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빚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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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빚진 자
본문 : 롬 1:14-15
2019-12-15
(롬1: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롬1: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또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13절을 보겠습니다.
(롬1: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1. 열매를 맺기 위해 다닙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열매를 얻기를 원하였는데 그것을
너희 가운데서 그리고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얻고자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자 합니다.
- 바울의 낙관적인 용기
오늘은 사도 바울의 낙관적인 용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봤을때는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바울은 희망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희망은 열매를 얻을 수 있겠다는 희망입니다.
- 지역을 이동하며 섬기는 사역
사도 바울은 오늘날 한 지역에서 섬기는 일반적인 목사들이 하는 사역이라는 것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한 지역에 머물면 그들에게 열매를 거두게 그 열매의 기쁨에 참여해서 계속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충분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서 역할을 다하면 다른 곳으로 또 보내십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 곳이라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곳에 가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기도 합니다.
한 지역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거듭난 사람들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세워 맡기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더 어려운 곳에 가서 사역을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사역입니다.
오늘날 복음전도자의 사역이 성경적 사역입니다.
2. 로마를 향한 여정
로마사람은 유대인을 경멸했습니다. 로마는 유대인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식민 통치했습니다.
- 빼어난 말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후10:10) 그들이 말하기를,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함께할 때는 약하고 그의 말도 형편없다, 하는도다.
사람들은 바울이 서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면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성도들은 편지가 너무도 감동적인데 그의 말하는 능력은 형편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에 대한 이미지는 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가서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고전2:2)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바울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을 버리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 만이 진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고전2:3) 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몹시 떨면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며
(고전2:4) 또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으니
(고전2:5) 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육신적인 생각은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설교를 매끄럽게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빼어난 말보다 선한 삶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내어드린 선한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명 설교가나 유창한 말솜씨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 변명없이 교만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람은 구차한 변명없이 교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로마에 보내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곳은 부유하거나 영향력있는 유대인들에의해 거부될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그는 이방인의 대표적인 도시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곳은 그들의 왕의 도시였고 황제는 자신들을 신으로 섬기도록하는 곳
3. 로마는 이방인의 대표적인 도시(왕, 전쟁영웅, 우상, 지식)
그곳은 전세계로부터 그들의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입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두려워 몹시떠는 바울을 바로 그런 곳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정복군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전쟁으로 그들을 제압해서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전쟁의 위대한 영웅과 승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들의 도시 곳곳에는 세계 여러 곳을 정복한 영웅들의 동상들이 세워져서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곳입니다.
- 하나님은 두렵고 떠는 바울을 이런 로마로 보내려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바울을 그런 곳에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일은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철저히 버려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 할때 가능한 일들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만을 의지 할때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선택한 것은 바울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님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시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연약하다고 투덜댑니다.
바울은 육신의 가시를 가지고 기꺼이 로마에 가고자 열망했습니다.
- 바울은 복음에 적대적인 지역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그곳에 가서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했던 민족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허락했던 민족이고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빌라도를 보낸 곳이고 헤롯을 파견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우리에게는 카이사 외에는 왕이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빌라도, 카이사, 헤롯은 모두 이 땅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행28:16) 우리가 로마에 이르매 백부장이 죄수들을 호위대장에게 넘겨주되 바울은 그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거하게 허락하더라.
(행28:17) 사흘 뒤에 바울이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함께 부르고 그들이 함께 모인 뒤에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백성이나 우리 조상들의 관례를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 사람들의 손에 죄수로 넘겨졌노라.
(행28:18) 그들은 나를 심문하고는 죽일 이유가 내게 없으므로 나를 놓아주려 하였느니라.
(행28:19)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반대하여 말하기에 내가 마지못해 카이사르에게 청원하였으되 이것은 내가 조금이라도 내 민족을 고소하려 한 것이 아니니라.
(행28:20) 그러므로 이런 까닭에 내가 너희를 보고 너희와 함께 이야기하려고 너희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인하여 내가 이 사슬에 결박되었기 때문이라, 하니라.
