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알게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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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로 알게된 하나님
본문: 롬1:17, 21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21)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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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of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unto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hold the truth in unrighteousness;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Because that which may be known of God is manifest in them; for God hath shewed it unto them.
(롬1:20)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For the invisible things of him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 are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by the things that are made, even his eternal power and Godhead; so that they are without excuse:
(롬1:21)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Because that, when they knew God, they glorified him not as God, neither were thankful; but became vain in their imaginations, and their foolish heart was darkened.
(롬1:22)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Professing themselves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롬1: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And changed the glory of the uncorruptible God into an image made like to corruptible man, and to birds, and fourfooted beasts, and creeping things.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Wherefore God also gave them up to uncleanness through the lusts of their own hearts, to dishonour their own bodies between themselves:
버림받은 생각에 놓인 사람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거쳐
버림받은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뉴스나 언론 매체들에서 사람들의 성적 부패를 조장하고 있고,
세상은 성경이 하지 말라는 쪽으로 급격히 힘을 얻고 있는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결과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구절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고
불의에 대해서는 진노를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의로운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방금 성경에서 읽은 내용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그분이 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불의한 것에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는
그들의 목회자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기독교 인이라 하는 사람들 조차도
교회 안에서 성적 부도덕과 일탈에 대해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기시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허용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세상신과 전혀 차이가 없는 신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기 동안만 잠시 멈추는 죄(갈4장)
여러분이 믿는 것은 당신이 말로 고백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는 여러분이 하는 행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성경을 믿는다면
정말 그런지 한 번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갈4:8)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본래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느니라.
Howbeit then, when ye knew not God, ye did service unto them which by nature are no gods.
(갈4:9)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속박 당하려 하느냐?
But now, after that ye have known God, or rather are known of God, how turn ye again to the weak and beggarly elements, whereunto ye desire again to be in bondage?
(갈4:10)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Ye observe days, and months, and times, and years.
(갈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헛되이 수고하였을까 너희로 인해 염려하노라.
I am afraid of you, lest I have bestowed upon you labour in vain.
고린도전서 15장 말씀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By which also ye are saved, if ye keep in memory what I preached unto you, unless ye have believed in vain.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한 사역자가 있습니다.
무엇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정해준 종교인 유대교가 어떤지 볼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유대교에는 축제와 같은 절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절기가 다가오면 자신들의 죄악 된 행동들을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거룩한 절기와 명절을 지키는 동안 모든 일상의 삶을 중단합니다.
그러나 그 절기가 끝나면 곧바로 하나님을 등지고
일상의 죄악 된 행위를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어딘가에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신데,
그분의 의로움이 그들 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죄를 겨냥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과 혼과 생각 속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평소보다 더 많이 예배에 참석을 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예배당에 찾아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당에 와서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체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행동과 태도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조차 알고자 하지 않음 (요7장)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인 유대인에게 오신 것입니다.
(요7:25) 그때에 예루살렘 사람들 중의 몇 사람이 이르되, 이 사람은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Then said some of them of Jerusalem, Is not this he, whom they seek to kill?
(요7:26) 그런데, 보라, 그가 담대하게 말하되 그들이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는도다. 참으로 치리자들은 이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 줄로 알고 있는가?
But, lo, he speaketh boldly, and they say nothing unto him. Do the rulers know indeed that this is the very Christ?
(요7: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더라.
Howbeit we know this man whence he is: but when Christ cometh, no man knoweth whence he is.
미가서에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진리를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전해준 진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알려준 진리를 소중하게 간직 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요7: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거니와 나는 스스로 오지 아니하였노라.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도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나
Then cried Jesus in the temple as he taught, saying, Ye both know me, and ye know whence I am: and I am not come of myself, but he that sent me is true, whom ye know not.
(요7:29) 나는 그분을 아노니 이는 내가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라, 하시매
But I know him: for I am from him, and he hath sent me.
