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을 인내로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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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8일
제목: 주님의 약속을 인내로 기다리라
본문: 히 10:34-37
(히10:34) 너희에게 하늘에 더 낫고 영구한 실체가 있는 줄 너희 자신이 알므로 결박 중에 있는 나를 너희가 불쌍히 여겼고 너희 재산을 노략당하는 것도 기쁘게 여겼느니라.
(히10:35) 그러므로 너희의 확신을 버리지 말라. 그것이 큰 보상을 얻게 하느니라.
(히10:36)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니라.
(히10:37) 조금만 있으면 오실 분께서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도입
기다림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다림의 삶입니다.
구약의 내용도 많은 부분이 기다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신약성도의 삶은 하늘의 소망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지금 이 세상에서 손에 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고 그 믿음을 확고하게 붙들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의 인물들이 어떤 기다림의 자세를 가졌는지 살펴보면서
우리가 소망을 향해 가져야 할 인내와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초행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연습해보고 사시는 분은 없습니다.
우리의 초행길에 시행착오를 적게하고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과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급한 마음에 이때를 자의적으로 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커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믿음으로 그 때를 질서있게 약속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짧은 부부생활
아담과 이브가 함께 에덴 동산에 거했던 시간은 아주 짧았을 것입니다.
아담이 혼자 살았던 기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 돕는자도 여자를 만들어 주고 난 이후에는 아마도 지극히 짧은 시간에 죄를 짓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해 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은혜로 주시기 위해서 긴 여정의 시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구원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쉽고 간단한 과정이지만 이 간단한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준비하시고 기다리시고 때를 기다려 성취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값없이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실 시점까지 약 4천년을 기다리셨고
자신의 아들로 피값을 지불하시고 더 많은 아들을 얻고자 이미 2천년의 기다림을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기다림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내와 기다림을 능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노아의 기다림
(창6:13)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해 폭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세기 6:13에서 노아에게 땅이 인간들의 폭력으로 가독한 것을 보시고(13절) 이들을 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6:14절에서 노아의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노아는 이 명령을 받고 약 100년에 거쳐 방주를 만듭니다.
비가 뭔지도 모르고 홍수가 뭔지도 모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노아의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든 방주는 그들 가족만을 구원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서 약속을 주십니다.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내 사라와 같이 공유하게 하십니다.
남자와 아내가 다른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 가장 적절한 모습입니다.
(창12:1)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며 하신 약속입니다.
하란에서 떠날 때가 75세이므로 이 약속을 받을때는 그 이전 입니다.
이 약속을 이루실 분은 “내가” 즉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든다고 했는데 아직 자손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15장에서는 아브라함은 주님께 자기 집의 종 엘리에셀을 후손으로 삼겠다고 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주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려고 합니다.
(창15:4)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 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더라.
하갈을 통해서 16장
그런데 사라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태와 여건을 보면서 근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라는 자신의 방법으로 남편에게 아이가 생기도록 합니다.
자신의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서 후손을 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자꾸 우리의 관점에서 보려는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맞추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창16: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 하녀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주어 그의 아내가 되게 한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 지 십 년이 지난 뒤였더라.
하란에서 75세에 떠나서 가나안 땅에서 10년을 거했습니다. 그러므로 하갈을 첩으로 맞이한 나이는 약85세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라는 여러 면에서 조급했을 것입니다.
약속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해서 조급한 마음에 남편을 잘못된 방법으로 돕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라의 노력은 또다른 문제만을 만들게 됩니다.
(창16:4) ¶ 그가 하갈에게 들어가니 그녀가 수태하니라. 그녀가 자기가 수태한 것을 알고 자기 눈으로 자기 여주인을 멸시하므로
구약시대에 불임은 매우 치욕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사무엘서 한나의 경우 브닌나에게 받은 멸시와 같은 내용입니다.
신약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문제의 원인은 사라가 자처한 일입니다.
17장에서 다시 주신 약속에 대해 이스마엘로 대신 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웃습니다.
(창17:17) 그때에 아브라함이 얼굴을 대고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인 사람에게 아이가 태어날 수 있으리오? 구십 세인 사라가 낳을 수 있으리오? 하고
(창17:1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주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창17:21) 그러나 내 언약은 내가 내년에 이 정한 때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더불어 세우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약속에는 타협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강하시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용인되는 것이 없습니다.
마므레 평야에서
18장에서 아브라함은 마므레 평야에서 또한 한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습니다.
주의 천사가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이야기 하자
사라는 웃으며 그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사라는 이미 자신에게 여인의 관례가 끝난 상황이라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여긴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사 상대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창18:12) 그러므로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이르되, 내가 늙었고 내 주도 늙었은즉 내게 즐거움이 있으리오? 하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으며 듯지는 않나요?
