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화평과 질서

주일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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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화평과 질서
#설교준비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Therefore being justified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중에 하나는 마음에 평강을 얻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때로는 명상요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요법을 사용하기도하고 나름 자신의 마음에 평강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의 문제를 해결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제공되는 갖가지 요법은 진정한 화평과 평강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클럽에 가서 큰 볼륨의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어 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화평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시고 완성한 일로 인해서 값없이 구원을 받았고 죄의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우리가 아들을 받아 들이지 않았을때는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노를 우리 대신 받아 주신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해 헌물로 제시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요일2:2)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골1: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즉 내가 말하노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었던 우리가 화평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관점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창조주를 아버지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이것보다 더 값진게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새롭게 변화되어 얻게 된 신분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화평과 평강을 누리며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들도 자주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 분노를 참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긴장과 초조함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안정된 삶이 주어지지 못하는 것은 삶이 평화롭게 유지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삶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육신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7절의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서 화평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미 의로워졌고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 속에서 가족문제가 생기거나 경제적 문제가 생기거나 질병의 문제가 생기거나 이웃과의 분쟁이 생기면 우리는 육신적인 생각이 먼저 반응하면서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처럼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를 주님께 가져가서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화평이 우리에게 다시 인식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면 그 화평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화평이란 :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결과로 얻게된 혼의 휴식
배우자를 통해서?
나는 여러분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이런 화평의 원천이 여러분의 배우자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화평은 하루하루 변화무쌍할 것입니다.
저는 제 아내로 인해 너무 행복하고 가정에 평화를 유지하고 삽니다.
그러나 제가 어느날 반찬 투정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화평은 깨지고 싸늘한 냉기가 집안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통해서?
여러분 가정에 아기가 생기면 그 아이로 인해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아이와 더불어 행복하고 풍성한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우는 소리와 짜증나는 상황을 관리해야 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밤을 세우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행복일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아이들이 여러분의 정신적 정서적 행복을 주는 원천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항상 그렇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서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기대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사람을 없을 겁니다.
그 사람들도 당신의 모든 일에 옳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옳다고 동의해 줄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찾는 화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있었던 화평은 곧 깨어지고 말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의 행동이 맘에 안들어 하겠지만
그사람도 여러분의 행동이 맘에 안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을 좋아 할 수 없을 겁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서 정신적 감정적 화평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곳은 예수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 뿐입니다.
왜야하면 그분에게는 어떤 잘못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눅1:78)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친절한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로써 동트는 때가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를 찾아와
(눅1:79)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주고 우리 발을 화평의 길로 인도하셨도다, 하니라.
여러분은 구원받을때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평강과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정신적 감정적 화평은 어느 교회의 예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화평은 화평의 길로 가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화평의 길로 인도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거니셨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비천한 여인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관계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기를 낳았다고 비난받았습니다.
그분은 굶주렸고, 목말랐고 피곤했습니다.
그분은 거짓말로 모함을 받았고 잘못된 고소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잘못 평가 되었습니다.
사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감정적 문제를 드러낸 부분을 찾을 없습니다.
감정조절이 안되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일어 났습니다. 친구의 배신, 잘못된 비판, 죽음 앞에서 모습,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예수그리스도도 몸소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날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그분이 어떤 길들로 걸어가셨는지를 배울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여러분에게 말하든 상관없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무슨 짓을 하든 어떤 상황을 마주치던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한다고 해서 하늘로부터 새로운 능력이 내려와서 상황을 이길 수 있게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을 유지하는 방법은 살아가는 방법,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방법은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화를 줄이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는 사람들도 모두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찾아야 할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화평하게 되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펴서 읽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요16:33)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안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우리가 화평을 위해 주님께 기도를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환난과 문제가 없는 삶으로 데려간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수 있게 해주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로 사는 것은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환난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 환난가운데서 기운을 내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환난이 없는 평안을 원하고 계신다면 그것은 죽고 난 다음에나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문제가 고통이 가득찬 환경 속에서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방법은 환난이 여러분 앞에 닥쳐서 여러분의 마음을 요동치게 할때 그 환경에 묶여서 그 상황에 매몰되지 말고 내 말을 붙잡고 평안으로 빠져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화평을 위해 기도하면 화평이 하늘에서 나에게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뭔가 기도를 통해 묘약을 얻으려하지 말고 기록된 성경말씀을 읽고 읽고 또 읽고 공부하고 공부해서 그 평안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연적인 질서는 화평 보다는 이견과 분열과 갈등과 충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보고 계실 겁니다.
