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1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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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헌금명단 낭독 후 대표기도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주님의 낮아지심과 주님의 고난당하심을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 놀라운 사랑들을 기억하며 늘상 아버지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찬송하며 고백했던 가사의 내용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크시고도 위대하신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위해 보이신 놀라운 사랑에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든 주의 권속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예물들을 주님께서 기뻐 받아주시옵고, 그 마음의 소원을 주께서 아시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막15:33-47
마태복음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다면 마가복음은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 주님께서 나무에 달리셨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간으로 낮12시부터 오후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 이는 단순한 일식 현상이 아니다. 세상에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식은 8분이상 지속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주님께서 나무에 달리신 이 때는 유월절로서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일식이 일어날 수 없는 날이다.
우리의 보통의 시간으로는 가장 밝아야 할 시간이다. 해가 가장 밝게 비추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어둠이 임했다. 이 어둠은 무엇인가? 독생하신 아들을 나무에 달아 죽이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슬픔이 반영된 어둠이다. 독생하신 아들을 나무에 달아 죽이는 이 참담한 방법외에는 도무지 택하신 백성들의 죄책을 해결할 수 없는, 저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반영된 어둠이었다.
주님께서는 나무위에 달리셔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시편 22: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을 인용하며 외치셨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나무 위에 달려 외치셨던 가상칠언 중 하나이다. 주님은 시편22 편의 1절만을 인용하셨지만 시편 22 편 전체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언하고 있다. 시편 22:18 을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말씀하는데, 실제로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다. 또한 시편 22:7 에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라고 말씀하는데, 오늘 본문 29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나무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신 사건은 단지 그분의 신적 능력이 사라져서도 아니고, 주께서 무장한 군사들보다 약하셨기 때문도 아니다. 주님께서 사로잡히신 것과, 결박당한 채로 이리 저리 끌려다니시며 심문을 당하신 것과, 온갖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나무 위에 달리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의 의미대로 택하신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 구원하실 구원자로서의 예언된 모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성경은 저와 여러분을 가리켜 본질 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한다. 죄와 사망에 종된 자들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라고 말한다. 본문에서 주께서 당하신 모든 십자가 수모와 고난과 죽으심을 본래는 내가 당했어야 할 죄인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운명에 놓였던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노의 자녀에서 영광스러운 자녀로, 저주와 수치와 죽임을 당했어야 할 자들이 영원한 복과 생명의 상속자들이 되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길래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 받아들여졌는가? 도대체 주님께서 무슨 일을 당하셨길래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자녀된 신분이 주어졌는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주님의 외치심이다. 주님의 공생애 기간을 돌아보면 주님은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낫게 하시며, 온갖 장애를 가진 자들을 회복시키셨다.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리들에게 가르치셨다. 주님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쉴 시간이 없다. 여유가 없다. 3년 공생애 기간동안 모든 것들을 다 쏟아 부으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포기하지 않으셨다. 새벽 미명이든, 한적한 장소든 할 수 있는대로 기도의 시간을 확보하셨다.
여러분,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성부하나님을 어떻게 부르셨었나? “아바 아버지여” 라고 부르셨다. “아바” 라는 말은 우리 말 “아빠” 라는 호칭처럼 자녀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하여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늘상 주님은 기도하시며 성부하나님께 아바라고 부르시며 기도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 단 한번 성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은 순간이 있으니 바로 34절이었다. 나무에 달리신 주님께서는 성부하나님을 향해 “아바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고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신다. 왜 주님께서는 영원전부터 완전하고도 거룩한 교제 가운데 하나되셨던 성부하나님을 더이상 아바 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셔야만 했는가?
갈라디아서 3:13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지금 나무에 달리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철저한 죄인이 되셔서 공의로우신 성부 하나님과의 그 친밀한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전부터 사랑하는 독생자가 아니셨다. 택하신 백성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불같은 진노를 친히 그 몸에 담당하고 계셨다. 영원전부터 그 친밀했던 연합이 완전히 깨어졌고 단절 되셨다. 그래서 그 영적인 괴로움 가운데, 그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중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절규하시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면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이 죄 가운데 출생하고, 죄를 행하며 살아가며, 죄를 행하다가 죽는다고 표현한다. 모태에서부터 죄인이었던 우리는 삼위하나님의 그 친밀한 사귐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나무 위에 달리셔서 주님이 경험하시는 영적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이때 주님의 고통이 마치 음부에 들어가신 것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하나님과의 그 친밀했던 사귐이 끊어지고, 단절되고, 버려진 그 괴로움과 고통이 마치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당하셨던 고난과 죽으심은 본래 저와 여러분이 당했어야 했을 고난과 죽음이었다.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과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유죄판결을 내리시며, 그 죄에 대한 보응으로 영원한 진노와 심판 가운데 우리를 버리시는 것, 그것이 모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아닌가?
마땅히 버려졌어야 했을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우리 주님께서 버림 받으셨다. 주님께서 대신 버림받으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버림받지 않게 되었고, 주님께서 대신 고난 당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고난 당하지 않게 되었으며, 주님께서 대신 수치와 저주를 당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더이상 수치와 저주 당하지 않게 되었고, 주께서 대신 죽임 당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더이상 죽임 당하지 않게 되었다. 히브리서 13:5 말씀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에게 이 놀라운 구원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자.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주시기 위하여 사랑하시던 아들을 버리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영광스러운 자녀로 받아주시기 위하여 본래 영광의 아들을 수치의 아들로 내어주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들이시기 위하여 영생의 아들을 죽음 가운데 내어주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이 새벽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기도문
함께 기도하자.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찬송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를 위해 낮고 천한 이 땅 가운데 종의 몸으로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수치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나무위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하며 우리도 겸손히 그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모든 주의 종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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