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종교를 만드는 사람들

주일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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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 종교를 만드는 사람들
본문: 삼상 14:52
2019-08-25
(삼상14:52) 사울의 평생 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심한 싸움이 있었으며 사울이 강한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를 자기에게로 데려왔더라.
오늘의 주제는 본문 한 구절로 나타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은 14장 전체를 살펴보면서 사울의 모습을 통해 잘못된 지도자의 자기 종교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개인도 잘못된 신념으로 자기 자신만의 교리를 만들어서 자기 종교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왔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내용이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14장은 요나단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보면 성경은 요나단을 등장시켜 요나단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대비되는 사울의 잘못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1절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삼상14:1) 이제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든 청년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저편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지금 적군은 삼만이 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자신의 부하 한 명을 데리고 적진으로 가지고 합니다.
(삼상13:5) ¶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함께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 대요, 기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에서 동쪽으로 믹마스에 진을 치매 ¶
6절의 고백을 보십시오.
요나단의 용기는 신앙에서 나온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14:6)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든 청년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혹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하니
요나단은 이 전쟁을 하나님과의 전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승리를 목표로 전쟁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주님의 인도에 맡기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달랑 두 명이 적진으로 뛰어든 담대함을 인간적인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표현은 이 싸움을 하나님과의 영적전쟁으로 보고 있는 신앙인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할례받지 않은 자를 언급하는 표현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때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 이 표현 속에는 사울의 왕권이 누구에게 옮겨갈지를 알려주는 암시가 담겨있는 표현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지만 왕좌를 물려받지 못합니다.
14장의 이야기는 요나단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이야기는 사람이 세운 왕국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다윗과 비교하며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4:8로 가보세요.
(삼상14:8) 그때에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로 건너가 우리 자신을 그들에게 드러내리니
(삼상14:9) 그들이 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갈 때까지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장소에서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아니할 것이요,
(삼상14:10)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가리라. 주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나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적이 되리라, 하고
(삼상14:11) 그 두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에게 자기들을 드러내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들이 자기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삼상14:12) 그 수비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자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가지 일을 보이리라, 하니라.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는
(삼상14:13) 요나단이 손과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의 병기 드는 자도 그를 따랐더라. 그들이 요나단 앞에서 쓰러지매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그를 따라가며 죽이니라.
(삼상14:14)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자가 한 겨리의 소들이 쟁기질 할 수 있는 반 에이커 땅에서 처음으로 살육한 자가 이십 명가량이더라.
(삼상14:15) 군대와 들과 온 백성 가운데서 떨림이 있었고 수비대와 노략하는 자들도 떨며 땅도 흔들렸으니 이처럼 그것은 참으로 큰 떨림이었더라.
이 전쟁은 자신을 포함해서 두 명이 하나님의 표징을 구하고 전쟁에 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사들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삼상14:16) 베냐민의 기브아에 있던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보니, 보라,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그들이 서로를 내리치더라.
(삼상14:17) 그때에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던 백성에게 이르되, 이제 수를 세어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보라, 하므로 그들이 수를 세니, 보라, 거기에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자가 없더라.
(삼상14: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었더라.
사울이 하나님의 궤를 가져 오면서 신앙의 형식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사울은 자기 신앙을 종교화 합니다.
자신이 떨릴 수록 자꾸 종교적인 형식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24절로 가보겠습니다.
이날의 싸움은 요나단의 용맹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삼상14:24) ¶ 그 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니라.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저녁때까지 아무 음식이든지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니 이로써 내가 내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리로다, 하였으므로 백성 중 아무도 어떤 음식도 맛보지 못하니라.
전쟁을 감당해야 할 병사들에게 금식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자신이 저주를 내립니다.
사울은 마음이 좁아지면서 극단적인 표현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패배감에 몰리게 되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표현을 하게 됩니다.
사울은 개인의 종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의 이런 극단적 선택은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성경에 없는 규례를 만들어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거나 이것을 지키면 축복을 받는 다거나 하는 등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그 지도자의 개인적인 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저주를 받는 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더라고 율법주의자라고 하는 비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라는 표현을 올바로 사용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율법주의자라는 표현을 잘못사용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교회에서 통칭으로 율법주의자라는 사용합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으니 율법을 지키면 안된다고 하게 되면 이것은 너무 나간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 오늘날 신약에서 지킬 필요가 없는 계명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늘 날에도 열심히 지켜야 하는 것들입니다.
