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만 다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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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기반한 불평이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Notes
Transcript
여러분, 한동안 못봐서 아쉬웠지만 오늘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청년부 예배를 3주만에 드리는 것인데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로 못보는 것 같아 참 아쉽네요. 모두 설을 잘 보내셨죠? 세배돈은 아직 받으시나요? 제 조카가 아직 3명 밖에 없어서 세배돈이 나가는 것이 별로 없지만 저희 애들까지 하면 총 6명이라 세배돈으로만 참 많은 재정이 나가더라구요. 물론 저희 애들 받은 것은 아빠나 엄마가 잘 보관하는 것으로 제 지갑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여러분들, 어렸을 적에 세배 할 때면 세배돈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구요. 제 친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친할머니께서 자녀들을 많이 출산하셔서 아버지 형제들이 총 7분이셨어요. 거기에 애들이 각 집에 2명씩 있었다 보니 친가에 사람이 모이면 애들만 14명이 모였어요. 그러다보니 명절에 세배하러 가면 전쟁이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받네, 적게 받네 하며 겉으로는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불평 불만이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위에서 4번째여서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형님들, 누님에 비하면 좀 부족하게 받았고, 그럴 때면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한 분당 만원 받으면 정말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애들 한명당 5만원 정도는 줘야 되더라구요. 세배돈도 물가가 많이 올랐어. 이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참 옛날을 추억했던 설이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민수기 말씀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민수기 1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첫 발걸음을 옮긴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내산 밑 시내광야에서 거의 일년 동안 있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으로 가나안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먼저 움직여 도달하게 된 곳은 시내광야로부터 3일 정도의 거리의 바란광야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바란광야에 도착해보니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여러분들은 광야에 가볼일이 없고, 저도 가본 적이 없지만 찾아보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으로 인도하실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황무지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 해 주실줄 알고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오아시스가 있어 시원한 나무 그늘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실줄 알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 불평 불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광야길이 너무나도 고되고 힘이 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불평을 하게 되는 내용이 민수기 11장의 내용입니다.
민수기 11:1 NKRV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1장 1절의 내용에 기록된대로 경고의 의미로 진의 한쪽 끝을 불사르게 하시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원망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다 죽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인해 징계를 중단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먹을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됩니다. 내용인 즉, 매일 먹는 만나가 질렸고 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하게 됩니다. 특히 오늘 읽은 본문 4절을 보면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될 부분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만 애굽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집트 땅에 임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이스라엘 민족을 따라가면 뭔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따라 나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이들도 이스라엘민족처럼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는때, 같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히브리인으로서의 민족적인 자긍심이나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 등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1년 동안 머물르며 노예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을 배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였기에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랬기에 가나안 여정 중에 부딪치게 되는 역경과 어려움이 닥쳐왔을때마다 그들은 항상 불평불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1~4절에 나왔던 다베라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을 통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불평불만이 이들을 통해 시작되어 전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악한 것은 쉽게 전염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유월절에 대한 것도 함께 나눌텐데 유월절을 보면 누룩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빵에 들어가는 정말 적은 누룩을 통해 빵에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죄는 누룩에 많이 비유가 됩니다. 그래서 유월절에는 부정한 것을 멀리 해야 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주는 악한 영향력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죄가 암세포 처럼 퍼지지 못하도록 죄를 멀리 하고, 죄를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부정의 규례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불평과 불만 또한 전염이 강합니다.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주변의 사람들도 불평 불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4절을 다시 한번 보면 탐욕을 품었다고 하였습니다. 탐욕이란 과도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 이상의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데 어찌 집에 있는 것처럼 생활을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머나먼 나라에서 잠시 잠깐 살면서 잠시 머무는 여관 시설이 좀 나쁘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곧 안락한 집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 입니다. 세상이라는 여관에 잠시 들려 있다 천국이라는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도 영원히 살 우리의 안식처 천국을 기대하며 참고 인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민수기 12장 마지막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은 가나안 땅 바로 앞인 바란 광야에 도착합니다. 11장을 기준으로 두달만 참으면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가나안 땅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추후에 이야기 하겠지만 이것이 습관화 되어 이들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40년간 방황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민수기 11:5–6 NKRV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5~6절을 보면 이들이 생각했던 음식들을 이야기 합니다. 웃긴 것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면서 죽도록 일만 하고 매맞고 채찍에 고통당했던 것들은 잊어버리고 간간히 먹었던 노예 음식이 생각난다는 것은 얼마나 왜곡된 기억입니까? 이들이 얼마나 배부르게 먹었겠습니까?