(요7:30) 이에 그들이 그분을 잡고자 하나 아무도 그분께 손을 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분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Then they sought to take him: but no man laid hands on him, because his hour was not yet come.
“그분의 때”라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사두개인과 다양한 종류의 유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모여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거룩한 산과,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에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1500년 이상 희생물을 드리고 절기를 지키고 모세의 율법을 읽고,
선지자들의 말씀을 읽고, 기적들을 경험한 백성에 대한 슬픈 비난입니다.
의로우신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요17장)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아버지께 긴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17:25) 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되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이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O righteous Father, the world hath not known thee: but I have known thee, and these have known that thou hast sent me.
지금 성경 말씀은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단순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아버지 하나님은 의로우신 아버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불의한 하나님을 받아들이길 원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하나님은 그들이 불의하게 살아도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목사를 추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되”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 하나님이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되”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결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진리로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성경은 사람들이 몇 천년 전에 만들어 놓은 책이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그런 질문을 매우 성차별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술을 바라보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도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마시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아주 소수만이 죄에 대해서 진노하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요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 드러내었고 또 드러내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시니라.
And I have declared unto them thy name, and will declare it: that the love wherewith thou hast loved me may be in them, and I in them.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늘 세대
우리의 과거는 지금 만큼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자들의 몸가짐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혼전 순결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고,
남자와 남자가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을 혐오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벌을 받은 것 같은 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의로움심과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속에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고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납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고
부모로부터 신앙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이 여러분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독생자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만큼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지켜지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 했다는 것은
그분의 의로우심이 얼마나 중요하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입증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십자가 없이 하늘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들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거니와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For Christ sent me not to baptize, but to preach the gospel: not with wisdom of words, lest the cross of Christ should be made of none effect.
여러분이 복음을 복잡하게 만들면 십자가의 효능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의 능력을 과장시키고 왜곡시켜도
그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배우지 못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그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능력을 보태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의 능력을 제시하시면 됩니다.
(고전1:18)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For the preaching of the cross is to them that perish foolishness; but unto us which are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고전1:19)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For it is written,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and will bring to nothing the understanding of the prudent.
주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겠다고 하십니다.
쓸모없게 만들고 무너뜨리겠다고 하십니다.
(고전1:20)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Where is the wise? where is the scribe? where is the disputer of this world? hath not God made foolish the wisdom of this world?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For after that in the wisdom of God the world by wisdom knew not God, it pleased God by the foolishness of preaching to save them that believe.
십자가만이 주님을 아는 유일한 방법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으신것이 맞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혐오하고 싫어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축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을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고 피를 흘리며 죽도록 용납한 것이 맞다면,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죄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도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죄를 자신의 아들의 몸 안에 전가시키고
그 사랑하는 아들에게 형벌과 진노를 쏟아 부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그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셔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멸망치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누구라고 죄를 지으면 자신의 죄를 자신이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나 자신의 수고로 자신의 범법들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여러분을 너무도 사랑하셨기때문에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로 가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아닌 곳에서 주님을 발견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주님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에 만족하려고하는 시도인 것입니다.
침례를 받기 전 보다 침례를 받은 후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이교회를 다니기 전보다 이 교회를 다닌 것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돈을 기부하기 전 보다 돈을 기부한 자신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여러분의 삶을 향해서
그것은 너희들의 지혜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들의 생각이고 추측이고 논리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하나님을 안다면,
여러분의 죄가 그분에게 얼마나 모욕적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에 한가지 입니다.
여러분을 그냥 지옥에 보내거나,
아들의 희생을 통해 진노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그분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죄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죄를 미워한다는 말을 싫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이 세상은 의로움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보다 조금이라도 의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무너뜨리고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많은 다짐을 합니다.
나는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의 권유로 그런 일들에 발을 들여 놓게 됩니다.
여러분이 의로워지고자 하는 노력을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술자리를 권유받아야 하고 술잔을 받아야 하고,
여자와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하고,
이차 삼차 해가면서 나쁜 일들을 도모해 가는 환경에 접하게 됩니다.