(삼상14:25) 그 땅의 모든 사람이 숲에 들어갔는데 땅에 꿀이 있었으며
(삼상14:26) 백성이 숲으로 들어갈 때에, 보라, 꿀이 떨어지더라. 그러나 백성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자기 손을 입에 대지 아니하니라.
(삼상14:27)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더라. 그러므로 그가 자기 손에 든 막대기 끝을 내밀어 벌집에 그것을 담그고 자기 손을 입에 대니 그의 눈이 밝아졌더라.
꿀을 먹고 기운이 회복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개인종교화는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삼상14:28) 그때에 백성 중에서 한 사람이 응답하며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이르시기를, 이 날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으므로 백성이 기진하였나이다, 하니
(삼상14:29) 이에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가 그 땅을 괴롭게 하였도다. 청하건대 내가 이 꿀을 조금 맛보았으므로 내 눈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보라.
(삼상14: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자기들의 원수들에게서 자기들이 노략하여 얻은 것을 마음껏 먹었더라면 얼마나 더 그리하였겠느냐? 이제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 더 큰 살육이 있지 아니하였겠느냐? 하니라.
(삼상14:31) 그 날에 그들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이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백성이 심히 기진하였더라.
꿀을 먹지 못하고 싸움은 계속 되면서 백성들이 점점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삼상14:32) 백성이 노략한 물건으로 날아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땅에서 잡아 그것들을 피째 먹었더라.
극단은 또다른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율법은 피째 먹지 못하게 합니다.
(창9:4) 그러나 너희는 고기를 그것의 생명과 함께 곧 그것의 피와 함께 먹지 말지니라. But flesh with the life thereof, [which is] the blood thereof, shall ye not eat.
교회에서 하나님은 오른 쪽를 사랑하십니다. 아니면 왼 쪽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성경에 없는 개인 종교를 만들면 성도들은 왼손잡이를 추방하라 오른 손잡이를 추방하라! 하고 하면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게 만들게 됩니다.
(삼상14:33) ¶ 그때에 그들이 사울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피째 먹어 주께 죄를 짓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가 죄를 지었도다. 이 날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삼상14:34)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가운데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말하기를, 각 사람이 자기 소와 자기 양을 이리로 내게로 끌어다가 여기에서 그것들을 잡아 먹되 피째 먹어서 주께 죄를 짓지 말라, 하매 그 밤에 온 백성이 각각 자기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삼상14:35) 사울이 주께 제단을 쌓았는데 바로 그것은 그가 주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사울은 참된 예배가 아니라 종교적인 형식만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삼상14:36) ¶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그들을 노략하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하니 그들이 이르되, 무엇이든지 왕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소서, 하니라. 그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우리가 여기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사이다, 하매
(삼상14:37) 사울이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겠나이까? 하였으나 그분께서 그 날에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하나님은 사울과의 교재를 끊어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더이상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삼상14:38) 사울이 이르되, 백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아, 너희는 여기로 가까이 오라. 이 날 이 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살펴보라.
(삼상14: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죄가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온 백성 가운데서 그에게 대답하는 자가 하나도 없더라.
다시 한번 극단적인 발언을 합니다.
자식 키우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자식이라 할 지라도 반드시 죽인다고 합니다.
(삼상14: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한 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다른 쪽에 있으리라, 하니 백성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소서, 하니라.
(삼상14:41) 그러므로 사울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되, 완전한 제비를 주소서, 하매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벗어났으므로
(삼상14:42) 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제비를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삼상14:43) 그때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고하라, 하니 요나단이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든 막대기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보소서, 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거늘
(삼상14:44) 사울이 응답하되, 요나단아,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니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매
종교화 된 인간의 면모를 보게 됩니다. 자기 의에 취한 사울은 결국 자신을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자꾸 말려들어가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결국
하나님은 요나단의 실수를 통해서 사울의 실채를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요나단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이야기는 요나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삼상14:45) 백성이 사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안에서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어야 하리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이다. 그가 이 날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나이다, 하여 백성이 이렇게 요나단을 구출하였으므로 그가 죽지 아니하니라.
사울은 백성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권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왕은 얼마가지 않아서 그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14:52) 사울의 평생 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심한 싸움이 있었으며 사울이 강한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를 자기에게로 데려왔더라.
14장은 하나님의 싸움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요나단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 사울은 힘있는 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잘못된 종교적 행위를 제시하게 되면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적 지도자의 중요성
출애굽기 32장에서 벌어진 금 송아지 사건에서
지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기전 모세는 아론과 홀에서 모든 것을 위임하고 떠납니다.
