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권능을 무력화 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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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의 권능을 무력화 시키는 것
본문: 히4:12
2019-09-22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는(quick)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검보다 예리합니다.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생각은 붙잡아야 될 것이고 저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분별을하게 해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여러분도 가지고 있고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주님과 같이 변화되는 삶을 경험하고 사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권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그분의 말씀이 권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분의 말씀이 무효화가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시간을 교회에서 주일 학교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듣고 배우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이 드러나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모든 성경 기록은 유익합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이 모든 기록은 우리가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철저히”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적당히”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없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성경은 여러분이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악에서 떠나는 능력을 줄 수 있고 이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자의 서원은 아버지나 남편이 무효화 시킬 수 있습니다.
(민30:3) 또 만일 여자가 어려서 자기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주께 서원하여 자기를 속박하기로 서약으로 맹세하였는데
(민30:4)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서원이나 혹은 그녀가 자기 혼을 속박하려고 말한 그녀의 서약을 듣고서도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모든 서원은 유효하며 그녀가 자기 혼을 속박하려고 말한 모든 서약이 유효하리라.
(민30:5)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그녀를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서원이나 그녀가 자기 혼을 속박하려고 말한 그녀의 서약 중에서 어떤 것도 유효하지 아니하리니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주께서 그녀를 용서하시리라.
(민30:6) 또 그녀에게 남편이 있는데 그녀가 서원하거나 혹은 자기 입술로 자기 혼을 속박하려고 조금이라도 말하였을 때에
(민30:7) 그녀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도 그것을 들은 날에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서원들은 유효하며 그녀가 자기 혼을 속박하려고 말한 서약들이 유효하리라.
(민30:8)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그녀를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는 그녀의 서원과 그녀가 자기 혼을 속박하려고 자기 입술로 말한 것을 무효로 만들지니 그리하면 주께서 그녀를 용서하시리라.
민수기의 문맥은 여자가 어떤 약속을 했더라고 그녀의 아버지나 남편이 동의하지 않고 허락하지 않으면 그녀가 맺은 약속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밑에 있는
젊은 여자가 나는 절에 들어가서 조용히 공부를 하겠다고 서원을 했다면
아버지가 그것을 듣고
그렇게하지 말라고 그 서원을 취소하면
그 서원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가 금욕을 하나님께 서원했는데 남편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될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서원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안지켜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 약속을 하고자 한다면 그 약속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하고 약속하면 주님께 근심거리만 안져주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언가 약속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합니다.
(막7:9)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잘 저버리는도다.
(막7:10) 모세는 이르되,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하였고 또,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죽을지니라, 하였거늘
(막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무엇이든 내가 드려 부모님을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예물이 되었나이다, 하기만 하면 그는 의무를 면제받으리라, 함으로써
(막7:12) 그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 조금이라도 행하는 것을 너희가 더 이상 허락하지 아니하여
(막7:13) 너희의 전통 곧 너희가 전해 준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며 또 그 같은 일들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너희들이 너희의 전통과 관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드는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들을 무효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들을 무효로 말들고 있는 것입니다.
위 마가복음에서는 사람들의 전통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 유아세례
오랜 기간 교회가 유아세례라는 것을 행해 왔습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아세례를 해야 할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그들에게 어떤 효력도 발휘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존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 목사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갔는데 찬양도 좋고 기도도 좋고 보수적인 분위기고 다 좋은데 설교시간이 되자 여자 목사가 나와서 설교를 한다면 어떨까요?
성경 어디에도 여자목사가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 자신의 전통이나 자신들의 집행부에서 결정한 내용이라고 여자 목사가 허용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 사모라는 호칭
성경은 사람을 높이는 것은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아첨하는 호칭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이 있고
성경 어디에도 목사의 부인이 어떤 호칭으로 불려도 된다거나 목사 부인이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전혀없는데
목사 부인에게만 특별한 호칭을 부르면서 그 이유가
집행부에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어떤 미국의 침례교회에서는 그렇게 사용하는데가 있기때문에 괜찮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고 무효화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견이나 교회의 전통으로 권위를 삼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렇게 다양한 주장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기록으로 주신 성경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뭐라하든 자신의 판단과 경험과 관습을 더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여주었는데도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을 더 가치있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 시키는 것이고
자신의 선택을 더 의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이 그들을 도울수 있는 길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는 서약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너희의 전통을 더 주장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드는 것이다.
-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물질로 대신함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당시 제사장에게 고르반이라는 예물을 드리면 부모에대한 공경의 문제를 면제받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전통을 꾸짖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냥 부모님 살집있고 먹을 것 충분히 사 드리면 내 할 도리 다 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나이드신 부모님이 화장실에서 쓰러지실 수 있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다치실 수도 있는데
가까이서 돌볼 생각은 안하고 돈으로 해결하면 잘 하는 걸까요?
그러다 돌아가시면
아! 잘 됐다. 주님을 빨리 만나러 가셨으니 얼마나 축복일까?
이러면 될까요?
교회에서 교제하다보면 부모님이 그때 돌아 가셨어야 하는데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다시 회복되셔서 부모님도 자신도 서로 고생이라고 기도 부탁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각자의 삶의 내용을 전부 알 수 없어서 함부로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그분의 삶과 상관없이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 난다면 저는 어떻게 생각해야 주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생각일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우리가 좋은 말로 서로 위로를 하겠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자시 부모님을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가?