민수기 11:5–7 NKRV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또한 7~9절 가운데 이야기는 만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광야 여행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기 위해 특별히 하늘에서 내려보내신 광야의 양식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식량이 떨어질 무렵인 출애굽 한 달뒤 신광야에서 처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한 광야의 음식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이슬이 내릴 때면 만나도 함께 내렸습니다. 이러한 만나를 가져다가 다양한 형태로 요리를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매일 먹는 만나가 싫증이 난다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민수기 11:11 NKRV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1절에 보면 그 불평 불만을 계속해서 듣는 모세도 참 힘이 듭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라고 고백합니다. 백성들이 하도 말을 듣지 않듣고 범죄하하고 불순종하는 모습에 모세도 너무 힘이 들고 시험이 든 것입니다. 나중에는 너무나도 힘든 나머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서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사실 모세도 보면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왔지만 모세의 불평은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불평인데 왜 다른 결과를 가지고 왔을까요? 이것이 오늘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평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의 시작은 불순종과 불신앙, 즉 믿음의 기도의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닌 자신들을 고생시키는 하나님이 밉고 싫어서 내뱉은 범죄의 말이자 노예생활을 그리워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며 했던 불평이라고 한다면 모세의 불평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믿음의 기도이자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하나님께 말하는 고백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자면 이런 믿음의 선배들의 불평 불만도 많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돕게 하시고 회복케 하십니다. 또한 시편을 보면 다윗왕의 찬양시가 많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다윗의 불평의 기도가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라고 하나님께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토로하고 내어놓는 신앙의 행위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불평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의 차이 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연약한 인간이라 하나님을 향해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하나님을 향해 하소연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소연과 불평과 불만이 하나님을 향한 불신을 전제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이것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고백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불평과 불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고백이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자 연약한 사람입니다. 루이 역시 그들과 같이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생길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의 제목조차 기도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내어 맡길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다는 마음이 들때마다 어두운 곳에 숨어 원망하고 불평 불만을 내어 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 솔직한 불평의 이유도 하나님 앞에 솔직히 아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모든 것을 아뢸 때, 하나님은 그것을 죄라고 여기지 않으시고 그것을 기도라고 여기시며 그 기도에 선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 불만에 대한 것과 모세의 불평, 불만에 대해 모두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응답하시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보았으면 합니다.
민수기 11:17 NKRV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17절 말씀에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시면서 70명의 장로들을 세우시고 그들이 모세를 도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혼자서는 하기 힘드니 같이 함께 할 사람들을 붙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을 세움으로 행정일을 맡게 하시고, 영적으로 70명의 장로들을 더 세움으로 모세의 모든 부분들의 사역을 덜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러분의 캠퍼스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이 캠퍼스에 복음을 전할 일꾼이 없어 낙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을 때, 누구를 보내셨는지 아세요? 여러분들을 이곳 가운데 보내셨다는 것이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에 근거한 불평에 대해 이렇게 선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이예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 불만에는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원하는데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31절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수기 11:31 NKRV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자 하나님께서 메추라기 떼를 강한 바람으로 몰아오셨는데 하룻길이 대략 30km예요. 그리고 두 규빗은 1m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30 키로 평방미터의 1m 가 되는 정도의 메추라기를 보내셨다는 것이죠. 고기를 달라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고기 먹고 죽을 정도의 양의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이죠. 32절에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 정도의 양을 모았는데 무게로 환산하면 425kg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기는 커녕 이틀동안 열심히 메추라기를 수확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전의 디베라 사건을 통해 자신들에게 진노가 내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나 자신들의 불평에 회개하기는 커녕 받은 것에 더 욕심을 부리며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분에 넘치는 욕심을 넘어 말 그대로 탐욕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것입니다. 저희 집에 애들이 셋이 있습니다. 요즘 둘째가 말을 참 안듣습니다. 진짜로 말을 안들어요. 그래서 요즘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참 많이 묵상하는 것 같더라구요. 혼내야 될 상황에 혼내지 않고 잘 해주는데도 그것에 감사하지 않으면 머리 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집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버럭 하곤 하지요. 저는 이런 상황 가운데 저를 향한 하나님의 모습이 연상되곤 합니다. 내가 저렇게 철없게 하나님께 투정하고 있지 않은지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저렇게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있지 않은지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도한 욕심은 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엄히 징계를 내리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 11:33–34 NKRV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브롯 핫다아와의 뜻은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과도한 욕심으로 그들은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 묻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고 나의 육신의 정욕과 욕심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평, 불만을 토하여 하나님께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응답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 불평 불만이 무엇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반드시 응답하신 것에 대해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가는 것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를 걸어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것은 우리를 가로막는 담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과 문제들마다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했으면 합니다. 모세의 모습을 기억하며 엘리야, 다윗왕처럼 이러한 믿음의 선배들 처럼 하나님께 구하길 바랍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연약한 사람이었고, 동일한 광야길을 걸어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지고 왔지만 모세의 불평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런 모세와 같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아픔과 고통 심지어 불평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로 아뢸 수 있는 우리 은혜숲교회 청년들이 되길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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