(행28:21)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대로부터 너에 대한 편지를 받지 아니하였고 또 형제들 중의 누가 와서 너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나쁜 것을 보이거나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행28:22) 그러나 우리는 너로부터 네가 생각하는 바를 듣고자 하노니 이는 이 분파로 말하건대 그것이 어디에서나 비방을 받는 줄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2절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분명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비방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도착한 로마의 상태는 유대인들조차 이미 바울의 복음에 대해서 적대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복음이 필요없는 곳에는 찾아 갈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이나 복음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곳에 찾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려움과 떨림과 연약함으로 용기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곳에 사슬에 묶여 군사들에게 끌려가서 사람들에게 모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너희들이 잘못알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올바른 것을 말해주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두렵다고 하지만 바울은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세상 지식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고전1:22)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바울은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대상은 그리스도를 처다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은 그분에게 걸려 넘어 질 것이고 그분을 통해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기 보다는 이들은 오히려 넘어지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넘어지는 것은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심도 갖지 않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육받은 내용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서 전하는 사람들을 바로 비웃고 경멸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인지하고 “음, 내가 저기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들의 면전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각오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웃의 누군가가…
이혼 재판 속으로 들어가고
술취해서 만신창이 되어가고
마약 중독으로 빠져들때
여러분은 그들을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보다 자신들의 문제로 빠져들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너무 잘 받아서
결혼보다는 혼자사는 것이 더 즐거운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술이 주는 장점이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최소한 초 중 고 12년간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진화론을 배우고 전통 제사법을 배우고
제사를 통해 가족의 유대관계를 이어갑니다.
제사를 무시하면 조상을 무시한다고 하고 가족윤리를 버린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열매을 얻기 위해 가야 합니다.
(롬1:13) …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that I might have some fruit among you also, even as among other Gentiles.
열심을 내다가 지치신 분들에게 되새겨 볼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금 언급했던 것처럼 험난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바울이 확신했던 것은 그곳에서도 반드시 내가 열매를 얻을 것이라는 겁니다.
바울이 그런 곳에 간 이유는 그일이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명령을 받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도시 하나를 더 방문해서 방문 도시 수를 늘리려고 간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그곳에 간 것은 내가 가서 반드시 열매를 얻어야겠다는 각오가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는 실패에 참여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서 간 것입니다.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무언가 열매가 맺어질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구원받을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무기력하게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도우실 것입니다.
이 일은 고귀한 일이고 혼들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혼들이 성경을 배우고 함께할 교회를 찾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시도도 하기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가봐야 전도지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거리 설교를 해봐야 듣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해도 듣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 이일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일이 옳은 일이니 계속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는 성경적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잘 준비된 답변과 보여지는 선한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누군가에게 성경의 진리를 붙잡게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답변을 준비하는 것은 언젠가 여러분의 답변을 통해서 한 혼을 구원받게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지역도 가야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지 말아야 할 수만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열매를 얻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열매를 얻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확실이 얻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열매를 얻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고린도에서는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교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고린도에서 무슨 열매를 맺겠냐고 할 것입니다.
사마리아에서는 어떤 일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날때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지나가다 혼을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지나가는 마차에 가보라고 했을때(행8:26)
빌립이 “거기가서 뭐하게”라고 하고 가지 않았다면 일어 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유대인도 아닌데 가기 싫다고 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에 열심이지만
교회에서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열매에대한 갈망이 없이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열매를 얻으려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2년의 감옥생활을 해야하는 죄수가 로마의 감옥 제도의 편의를 받으면서 사람들을 자기 집에 불러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바울은 그렇게 그곳에 갔고 그런일을 했습니다.
무엇을 그가 이런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만든 것일까요?
우리는 구원에 빚진 자 입니다.
(롬1: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바울은 자신이 빚진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연관 구절을 보겠습니다.
(롬13: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느니라.
구원받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빚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인에게도 빚을 졌고, 바바리인에게도 빚을 졌고 로마사람에게도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고 나를 구원시기키 위한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서 나는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의 죄 값을 지불하신 이후로 나는 빚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구속하신 이후로 나는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하신 이후로 나는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봉인하신 이후로 나는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선물로 받은 나를 생각한다면 나는 분명히 빚진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은 다른 잃어버린자들에게 갚으라고 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상한 진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 빚졌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내가 지불한 것을 돌려받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나에게 지불하지 말고 그 값을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지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갚지 말고 저들에게 지불해라.
여러분이 나에게 빚을 갚고 싶다면 그리스 사람들에게 가서 내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하기 원합니다.
바바리인에게도 가서 내 아들을 전하기 원합니다.
유대인에게도 가서 내 아들에 대해서 전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빚을 갚기 원한다면 우리의 위대한 구원을 죄인들을에게 알리는데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전해야 합니다.
(고전14:9)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혀로 알아듣기 쉬운 말들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한 것을 어찌 알리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리라.
