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③ - 기도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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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4장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서론
1. 서론
1) 들어가며
1) 들어가며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기대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결단하는 이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 마음으로 나아갈 때 말씀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베푸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계속해서 이번 2월에는 기도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이어지는 “성숙한 기도”에 대해서 보았었고, 저번 주에는 나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까지 하는 “듣는 기도”에 대해서 나눴었습니다. 저번 주에는 말씀을 마치기 전 도전을 하나 했었는데요. 기도의 자리를 사수하는 것과, 듣는 기도에 집중하자고 했었습니다. 이번 한 주, 어떻게 그 도전따라 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시간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이번 2월 한 달, 우리가 기도에 대한 주제를 갖고 나눌 때, 더욱 기도의 끈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흔한 기도의 인식
2) 흔한 기도의 인식
오늘은 우리가 “기도의 응답”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흔히들 기도라는 걸 생각했을 때 나의 소원을 비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기도의 응답은 소원의 성취로 생각하기 마련이겠죠. 그러나 우리가 지난 두 주 동안 말씀을 나눴지만 기도의 행위가 소원을 비는 행위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기도의 응답 또한 소원이 성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셨을 겁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주제로 처음 말씀을 나눴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에 기도를 하셨는데, 그때 이 상황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신 것을 보았죠.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모습을 통해 올바르고 성숙한 기도가 나의 소원을 비는 행위가 아닌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의 응답 또한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이 성경 가운데서 나오고 있는데요. 새벽예배를 드리는 분이시거나, 큐티를 하시는 분들은 저번 주에 보셨겠지만 예수님께서 성전 경비대에게 잡히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벗어날 기적을 기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동안 예수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았고, 그것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따랐으니까요. 그런데 잡히시는 예수님이 그들의 기대와 다른 한 마디를 하십니다. “성경을 이루려 함이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굉장한 실망과 두려움이 찾아왔겠죠. 자신들이 기대하고 고대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을 가버립니다.
안타깝고 비참한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날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습에서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기도를 나의 소원을 비는 행위로 생각하고, 또 기도의 응답이 나의 소원이 성취 되어지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의 기대와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가버리는 모습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왜 이런 모습이 있겠습니까?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 기도의 응답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문제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아서 실망했던 경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 불만으로 가득했던 모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모습이 있었을까요? 내가 기도한 대로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실망합니다. 심하게는 욕하고 떠나는 일들로 이어지기도 하죠.
또 열심히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 답답한 경험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좀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 주시면 좋겠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고 잠잠해서 답답한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방금 말씀 드렸던 것처럼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질문이 던져지겠죠. “그렇다면 무엇이 기도의 응답입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십니까?” 그리고 저번 주에 우리가 듣는 기도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눴는데 여기서도 물음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듣는 기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그에 대한 물음에 말씀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2. 본론
2. 본론
1) 본문의 내용
1)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룸으로써 이후에 하늘로 올라가실 겁니다. 그럼 남은 제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오늘 말씀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이라는 것, 우리가 교회에 있다 보면 자주 들어서 성령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아직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죠. 그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육체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하나님이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영으로 오신 하나님은 성령님입니다. 이렇게 셋을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지칭하는데 삼위일체 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모두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이 육체의 몸을 입으신 분이신지, 영으로 오신 분이신지 나뉘어지는 것이지, 다 똑같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비춰본다면 예수님은 이제 몸은 떠나시지만, 영으로써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 기도와 응답
2) 기도와 응답
여러분, 우리가 저번에도 나눴지만 기도가 무엇이라고 했었죠?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했었습니다. 방금 본문 말씀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계신 그 성령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럼 그 기도, 하나님과의 대화를 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죠. 그리고 그 대화,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겠죠. 오늘 우리가 보았던 본문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2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볼까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4장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이 무엇을 하신다고요?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곧 이 가르쳐 주시는 것과 생각나게 해주시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멋있고 놀라운 기적의 일들이 일어난다거나, 그래서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가 있죠. 그런데 그것만이 응답으로 생각한다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보았던 것과 같이 기도의 응답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해주시고,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죠.
2-1) 하나님의 뜻? 나의 뜻? 무응답?
2-1) 하나님의 뜻? 나의 뜻? 무응답?
