가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당신도 갈릴리의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마26:70) 그가 그들 모두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며
(마26:71) 나와서 현관으로 들어가니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 있던 자들에게 이르되, 이자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마26:72) 다시 그가 맹세하고 부인하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마26:73)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자들이 그에게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확실히 그들 중 하나라. 네 말투가 너를 드러내느니라, 하거늘
(마26:74) 그때에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매 즉시 수탉이 울더라.
(마26:75) 베드로가,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곧 그분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나가서 비통하게 우니라.
여기서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님께서 미리아시고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가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을 알려주셨는데 베드로는 용감하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을 과대 평가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고백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습 모두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대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20)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 같이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구원받은 자녀들은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새로운 삶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남겨두신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우리가 남아서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일겁니다.
그것이 내 안에 새롭게 태어나 생명이 잘 자라고 성장해서 의의 열매를 맺어서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또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하려는 일 앞에서 우리는 잠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두려움에 멈칫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해 지고 나면 오히려 나에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식은 더욱 가치있어 집니다.
저친구는 가끔 실수가 잦기는 하지만 절대로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정직한지는 마음 속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정직하게 보이는데 관심을 두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허영과 허세와 거짓 거룩함으로 자신을 치장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돈으로 인심을 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돈으로 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일좀 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좋은 일을 하는지는
(벧전2: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Who did no sin, neither was guile found in his mouth: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