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가 먼저다
Notes
Transcript
제목 : 회개가 먼저다
본문 : 롬 2:4-5
2019-11-17
(롬2:4)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롬2: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때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죄들을 언급할 필요없이 사랑의 하나님과 고난을 이기게 해주시는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하고 영접기도를 간단하게하고 “당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인식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회개는 극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님을 영접할때 다양한 감정들과 통곡을 유도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몸이 흔들이거나 뜨거운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회개가 없이 구원이 이루어 질 수 있는지
그 답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회개 자체가 구원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마3:1) 그 무렵에 [침례자] 요한이 와서 유대의 광야에서 선포하여
(마3:2)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너희 모두는 회개하라
신약의 첫 번째 주자가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회개하라”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 중에 가장 큰 자가 말한 것입니다.
(마3: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르단 사방의 온 지역이 그에게 나가
(마3:6) 자기 죄들을 자백하며 요르단 속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마3:7) ¶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그가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누군가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그에게 그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가 보여야 합니다.
누군가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가 회개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회개 했다고 말만 하지 말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 열매를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냥 인사말로, 아니면 체면치레로 대인관계의 처세술로 하는 말이지
진정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마4:17) ¶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아니고 청년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30세의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선포(설교)를 합니다.
그 이전에는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처음으로 선포된 말은 “사랑”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고 “하늘나라”도 아닙니다.
그분의 입에서 처음나온 말은 “회개하라”입니다.
하늘의 왕국을 위해서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시작해야 할 첫 부분이 바로 “회개”입니다.
(막1:14) 이제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여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ye, and believe the gospel.
회개는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 회개도 아닙니다. 회개하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회개와 복음을 믿는 것은 받드시 같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영어 문장으로 보면 “회개”와 “복음” 사이에 “,”콤마가 있어서 두 개를 구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콤마 그리고 “복음을 믿어라” 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냥 복음으로 건너뛰면 안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추가해서 믿는 다는 것은 올바는 구원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믿으면서 복음을 믿고 유교를 믿으면서 복음을 믿고 기복신앙을 믿으면서 복음을 믿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자신의 종교와 신념으로 부터 모두 돌아서고 난 후에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나는 불교신자다, 나는 침례교신자다,라는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우리의 믿음은 주 예수님께만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길이고 진리입니다.
그분이 아니고는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께로 가고자 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멈추고
주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자신들의 집안에 모셔둔 우상이나 부적들 옆에
예수님 한 분을 더하는 방식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회개없이 그저 영접기도 몇초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당시의 로마 종교를 버리지 않고 예수님 한 분 더 믿으라고 했다면
초대 교인들이 박해를 받을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로마의 잘못된 종교를 모두 버리고 주님께 가야한다는 것은
기존 종교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회개”를 선포하는 것은 박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막2:16)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 그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하매
(막2:17)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
병든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을 주십니다.
당뇨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 주게 된다면
의사 선생님은 먹는 습관과 운동습관을 고치라고 하면서 약을 처방해 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고 아무렇게나 먹고 소파에 누워서 TV만 시청하고 있으면서 약을 먹는 다면 그 약은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살을 빼려고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식습관을 버릴 생각이 없다면
헬쓰장에 가서 운동 한 두시간 하는 것은 여러분의 식욕을 더 왕성하게 할 뿐입니다.
누군가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이라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을 그대로 둔채 예수님에게 도와 달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버리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내려줄 수 있는 처방전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절에가서 계속 기도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철학관에가서 여러분의 운명을 물어봐야 안심이 된다면,
타로점을 치는 집에가서 여러분의 운명을 묻고 다닌다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사가 필요한 환자라면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잘못된 습관과 금지해야하는 음식들을 버리는 행위가 우선되지 않는다면 의사의 처방은 여러분의 병을 고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행위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하게 하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원 받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구원이 필요한지 알겠습니까?
그들을 죄인이라고 부르면 불쾌해 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죄인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부름에 반응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럼 의인은 왜 안부르시는 걸까요?
(롬3: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의인은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즉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을 찾을 것이고
자신의 죄가 보이지 않고 자신이 의로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찾을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
(눅11:29) ¶ 사람들이 함께 빽빽이 모였을 때에 그분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그들이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이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눅11:30) 이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에게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라.
(눅11:31)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 도시로 보내서 당신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이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분은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내려다 보시고 그 도시가 너무도 악하다는 것을 알고 그 도시를 멸망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선포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자백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40일간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요나서 3장 10절만 찾아 보겠습니다.
(욘3:10) ¶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재앙 즉 친히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도시에 악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그 도시를 멸하시려고 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내려다 보니 그들이 회개하고
이전에 행하던 악을 멈춘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회개”라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지금 누가 회개를 선포하고 계시나요?
예수님이십니다.
침례인 요한도 외쳤던 회개를 예수님도 외치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마리
(눅15:3) ¶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여 이르시되,
(눅15:4) 너희 중의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가 그것들 중의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15:5) 또 그가 그것을 찾은즉 기뻐하며 그것을 자기 어깨에 메고
(눅15:6) 집에 돌아와서 자기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라.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
하나님이 하늘에 그 어느 것보다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죄인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왕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한 죄인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필요하다고 선포하지 않으면
그들이 회개가 필요한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제자들이 선포하기 시작한 말도 “회개”입니다.