그들이 여러분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롭게 살려는 것을 그냥 놔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는 자신은 소주를 즐며마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서민 속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불의를 몹시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그 긴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얼굴에 침을 뱉게 하고 벌거 벗겨지게하고
육신의 어머니 앞에서 십자가에 못이 박혀 매달이게 하시고
그에게 죄인을 향한 진노를 쏟아 부으셔야만 했다면,
누구도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로 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결국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며,
죄는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을 여러분의 등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표적을 여러분에서 제거해서
자신의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기신다면,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갈보리로 가야 합니다.
자신의 의조차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것(빌 3장)
만일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던 사람은 바울이었을 것입니다.
(빌3:3)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
For we are the circumcision, which worship God in the spirit, and rejoice in Christ Jesus, and have no confidence in the flesh.
(빌3:4)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
Though I might also have confidence in the flesh. If any other man thinketh that he hath whereof he might trust in the flesh, I more:
육신의 노력으로 하늘에 가는 문제라면
바울 만큼 점수가 높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빌3:5)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Circumcised the eighth day, of the stock of Israel, of the tribe of Benjamin, an Hebrew of the Hebrews; as touching the law, a Pharisee;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는 베냐민 지파에 속했고,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빌3:6)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Concerning zeal, persecuting the church; touching the righteousness which is in the law, blameless.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었고, 메시아가 아니었다면,
그것이 바로 모든 유대인이 바울처럼 했어야 합니다.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제외한다면,
이 땅의 누구보다 율법을 지키는 일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But what things were gain to me, those I counted loss for Christ.
(빌3: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
(빌3: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빌3:10)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That I may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made conformable unto his death;
바울이 맺고 있는 결론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내 의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완벽에 가까운 의로운 삶 조차고도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통해서만
나는 이제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통해서,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는 지를 선포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을 알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고,
그 사랑을 알기 전까지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빌3: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빌3:10)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That I may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made conformable unto his death;
내가 그분을 아는 것 다음이 그분의 부활의 권능이라면
내가 그분을 아는 것은 십자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십자가에 계신 그분을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기꺼이 우리에게 피할 길을 제시해 주길 원하십니다.
구약에 많은 대언이 있었지만 구약을 통해 십자가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함에 따라 권능으로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즉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은밀히 간직되어 왔으나
Now to him that is of power to stablish you according to my gospel, and the preaching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revelation of the mystery, which was kept secret since the world began,
(롬16:26) 이제는 밝히 드러났으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자들의 성경 기록들을 통해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게 된 신비의 계시에 따라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But now is made manifest, and by the scriptures of the prophets, according to the commandment of the everlasting God, made known to all nations for the obedience of faith:
(롬16:27)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이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로마 사람들에게 고린도에서 써서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의 종 뵈베 편에 보내다.
To God only wise, be glory through Jesus Christ for ever. Amen.<Written to the Romans from Corinthus, and sent by Phebe servant of the church at Cenchrea.>
바울은 '내가 밝히는 이 비밀은
선지자들의 경전과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명에 있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볼 수 있고,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죄의 삯이 사망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을 통해 죄인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서
긍휼과 은혜를 얻는 사례와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나에게 이 복음을 기록으로 쓰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어우러져서
인류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세와 율법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십자가에서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에서는 십자가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대언자들을 통해서도 십자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세계 어디든 가서
어떤 언어나 부족의 어떤 사람에게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산 위에 십자가에 매달린 한 사람을 보십시오.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분이 죽어가고 있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죄 가운데 죽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 39권에 여기저기 기록되어 있었고,
신약 성경의 시작에 해당하는 네 복음서를 통해 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실체를 진정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분에게 진노를 쏟아 부으실 때 였습니다.
그로써 여러분의 혼을 구원할 근거를 얻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십자가로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갈보리로 가서 제대로 볼 수 있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이 두가지를 명백히 드러내 보여주고 계십니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