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비유 3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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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는 씨부리는 비유에 대한 해석과 등불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라나는 씨 비유와 겨자씨 비유, 이 두 가지 비유를 더 말씀하신 후 비유 이야기를 마무리하십니다.
오늘 본문 2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6절은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것이다. 한 남자가 밭에 씨를 뿌렸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시시하고 진부한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왕국은 무엇입니까? 웅장하고 영광스럽고 화려한 것들이 떠오릅니다. 여러 왕가의 가문들이 이야기처럼 하나님의 왕국도 그러해야 할 것같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씨앗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너무 초라해 보여서 왕국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씨로 하나님나라를 비유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큼 우리에게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왕들이나 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것이 과연 나의 이야기처럼 들려옵니까? 아니지요. 그러나 씨 나 씨뿌리는 밭은 어떻습니까? 우리 지세포는 조금만 걸어가면 밭이 나오고, 어디서나 밭을 볼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씨에 비유하신 것은 그만큼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친근한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친근함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씨는 자라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인간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씨가 자생력을 가지고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그저 땅에 씨를 뿌리는 역할에 그칩니다. 씨가 자라는데 이 사람이 한 노력은 없습니다. 씨가 알아서 잘 다랄 뿐입니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 일반적인 농부라면 당연히 씨가 잘 자라도록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씨가 스스로 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씨부린 사람의 행위를 최소한으로 묘사합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씨뿌리는 사람이 그저 ‘사람’으로만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특별히 씨가 스스로 자라는 것을 부각시킵니다. 28절과 29절을 보십시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러렀음이라” 땅이 씨를 받은 후 열매를 맺는 과정을 차례대로 묘사합니다. 앞서 ‘씨뿌리는 비유’에서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등 씨가 어디에 뿌려졋느냐에 따라 열매를 맺느냐 맺지 않느냐가 결정되었다. 이것은 말쓰을 듣고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강조한느 것입니다. 이에 반해 ‘자라나는 씨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란 인간의 노력과 행복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949년 10월 1일 중국이 공산화가 되면서 중국내에는 기독교가 더이상 발붙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선교사들은 다 추방되었습니다. 외부에선 중국의 교회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고 나서 들어가보니 사라졌다고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선교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가정 교회를 포함하여 중국내 기독교인수는 1억명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스페인 땅은 한때 천년 가까이 이슬람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서구 기독교권이 그 땅을 수복하게 되는데요, 그때 그들을 정말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백년의 시간이 지나서 그 땅에서 기독교인들이 다 사라진줄 알았는데, 모사라베라고 해서 기독교 신앙을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놀라운 생명력을 지닙니다. 아무리 핍박이 임하고, 아무리 고통이 임하고, 박해가 끔찍해도 복음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갑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슬람이 득세하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기독교가 망할것처럼 공포심을 유발하는 말들을 듣습니다. 아닙니다. 만약 그정도로 취약한 기독교라고 생각된다면 여러분 과감히 신앙을 버리셔도 됩니다. 복음은 그 이상입니다. 아무리 핍박이 몰려오고, 불온한 사상이 밀려와도 하나님 나라는 그것을 이겨내고도 남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제가 무슬림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거기 사는 그 자체가 선교입니다. 그 선교사님의 작은 행동과 삶의 작은 모습 하나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면 결국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우리가 크게 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자라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여러분 그냥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인 답게만 살아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놀라운 은총이 있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세상의 모든 씨 가운데 가장 작은 씨인 겨자씨 한알이 땅에 뿌려진 후 자랐는데, 땅의 모든 풀보다 커졌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겨자씨는 예수님의 말씀 혹은 넓게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미미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는 나사렛 출신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면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도 변변치 않아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나 제자들은 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겨자씨처럼 작은 이들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였기에 세상 사람들 눈에 그 나라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 이들로 부터 시작한 하나님 나라가 점점 커갈 것이고,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으로 그리고 온세계로 확대되어 마침내는 가장 큰 나라가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가 겨자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통해 천국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본문은 바로 우리가 이런 꿈을 꾸어야 할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든 사과 속의 씨앗 개수를 셀 수 있습니다. 잘라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씨앗속의 사과 수를 셀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까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두실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낮춰보지 마시고,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하나의 겨자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심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날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작은 겨자씨가 자라 나무를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찾아오는 자들에게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게 해 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이루실 눈에 보이는 나라입니다. 비록 그 나라는 눈에는 작게 보이고, 약해 보이고, 희미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나라가 될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겨자씨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씨를 땅에 심으라고 하십니다. 그 씨를 땅에 심으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큰 나무가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없습니다. 말씀이 되어 그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살아가면서 여러분! 먼저 씨앗이 되십시오! 그리고 그 씨앗을 땅에 심으십시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가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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