그걸 깨닫게 되면 이제 우리는 두 가지 문 앞에 다가오게 됩니다. 하나의 문은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뜻인지, 나의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것과 또 하나의 문은 방금 보았던 말씀과 같이 마음 가운데 가르쳐 주시는 것, 생각나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 이 두 가지의 문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두 가지의 문이 있지만 답은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기도를 할 때 내 마음에 어떠한 마음이 들기는 하는데 이것이 나의 생각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인지 모르는 상황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가령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 그 관계를 놓고 기도를 하는데 용서가 안 됩니다. 한바탕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 사람이 잘못했거든요. 그래서 기도할 때 그런 마음이 드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인가 싶어요. 그런데 답이 어디에 있다고 했었죠?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 어디에도 이웃을 향한 다툼을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오직 성경은 사랑과 용서, 긍휼, 자비를 말하지, 복수와 분냄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나의 마음인지, 하나님의 마음인지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잘 캐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번 주에도 우리가 듣는 기도에서 보았잖아요. “주님, 말씀하세요. 제가 듣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 정도의 문제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 건지 이해는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또 다른 문제들이 있죠. 우리와 같은 젊은 이 때에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것이 진로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문제들이 있죠. 예를 들면 어떤 대학을 가야 하는지,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지,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하며,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있죠. 그런데 여기서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까와 같은 문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 되는 것을 알겠는데, 이 진로의 문제 같은 경우에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지 성경에 나와 있는 것 같지 않거든요. 그래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따 뒤에서 다시 한 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두 개의 문이 있다고 했었죠. 첫 번째는 아까 보았던 나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생각인지에 대한 것이고, 또 나머지 하나는 기도는 하지만 생각나지 않고, 가르쳐 주시지 않는 것 같다는 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경우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많이, 또 깊게 가져보기를 권면합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관계를 많이, 또 깊게 가져야 하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또 자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을 때 아까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 번 되돌아 보세요.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관계를 가졌는지, 그러한 시간 없이 어떠한 답만을 받기 원한다고 한다면 나의 욕심만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기도의 평안
3) 기도의 평안
여기까지 우리가 기도의 응답에 대한 것을 나눴는데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으로 하여금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2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볼까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4장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데 있어서 응답이라고 했었죠. 방금 보았던 말씀에서는 그 가르쳐 주심과 생각나게 하심을 통해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까 제가 뒤에서 다시 나누자고 했던 부분이 있죠? 진로나 미래에 대한 기도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요. 이 문제도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방금 보았던 말씀처럼 평안이 우리 마음 가운데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평안의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내 마음에 두 가지의 길에서 갈등이 있을 때, 하나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평안의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곧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 수 있고, 나의 만족으로 인한 평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가 27절 말씀을 보았을 때 평안을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나의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하는 내 평안이 아니라, 주님의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평안”, 곧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평안한 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그 결정을 내려서 내 마음에 내가 평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평안이, 그 예수님의 흐뭇한 마음이 내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방금 우리가 보았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부분도 그러하지만 주님을 믿는 것에 있어서, 기도하는 것에 있어서 나의 기준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죠.
여기에서 다른 길로 잠깐 나가서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함으로써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중요하고, 소그룹, 곧 우리 셀 모임과 같은 모임, 그리고 저를 비롯한 목사님들이 있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27절 뒤이어서 그 말씀을 뒷받침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방금 말씀 드렸던 세상이 주는 평안, 그냥 나에게 있어서 만족을 주는 그런 평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끌리는 것에 마음을 두고 결정해서 평안을 느끼는 것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아니라는 것이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시기에 평안한 것, 흐뭇한 것, 그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평안은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에 불편을 주는 평안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3. 결론
3. 결론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길들이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방금 보았던 것처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평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 것처럼 기도는 나의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기도의 응답 또한 내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또 우리가 처음 말씀을 나눴을 때 보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았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내 앞에 있는 문제에 있어서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런 변화도 없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일들이 펼쳐진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힘들지만, 어렵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근심하지 말라는 것,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을 기억해서 담대한 마음을 갖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는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고, 신앙의 여정 또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계속해서 나눈 말씀들을 기억하고, 또 붙잡고 나아간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을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의 여정, 주님과 깊은 교제의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도전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이번 한 주를 살아갈 때 기도의 자리를 사수하는 것과 동시에 오늘 말씀과 같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보기를 도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