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신 복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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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에게 주신 복된 소망
본문: 딛 2:12-15
2019-09-01
https://youtu.be/f-hcvHl2I8Q?si=JvyLw-fKz0M8ChdL
(딛2: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딛2: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딛2: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2:15)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복된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날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내가 죽고 묻힐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부활해서 내 아버지께 갈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다시 너희를 데리러 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다.
내가 먼저가서 너희를 위한 처소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마련되면 내가 너희를 데리러 올 것이다.
3절에서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다시 올 것이다. I will come again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더 복된 소망이 되는 것은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사전적 의미
신년에 둘러 앉아서 여러분의 올해 소망을 하나씩 말씀해 보라고 할때 이 소망은 말 그대로 희망 사항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망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일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언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사흘뒤에는 무덤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셔서 40일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들과 대화 하셨고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과 식사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이들과 교제하신 후에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시게 됩니다.
올라가실때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올라가셨습니다.
천사들을 통해 다시 약속하심
(행1:9)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행1:10)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며
(행1: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자신이 다시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지금 들려 올라가실 때 또한 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흰옷 입은 두 남자가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 시각은 아무도 모름
지금 보고 있는 예수님이 다시 돌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돌아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외에는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그 때를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 조차도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24:36) ¶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짜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그 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은 잘못된 확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이라도 오실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휴거에 대해서는 어떤 전조 현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딛2:15)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 : 앞 13, 14절의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서로 권면 하며 언급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언제고 오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서로 격려하고 지치지 않게 깨어있기를 원하십니다.
누군가 그분의 재림에 대해서 업신 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 모여서 그분의 재림의 소망에 대해서
서로 되새기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이 소망에서 떨어져 나가길 원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이 소망을 잃고 주저 앉기를 원합니다.
누군가 그런 약속이 어디 있냐고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된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으로…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이 구절에서 우리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라는 구절만 떼어 놓고 생각한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으로만 여겨질 것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명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다음 말씀에서 주시는 소망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이 하늘에서 우리가 거할 처소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때문입니다. (요14:2-3)
이 약속의 말씀으로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가족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주님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항상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고 계십니다.
(살전4:14)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4: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8)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결론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서 주님과 항상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해진 결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망으로 서로 위로하며 세상의 문제를 이기고 평안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서로 위로하려면 우리가 교회에 함께 모여야 합니다.
(롬15:13)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는 가운데 드러나는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 너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주님은 우리가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성령님의 권능으로 소망이 우리에게 넘쳐야 합니다.
주님과 같게 됨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지금 계시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요일3: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어떠한 사랑” : 그분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 말은 정말 놀라운 약속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옛사람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이 주님과 같이 된다
우리의 몸이 그분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약속입니다.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15: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로마서 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혼을 구원하셨지만
우리의 육신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옛 사람에 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비로소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이 완전하게 되기 이전에는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게 된 이후에는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롬8: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순간에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이 된다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삶을 정결케함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삶을
정결케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을 이야기 해주는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 비로서 우리가 주님을 믿을때 시작되었던 구원의 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약속은 거기서 구원의 모든 일을 끝내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알아가는 지식 안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딛2: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딛2: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Looking for that blessed hope,;
(딛2: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12절과 13절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삶이 복된 소망을 붙잡고 조금이라도 더 우리 자신을 정결케하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조금이라도 주님을 향해 변해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에 힘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복된 소망이 있다는 것이 그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소망으로 경건치 아니한 것들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위한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매일의 삶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의 관이 준비됨
(딤후4: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이 날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관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관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소망으로 우리의 삶에서 의로움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길 원하십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순간에 주님을 맞이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금과 같이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순간에 오시면 좋지 않을까요?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을때 주님이 오신다면 얼만나 좋을까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는 순간에
주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순간에 오신다면…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때 주님이 오신다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우리가 남편이나 아내와 다투고 있을때 주님이 오신다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우리가 음행을 하고 있을때 주님이 오신다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릅니다.
지금 이순간일지
오늘 우리가 잠자는 중일때 일지
그 순간이 언제일지라도 선한일에 열심일때 주님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소망으로 저는 여러분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일2:28)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분 안에 거하라. 이것은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하려 함이요, 또 그분께서 오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 오실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으십니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매일의 삶에서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찾아 오시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나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10)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그리스도 심판석 앞에 서게 됩니다.
그분 앞에서 서게 되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삶을 정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고전3: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어떤일로 연결되는 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서면 우리를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를 보고해야 합니다.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이 다시 오실때 부끄럽지 않을 지를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 소망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할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섰을때 “아 내가 이렇게 살았어야 하는데”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질때 주님을 섬기고 형제자매들을 섬길때 올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문제에 빠지지 말고 먼 훗날 내가 주님 앞에 서서 반드시 회개보고를 할 것이라는 것을 소망으로 안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소망을 갖는 것은 우리가 화평을 가지도록 해 줍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살전1:9) 그들이 직접 우리에 관하여 보여 주되 우리가 어떤 식으로 너희에게 들어갔는지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전1:10)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 보여 주나니 이분은 곧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 예수님이시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분명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은 우리의 소망이 아닙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주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 죄의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살후2:3)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의 시간을 잘못된 일에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가 사라지고 난 후에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어느 누구라도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겁니다.
교회가 이미 들려 올라갈때 같이 올라가지 못한 경우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저는 세계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은 내 소망 중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목격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벧후3:10)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벧후3:11) 그런즉 이 모든 것이 해체될진대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모든 거룩한 행실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가운데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
(벧후3: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나니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화평 중에 그분께 발견되기를 힘쓰라.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낮에 하듯이 정직하게
(롬13:11) 또한 때를 알거니와 지금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
이 당시 서신서가 작성될 당시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곧바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소망이 가까이 왔다고 한 이후 2천년이 지났습니다.
가깝다는 말의 무슨 말일까요?
우리의 휴거는 과거의 그 어는때 보다 가까이 와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 보다 더 가까이 가 있을 겁니다.
지금도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믿었을 때 보다 더 가까와 지고 있는 것입니다.
(롬13:12) 밤이 많이 지나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서가 기록될 당시에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면 지금은 엄청나게 가까이 와 있는 것입니다.
(롬13:13) 낮에 하듯이 우리가 정직하게 걸으며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고 침실을 더럽히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
13절은 우리의 삶에서 죄를 버리고 주님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딛2: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Looking for that blessed hope, and the glorious appearing of the great God and our Saviour Jesus Christ;
13절은 영어로 “looking for”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라보면서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의지가 동반된 기다림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갈망하듯이 소망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면 화평과 거룩함과 섬김을 얻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