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비유들 1(막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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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보게 될 마가 복음 4장은 많은 비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2절은 비유의 배경을 이야기하고요, 이어서 씨뿌리는 비유,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 씨뿌리는 자의 비유 해설, 등불의 비유와 되의 비유,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 겨자씨 비유 그리고 비유의 결론이 나옵니다. 마지막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2절은 비유의 배경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로 바닷가입니다. 그런데요, 이전과는 비교될 수 없는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성이 이스라엘 내에서 점점 높아졌음을 보여줍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가 아니라 바다에 배를 띄우고 배에서 가르치셔야만 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무엇이 옆에 던져지다’인데,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것을 가져온다라는 말입니다. 즉 비유란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가져와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 ‘비유’라는 말은 신약에서 50회가 나오는데 그 중에 48회가 신약의 공관복음에만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는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관한 보도가 아닙니다. 비유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는 ‘그림언어’ 즉 그 상황을 눈으로 잘 상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냥 눈으로 보이는 의미를 넘어선 심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유는 비유 밖의 그 무엇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서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말씀이고 씨를 뿌리는 농부는 예수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유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같은 이야기 형태가 있고, ‘생베조각과 옷 비유’ 나 ‘새포도주와 가죽부대 비유’와 같은 경구 형태의 비유도 있습니다.
3절부터 9절까지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여기에 보면 씨 뿌리는 자가 뿌린 씨는 네 종류의 땅에 떨어집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그리고 좋은땅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왜 농부는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지 않았을까요? 그냥 좋은 땅에 뿌리면 되지, 왜 씨앗 아깝게 굳이 안좋은 땅에까지 씨를 뿌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농사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중앙 산악 지대에 정착했는데요, 그 땅은 석회암으로 된 척박한 산지지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척박한 산지라도 농지로 사용하기 위해서 ‘계단식 농경지’를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계단식 농경지에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이 길이 비유에 나오는 길가, 정확히 말하면 ‘길가의 밭’입니다. 계단식 농경지는 위로 올라갈수록 토양이 얇아지고 바위가 많은 ‘돌밭’이 되고,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가시덤불 밭’이 만들어 졌습니다. ‘좋은 밭’ 이란 비가 와서 쓸려 온 고운 흙으로 된 밭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즉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는 거슬 보여줍니다. 특별히 100배의 결실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삭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랄 땅에 정차갛여 농사하엿을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100배의 수확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특별히 ‘들으라’로 시작해서’ 들으라’로 끝이나는데요, 이것은 이 비유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11절에는 두 가지 대조되는 인물군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들및 제자들로서,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은 자들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측근과도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외인’들입니다. 이들은 앞서 3장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부인하고 귀신의 영을 힘입어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했던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잡으러온 가족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외인들에게 모든 것을 비유로 말슴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서 그들이 돌이켜 죄에서 용서를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외인들이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할 기회가 박탈된 것처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슴이 의도하는 바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는 돌이켜 죄 용서를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 12절은 이 사야 6장 9—10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유다 백성에게 보내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 백성의 완악함을 풍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 복음 4장 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인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듣지 않는다, 깨달음에 대한 간절함과 사모함이 없는 자, 그래서 깨닫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비유를 들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할 경우 그들 역시 외인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비유는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에게 냉정한 현실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복음을 전할때에 언제나 좋은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땅도 있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즉 모든 땅이 좋은 땅이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을 이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