저는 아직 그 대답을 성경적으로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분들 중에 알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누군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사시고 내가 그분을 위해서 더 섬기고 공경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교회 안에서나 이방인들에게도 올바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교회에서 장로나 리더를 선출할때 신앙이 아니라 장유유서의 전통으로
교회에서 장로를 뽑을 때나 교회 안의 단체장을 뽑을때 리더의 신앙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의 장유유서의 유교적 문화때문에 나이 많으신 분을 위주로 장로를 뽑거나 리더를 뽑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신앙이 먼저입니다.
신앙이 있다면 나이 어린 사람이라도 감독이 될 수 있고 집사가 될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딤전4:12) 아무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전통을 끼워 넣지 않도록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연로하신 분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리더를 뽑을때는 나이로 뽑는 것이 아닙니다.
장례식에 섞인 유교 불교
기독교 껍질 안에 불교적 유교적 사상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입관 발인 하관식 등이 모두 유교적 절차인데
우리는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등을 하고 있는 것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찬양대 가운…
지휘자는 또 다른 색의 가운을 입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요?
복음을 말의 지혜로 하는 것은 십자가를 무효화 시킵니다.
(고전1:15) 이것은 아무도 내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의 집안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나니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사흘 뒤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철학적 접근을 시도해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서 멋진 설교를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무효로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장난이나 지혜로 복음을 무효화 시킬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이외의 것들을 가지고 주장을 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고대 사회의 문화를 연구하고 고대 언어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은 모두 불필요한 일들입니다.
그들이 찾아내려는 성경 이외의 권위는 십자가를 무효화 시키는 일입니다.
제가 술을 좋아 하는 것은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제가 여자를 좋아 하는 것은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저는 비겁한 성격을 타고 났습니다.
저는 차가운 성격을 천성으로 가지고 태어 났습니다.
이런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이 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아내와 이혼을해서 술이 없이는 슬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지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취업에 실패해서 술을 마실 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와 싸워서 화가나서 거친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죄에 내어줄 이유와 변명 만을 계속 찾는 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효력있게 일할 수 없게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고 여러분의 삶이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말씀이 일 하는 체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내가 슬픈이유만 한탄하며 계속 지내시겠습니까?
이런 슬픔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나님의 말씀대신
인본주의 철학으로 위로를 받기 위해서 돌아다니다면 여러분은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만 듣고 다니게 될 것이고 결국 죄를 벗어 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저 죄속에서 뒹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 심리 상담사를 찾아가서
제가 왜 아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잘못이라고는 알지만 나도 모르게 다른 여자를 보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저를 주체할 수 없게 만들어요!
상담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당신은 성장기에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커져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부족한 사랑을 채우려는 마음이 일어나서 다른 여자에게 그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충분한 사랑을 채울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제가 이러는것을 눈감아 주시기 않을까요?
이런 쓰레기 같은 처방에 권위를 두시겠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모든 불행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참을 수가 없다고 하면
여러분의 감정과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권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효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허접한 노력과 잘못된 가치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력화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갈5: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느니라.
갈라디아 교회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하십니다.
갈라이다 성도들은 자신들이 이전부터 지켜왔던 율법을 버리지 못해서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갈5:5) 우리가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기다리나니 For we through the Spirit wait for the hope of righteousness by faith.
여러분은 이미 하늘나라에 갈 만큼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만큼 충분히 의로운 상태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로움은 내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이순간 자신의 의로운 부분에 의지하고 자신의 모습이 하늘나라에 갈 만큼 의로워 보이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여러분에게 아무 가치가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켜서 또는 선행을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일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구원받으셨나요?
의로운 삶을 살기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무엇인가 해보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아무 효력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앞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하늘에 들어가기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이선행이나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늘나라에 가려고 시도한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도움이 없이 하늘나라에 갈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도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으면 효력이 없습니다.
(살전2:13)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여러분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면 이 말씀은 여러분 삶의 모든 것을 고치고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성경책을 그저 손에 들고 있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지체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수 있고, 하나님과 위대한 동행을 해서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듣기만 하고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 그분의 말씀의 권능은 효력을 잃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 각 사람의 삶에 아무런 효과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은 옳다고 하고 성경은 옳지 않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어느쪽 답을 취해서 살던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는 영향이 없지만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선택한 사람의 삶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동일하게 설교를 듣고 같은 교제를 하고 하지만 교회를 벗어나서 각자의 삶이 말씀대로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같이 배웠다고 해서 그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의 선택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 선택은 여러분 각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존중하고 삶에서 선택해서 실행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술과 쾌락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해서 그 말씀이 그 사람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사람에는 그 말씀이 무효가 되고 효력을 발위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가지 상황을 말씀드리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말씀을 통해 보여준다고 해서 그 가르침이 여러분을 저절로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의를 제기하고 그 상황은 내 상황과 다르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가르침은 그 사람에게 아무 효과를 발휘 할 수 없게 됩니다.
같이 성경을 읽는다고 그냥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그 말씀이 효과적으로 여러분의 삶에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듣지 않는 사람과 동일한 결과에 다다를 것입니다.
원하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 할 수 없습니다.
(마23:37)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뜻은 너희를 모으는 것이다. 너희의 뜻은 모이지 않으려고 한다.
왜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지 아시나요?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구원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시키지 못하는지 아시나요? 그들이 그 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보나 지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알지만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의지가 성경말씀 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예배를 듣는다고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 유익이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내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변할 수 있는 방법은 내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고 따를 수 있도록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나를 깨부수고 비로서 내 스스로 진리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능력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자기 의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만은 잘못된 것들에 굴복하고 살아 갑니다.
전통과 관습, 불신, 자신의 지혜, 선행을 따르는 것, 자기 고집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효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이 말씀들이 나를 변화시키고 그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 안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면 효력을 발휘 할 수 없습니다.
(잠3:5) ¶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잠3:6)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