(고전14:10)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소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 중에 의미 없는 소리는 하나도 없나니
(고전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말하는 자에게 야만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인이 되리라.
우리가 서로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 받는 다면 우리는 서로 야만인이 되는 것입니다.
(롬1: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여러분은 복음전하기 좋은 이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전하기 좋은 부류의 사람들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복음을 잘 들을 지 저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 들일 지 여러분이 선택하거나 알아 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 사람이든 바바리인사람이든 지혜로운자이든 아니든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아니라 이들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콜 중독자들이든 게임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이든 누구에게 전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전해야 합니다.
-빚을 갚고 대가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당신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 한 일이라면 어떨까요?
내가 빚진 사람에게 빚을 갚으면서 그 대가로 무언가를 원한다면 이치에 맞을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10만원을 빚을 져서 다음날 10만원을 갚으면서 내가 갚았으니 뭔가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빚진자로써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기뻐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여러분은 빚을 갚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런 빚진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보상이 없다고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 빚은 하나님께 졌지만 갚는 것은 잃어버진자에게 갚으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빚진 것이 없지만 나는 하나님께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빚을 갚으려면 저들에게 갚으라는 것입니다.
(롬1: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또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내가 할 수 있는 분량대로 하면 됩니다.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바울과 같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각자의 분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할 수 이상의 일을 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분량을 전부 그분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이상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싶은 많은 변명들은 다 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끄러움을 많다, 가족 문제가 있다, 말을 잘 못한다, 배운게 없다,
가진게 없다,
여러분이 가진 모습그대로 주님께서 받으실 수 있게 드리실 수 있나요?
바울은 베드로처럼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요한처럼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누가처럼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그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습 그대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 받고자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누군가 처럼 변화되거나 능력이 생길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70의 나이라면 여러분은 70세의 여러분을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70세의 성도가 30세의 성도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 모습 그대로를 예수님께 드리실 수 있으신가요?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초능력을 가지고 주님을 섬긴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가 주님께 헌신한 것이 드러나고 있고 그런 헌신이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는 그가 쓴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이 주신 것을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운것에 대해서 공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렸습니다.
-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또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저도 여러분도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분야이든 여러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준비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준비되지 않은 여러분을 자리에 맞게 만들어 주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것도 여러분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준비가 되어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과 자매들 모두를 위해 섬길 수 있는 진리가 여러분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섬길 곳을 찾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위한 열매를 맺고,
세상에서 여러분의 빚을 갚는 것은,
여러분이 준비되어 있을때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된것이 무엇때문인지 아시나요?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는 모든 능력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 사도로서 칭송을 하지만
고린도후서 10장에서 몸으로는 연약하다고 했습니다. 말도 형편없다고 했습니다.
(고후10:10) 그들이 말하기를,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함께할 때는 약하고 그의 말도 형편없다, 하는도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는 바울은 뛰어난 말솜씨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가서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고리도후서 7장에서는 감정적 문제 투성이 이라고 말하고 잇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는 그의 삶은 영적인 문제와 매일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롬7:23) 내 지체들 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성경대로라면 바울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고 그는 그 일에 항상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수 많은 변명을 하면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단 한 가지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어느 누구와도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과 함께 일 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보상받으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주님께 빚진자로 형제 자매를 섬길때 우리의 신앙은 올바를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가 잘 모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여러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가지고 마귀의 근저지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로 마치려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알렉산더외 카이사르의 도시입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나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들은 군대를 이끌고 무기를 가지고 세상을 정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이들을 용기있는 영웅의 명단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며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매 맞고 감옥에 끌려가 옥살이 하면서 망가진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눈에는 질병이 있어서 잘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성경책 하나만을 의지고 세상의 철학을 가지고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이들에게 복음을 외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예수그리스도께 이겨온 것입니다.
과연 역사 속에서 바울보다 더 용감한 군인이 있을까요?
그에게는 군대고 없었습니다. 병마도 없습니다. 군사적 무기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도시에서는 매를 맞고 나옵니다.
그러나 바울을 또 다시 다른 도시로 갑니다.
그리고 군중 가운데 들어가서 복음을 외칩니다.
바울에게 용기가 없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이야 말로 역사 속에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요?
바울의 이런 용기는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분량대로 주님께 드릴 준비가 되셨나요?
주님께서 여러분과 같은 사람을 사용하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저 여러분과 저와 같은 사람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권능은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