믿기만하면 구원을 받는 다고?
낮아지면 높아진다고?
지옥이 있다고?
(창18:13)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정말로 아이를 낳으리오, 하느냐?
(창18:14)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한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함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창18:15) 그때에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시니라.
사라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확히 판결하십니다.
사라는 더이상 변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후에 하나님은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주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을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의 약점과 죄성을 보게 되비만 우리 자신을 같은 상황에 놓게 된다면 이들보다 더 좋은 믿음을 보일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창21:5)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났을 때에 그는 백 세더라.
백세에 아들을 주십니다.
이삭이 성령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 이들이 주님의 약속을 믿고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주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들의 믿음을 우숩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라는 자신을 남편의 통제아래 두었던 것입니다. 사라는 순종의 아내입니다.
이들이 약속을 기다리면서 자신의 의지로 행한 일들은 모두 불필요한 일이며 심지어 이들의 실수로 아브라함 후손간에 많은 다툼과 시기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깊이는 기다림의 인내와 비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약속을 믿고 기다린 기간에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약속의 소망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믿음은 실수와 패배를 불러올 뿐입니다.
하란에서부터 25년가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라면 그보더 더 긴 시간을 믿음으로 기다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사로가 병들어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때 여자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면서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가
나사로가 죽고 염을 해서 돌무덤에 넣은 후에 예수님께서 찾아 가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일찍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원망어린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은 잠자는 것과 같은 것이고 예수님 안에서 죽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이동하는 통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내가 생각하는 때는 다릅니다.
때로는 우리가 준비될때까지 기다리시기도 합니다.
그때를 우리가 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분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취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적절한 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상태가 될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기다림과 인내가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 기다림과 인내가 나를 훈련시키고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다윗은 왕이 될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서 3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창세기 25장 에서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로 태어났고 이들이 태어날때 주님께서 형이 동생을 섬기면 살게 된다고 예언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지고 계신 계획이라면 우리는 그 일이 이루어 질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에 이 경우에도 우리 인간은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어머지 리브가는 야곱에게 거짓으로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 이들의 관계를 망쳐놓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악한 방법을 동원해서 약속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기다리다 지쳐서
(출32: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백성이 보고는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출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에서 속히 떠나 자기들을 위해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에게 경배하며 그것에게 희생물을 드리고 말하기를,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을 인도한 신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출32:9) 주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아 왔는데, 보라, 그 백성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출32:10) 그런즉 이제 나를 홀로 내버려 두라. 내가 그들에게 맹렬히 진노하여 그들을 소멸시키고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리라, 하시니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모세가 조금만 더 일찍 이들에게 돌아 왔어도 이들이 이런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의 기준에서 방어 논리를 세울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이들이 어떤 상태인지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게 합니다.
(출32:14)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내리려 하던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니라.
사울은 기다리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정식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명령을 합니다.
(삼상10:8) 또한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보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의 희생물을 희생시켜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일을 네게 보여 줄 때까지 너는 이레 동안 기다리라, 하니라.
사울에게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도자로서 받은 명령이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기다리지 못해서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게 됩니다.
(삼상13:8) ¶ 그가 사무엘이 정해 준 정한 시기에 따라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자기를 떠나 흩어지므로
(삼상13:9) 사울이 이르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이리로 내게로 가져오라, 하고 그가 번제 헌물을 드렸더라.
사울은 잘못된 열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헌물은 사무엘에 의해서 드려져야 했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사울이 잘못을 저지릅니다.
사무엘은 왜 시간안에 오지 못하고 사울이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을까요?
(삼상13:10) 그가 번제 헌물 드리기를 마치매, 보라, 즉시 사무엘이 오므로 사울이 나가서 그를 맞으며 그에게 문안하니라.
(삼상13:11) ¶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도대체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이 나를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함께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무엘의 질문에 사울은 준비한 듯한 변명을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가져온 결과로 보입니다.
“내가 보았음으로”
보는 것때문에 실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에 신뢰하는 것은 우리가 범하기 쉬운 실수입니다.
(삼상13:12) 내가 말하기를,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덮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주께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그런 까닭에 내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 하니
(삼상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제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으나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는 눈에 보이는 적과의 전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대한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촛대가 움직이게 됩니다.
(삼상13: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주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 하고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구한 왕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댜려야 함
(고전1: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우리는 인내와 소망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속아서 처음 믿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 갑니다.
성경기록대로 전해지지 않은 복음으로 옮겨가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갈1:6)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
(계22: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의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보상을 서둘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보상을 주실때 까지 겸손하게 종으로써 아들로서 자신의 신분을 지키며 섬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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