이러한 갈등과 분열과 충돌을 바로 잡고 줄이기 위해서 공권력이 필요하고 법정과 판사가 필요하고 목사가 필요하고 부모가 필요하고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별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두면 안정과 화평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머어머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게 됩니다.
만일 내가 누구와 싸워야겠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노력해야 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열과 충돌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화평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엡4:1)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엡4:3)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어떤 사람은 여기사 교회도 아닌데 왜 싸우냐고 합니다. 교회에 가면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래서 가기 싫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자신의 편견일 뿐입니다.
교회에 가면 누가 나의 험담을 한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만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도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것을 자신도 알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서 잘 모른다고 불평을 합니다.
교회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예수님 눈에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람들로 만 되어 있었나요?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나요?
3절에서 처럼 화평은 힘써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와 함께 살던 누구와 함께 일하던 화평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말씀대로 힘써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결혼 생활과 올바른 직장생활과 올바른 교회생활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온유하지 못하고 오래 참지 못하면 어느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없을 겁니다.
갈등은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생깁니다.
그리고 누가 그 갈등을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누가 그 갈등을 끝내느냐 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의 갈등의 문제를 끝내 주신 분이십니다.
(고전14:27)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순서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할 것이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질서를 정해주고 계십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할 때 두 사람이나 많으면 세 사람이 말하라고 하십니다.
네 번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번에는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말하라고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다면 다음 사람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 질서가 성경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이 질서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일이 될 것이고 그러면 회중간에 화평이 깨지게 됩니다.
(고전14: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그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니라.
통역하는 사람이 없는데 외국어로 말하면 28절의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고전14:29) 대언자들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은 판단할 것이요,
(고전14: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이 계시되면 먼저 하던 사람은 잠잠할지니
(고전14:31) 모든 사람이 배우고 모든 사람이 위로 받게 하기 위하여 너희가 다 한 사람씩 대언해야 하느니라.
(고전14:32) 대언자들의 영은 대언자들에게 통제를 받나니
(고전14:33)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
(고전14:34)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고전14:35) 만일 그들이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니라.
규칙은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평안한 삶과 평안한 교회를 원하거나 평안한 인간 관계를 원한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관련된 사람들이 동의 된 규칙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규칙을 제정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교회의 감독이 지도력을 발휘해서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누군가 성경에는 담배피우지 말하는 말씀은 없으니 저는 담배를 죄의식 없이 피웁니다. 여러분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집에서 담배를 피우시겠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규칙을 만들어서 담배를 피우시더라도 교회에 오실때는 담배값이 다른 성도나 청소년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집에 두고 오시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해 달라는 규칙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규칙이 만들어 졌다면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교회에 화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만일 이런 규칙이 맘에 안들어서 교회에 오기 싫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그것을 허락하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것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교회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교회에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교회에 평안을 깨게 됩니다.
외국어로 설교를 하고싶습니까? 그럼 통역할 사람이 있나요? 없다면 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규칙을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승복하고 평안이 유지될 것입니다.
네번째 사람이 대언을 하고 싶은가요? 다음 이번에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평안을 원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합니다.
사람들이 평안을 원하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평안을 원하면서 서로 협력해서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평안을 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평안을 원하면서 성경을 알고싶어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에 교회사용은 6시에 마치고 떠납시다. 성도들이 동의했다면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화평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
모든 성도들이 동의했는데 누군가 계속 남아서 교회건물을 사용한다면 화평이 깨지게 됩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전등을 소등하지 않고 교회를 나서면 전기료는 더 나올 것이고 가스불이나 전기장비들을 점거하지 않고 나오면 화재나 안전사고 위험이 올라갈 것입니다.
이를 걱정하는 형제자매들과 화평이 깨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잘 가르치는 자매가 있는데 그 자매가 성경학교에서 가르치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면,
그런 행위는 성경 말씀에 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가르침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리가 없습니다.
교회는 화평이 깨질 것입니다.
만일 교회 목사가 나도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교회에서 여자 목사와 교사가 가르치는 것을 보니 잘하는 것 같고 교회가 부흥이 많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여자가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감독을 보고 계신다면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보기에 멋진 결과를 위해서 말씀의 기준을 버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 판단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엡4:3)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고 말리는 것입니다.
(고전7:15)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경우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셨느니라.
누군가 여러분을 떠난다면 그 사람을 강제로 같이 있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관계를 깬것이 아니라 떠난 사람이 관계를 깼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에따는 교제라면 깨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화평을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오늘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때문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늘도 쉬지 않고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분의 영향력 있는 지배력으로 우리의 삶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함께하는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한 마디도 주고 받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어는 누구도 내가 예수님을 실망시킨것 보다 더 실망시킨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등지고 돌아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우리와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만일 내가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통제하도록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끝내는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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