(막6:7) ¶ 그분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기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부정한 영들을 제압하는 권능을 주시고
…
(막6:12) 그들이 나가서 사람들이 회개할 것을 선포하고
여기서는 열 두 사도가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보냄을 받은 후에 사람들에게 설교한 것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이전이라 지금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도 제자들은 “회개”를 선포합니다.
(눅24:45) 그때에 그들의 지각을 여사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
(눅24:46)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같이 기록되었은즉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셋째 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며
(눅24:47) 또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니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서 선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를 선포하는 것도 빼먹지 말고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죄를 사면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뒤에도 죄의 사면 이전에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묻히셨다고 전해야 합니다.
그기고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면 그들의 죄가 사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이후의 명령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신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다를 까요?
사도행전 2장 37절로 가보겠습니다.
(행2:37) ¶ 이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하거늘
누가복음 24장(눅24:45-47)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37절 이전에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미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들을 이미 전했습니다.
37절은 지금 설교의 시작부분이 아닙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전하라고한 것을 이미 다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해야 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38절에서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2:38)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예수님의 죽음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을 전했고
죄들의 사면을 위해서 회개하라고 전했습니다.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 하고
회개가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것도 아니고 첫 번째 과정도 아니지만
복음을 듣고난 후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순서를 빼먹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생략할 수 없고
그분의 부활도 생략할 수 없고
죄들의 사면도 생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도 생략해서는 안되는 필수 요건입니다.
사도행전 3장 14절로 가서 베드로의 또다른 설교를 보겠습니다.
(행3:14) 너희가 [거룩하신 분] 곧 [의로우신 분]을 부인하고 살인자를 너희에게 달라고 구하여
(행3:15) 생명의 통치자를 죽였도다. 그러나 그분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그 일에 증인이니라.
(행3:18)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대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미리 보여 주신 그 일들 곧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실 일들을 이같이 성취하셨느니라.
누가복음 24장(눅24:45-47)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전하라고한 복음을 다 전했습니다.
(행3:19) ¶ 그런즉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앞으로부터 이를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 그리고 회개 그 후에 죄의 사면이 있게 됩니다.
회개가 죄를 사면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가 구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기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눅17:3) ¶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하거든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라.
용서의 조건이 무엇인지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방침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덮어주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만일 누군가 여러분에게 잘못을 했더라도 그들이 회개를 한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눅17:4) 그가 만일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범법하고 하루에 일곱 번 네게 다시 돌아와 이르기를,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그를 용서하라, 하시니라.
몇 번이고 회개하면 몇 번이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먼저 있어야 용서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은혜로 받은 구원은 회개가 필요없나?
여기서 한 번 집어 볼 부분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이 은혜로 주어졌다고 해서
아무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냥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도 믿으셔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향해 믿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사도행전 11장 14절에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났을때 이야기를 합니다.
(행11:14) 그가 네게 말씀들을 전하리니 그 말씀들로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음을 알리니라.
(행11: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 같이 하시더라.
(행11:16) 그때에 내가 [주]의 말씀 곧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였노라.
(행11:17) 그런즉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었겠느냐? 하니라.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시점이 언제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때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행11:18) 그들이 이것들을 듣고는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문장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회개가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나 회개가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생명에 이르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선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찾아가서 당신의 죄들로 인해서 죽으신 분이 계시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분은 이교도의 신과 같이 않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1:18절에서 이들에게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다고 말씀하고계십니다. 즉 회개로 구원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할때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을때 구원을 받았고 성령님이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복음도 아니고 구원도 아닙니다.
명확한 것은 회개가 없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가서 마르스 언덕에서 한 설교
(행17:22) ¶ 그때에 바울이 마르스의 언덕 한가운데 서서 이르되, 너희 아테네 사람들아,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
바울이 처음 지적한 부분은 당신들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시작한 지점은 다른 사람이 믿는 신은 잘못된 것이고 내가 믿는 예수님이 올바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행17:23) 내가 지나다니며 너희가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글이 있는 제단을 발견하였나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그분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려 주리라.
두 번째 지적한 부분도 내가 맞고 당신들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의를 다해서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스럽게 말했을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인도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회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들은 회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행17:29) 그런즉 우리가 [하나님]의 후손일진대 [하나님]의 신격을 결코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새긴 금이나 은이나 돌 같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니라.
세 번째로 지적하고 있는 것도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아니고
저것도 하나님이 아니고
그 옆에 있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17:30)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이들에게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겼던 잘못된 모든 우상과 그들의 경전 신념등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들이 섬기는 이교도 신들 중 하나로 섬겨서는 안됩니다.
이 종교 저 종교 다 합쳐서 기독교 같은 종교를 만들어서 섬기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들이 기독교인이 된 것처럼 가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들의 우상을 버리지도 않은 사람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서
교회에 채워넣고 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모여든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버림받은 사람이 될 뿐입니다.
우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면 안됩니다.
점 집을 다니며 삶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명상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절차와 형식을 가지고 예배를 변질시키는 것도 안됩니다.
예수님을 다른 우상들 속에 섞어 놓아도 안되고
예수님 안에 다른 것들을 끼워넣어도 안됩니다.
예수님 그분 만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회개가 없었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돌아서야 할 지점이 없었다면 그들에게 변화된 삶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죄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어떤 통렬한 회개가 없다면, 죄들에 대해서 죄책감이 생기지 않았다면, 정확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회개와 구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