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부르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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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하심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191장, 통일찬송가 427장
‘내가 매일 기쁘게’ 찬양하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1장 16~20절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16–20 NKRV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이시간 드려진 예물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아와 하루를 시작하며
말씀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시간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건강의 문제로 기도하는 성도님들 있습니다.
오장육부, 관절, 골수, 마디, 세포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회복되어 다시 살아나고, 강건해지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함, 피곤함, 아픔과 질병, 고통과 고난, 어려움 속에 있는
상황과 환경 모두 떠나가게 하여주시고,
마음의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가벼워지도록 주님의 평안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드릴 것이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이 모든 말씀을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장 16~20절 말씀을 통해
“제자들을 부르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대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직업이 어부였다는 사실만으로
매우 가난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직접 배를 소유한 어부였다면
배를 소유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유한 부류에 속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배를 만드는 기술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그마한 어선이라 할지라도 매우 비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처럼 값어치가 나가는 배를 버려두고
처음 보는 사람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에는 가장 우선적으로
생계와 가족에 대한 문제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간적인 문제나 갈등을
모두 제쳐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그릇이 이미 준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고기잡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과정이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심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말씀을 살펴보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기도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과 단절을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지극히 간단한 말로 표현되었지만
중요한 의미들이 담겨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을 부르신 예수님께 자신들의 생사를
맡겨야 함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이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의 자격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62 NKRV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 된 자는 세상에서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끊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을 덧입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닭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과 동고 동락하면서
그의 삶을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본받지 않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의 말과 결단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자신이 예수님 닮은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나를 본받으라’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실 이 말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도 오늘 당장 여러분에게 ‘저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저와 함께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 닮아가도록 노력합시다. ” 이정도는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정도는 말할 자신이 있으시죠?
예수님 닮아가려고 오늘도 남들 다 자는 새벽에 나아와
이렇게 주님 말씀 듣는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단순히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으로
제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 본받는 삶을 거부하였기에,
예수님을 따라다녔음에도 결국 제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닮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는 누구나 예수님의 제자이고
마땅히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 삶을 거부하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더라도
아직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은 배 뿐 아니라
자기 아버지 세베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고자 했던 부자청년은 어떠했습니까?
마태복음 19:21–22 NKRV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영생의 길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근심하며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며 자신의 허물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모든 허물을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도, 부자청년에게도
영생을 얻는데 장애물이 되는 죄와 허물,
재물과 욕심을 거둬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그 장애물을 제거하기 원치 않았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과 재물로 인해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을 받은 즉시 자신이 밭을 갈던
소 한마리를 불살라 삶아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 들었습니다.
엘리사는 철저히 자신을 포기하고 헌신하며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자세를 보시고,
엘리야보다 더 큰 갑절의 능력을 부어 주시고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권능을 주시고, 파송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37–39 NKRV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부정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했던 것들을 모두
예수님을 전하는데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아쉬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배설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의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 전도를 위해
자기의 생명도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는 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사람 낚는 어부,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서울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제자의 부르심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세상과 단절하고, 예수를 닮아가며,
철저히 자기 자신을 포기하며 사는 삶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이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부르신 12제자들이나
특정한 소수에게만 국한된 사명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 모든 그리스도인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각자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받은 자로서, 오늘도 마땅히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람낚는 어부의 사명을 다하여 세상을 비추고,
세상의 맛을 내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는 세상의 욕심과 재물, 나의 욕망과 생각들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는 참된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주 고등부 새봄수련회와 부활절 전도축제에 많은 영혼들 보내주셔서 다음세대에 희망을, 예비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교회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주변에 몸과 영혼에 병든자들 회복하여 주소서, 각자의 기도제목을 위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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