(출24:13) 모세가 자기를 섬기는 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출24: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라. 보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나니 어떤 사람이 할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로 갈지니라, 하고 .
모세는 장로들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훌에게 모든 일을 위임하고 떠나 간 것입니다.
신약의 예표로도 볼수 있는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는 상황에서 이땅에 감독을 세워두고 교회를 맡긴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32: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백성이 보고는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그런데 백성들은 모세가 돌아 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때문에 아론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금방올 것처럼하고 갔는데 안오니 아론이 우리를 이끌 신을 다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아론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신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하시나요?
교회 성도들이 목사에게 복받는 설교해주세요..
우리 아들 대학가는 기도해주세요.
부자가 되는 것을 약속하는 설교해 주세요..
감독은 이들이 떠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을 붙들어 둘 설교를 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신을 만들어 내지는 않나요?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에도 없는 하나님을 설교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론은 그들이 요구하는 신을 만들어 줍니다.
(출32: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들과 너희 아들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서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출32:3) 온 백성이 자기들의 귀에 있던 금귀고리를 빼서 아론에게로 가져오니라.
(출32:4)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것의 모양을 내매 그들이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므로
이런 신을 만드는데 백성들은 자신의 금귀고리를 바치는데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19절로 가보겠습니다.
(출32:19) ¶ 모세가 진영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곧바로 송아지와 춤추는 것을 보고 맹렬히 분노하여 자기 손에서 그 판들을 던져 산 밑에서 깨뜨리니라.
(출32: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무슨 일을 하였기에 네가 그들에게 이와 같이 큰 죄를 가져왔느냐? 하니 And Moses said unto Aaron, What did this people unto thee, that thou hast brought so great a sin upon them?
(출32: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맹렬히 분노하지 마소서. 당신이 이 백성을 알거니와 그들은 해악에 빠진 자들이니이다.
(출32: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기에
(출32:24)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금이 있는 자는 그것을 빼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 주기에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하니라.
아론은 사실 거짓 보고를 합니다.
(출32:25) ¶ 모세가 보니 백성이 벌거벗었더라. (아론이 그들로 하여금 벌거벗게 하여 그들의 원수들 가운데서 수치거리가 되게 하였더라.)
모세가 말합니다. 이 상황이 아론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부추겨서 일어난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 책임이 아론에게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벌거벗어 수치거리가 되게 된것은 영적 리더의 책임이 큰 것입니다.
지도자의 책임은 막중한 것입니다.
백성이 흔들면 지도자를 실족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따르는 성도를 말씀으로 올바로 먹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하는 리더가 많은 것입니다.
(요12:4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두머리 치리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되 바리새인들로 인해 회당에서 쫓겨날까 염려하여 그분을 시인하지 못하였으니
(요12:43) 이는 그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하나님의 칭찬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더라.
세상의 종교들이 하는 것이 계속해서 자기 종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성경의 내용과 상관없는 기준과 제도를 만들어서 성도들을 잘못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종교를 만들어서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아닌지…
아침에 일어나서 “주”를 열번 이상 외치면 주님이 하루를 책임지실거야
자기 집현관문에 손을 엊고 기도하면 집안에 주님의 축복이 들어올거야
(겔34:1)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겔34:2)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대적하여 대언하고 또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목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목자들이 마땅히 양 떼를 먹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목자는 첫 번째로는 지역교회 감독으로 바꿔서 볼 수 있고 더 확장하면 교회 안에서 영적 선배들도 해당된다고 봅니다.
영적으로 앞선 사람들이 뒤따르는 자들을 대하는 모습에도 교훈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겔34:3) 너희가 살진 것을 먹고 털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먹이를 먹은 양들을 죽이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
(겔34:4) 너희가 병든 것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고 아픈 것을 고쳐 주지 아니하며 상한 것을 싸매 주지 아니하고 쫓겨난 것을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겔34:8)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양 떼가 희생물이 되고 들의 모든 짐승에게 먹이가 되었으니 이는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로다. 내 목자들이 내 양 떼를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겔34:9) 그러므로, 오 목자들아, 너희는 주의 말을 들을지어다.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잘 관리하지 못해서 양떼가 떠난 것 아파해야 합니다.
목자를 세운것은 양떼를 잘 먹이라는 것입니다.
가르치기만 하겠다고 하는 것도 목회가 아닙니다.
아론같은 목자가 있다는 것이 백성들이 수치스러운 일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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