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받는 가장 큰 복은 성령충만입니다 2024 0223 창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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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창세기 28:10–22 (NKRV)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는 복에 대한 이야기
창세기는 복에 대한 이야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의 근원. 너를 축복, 축복. 너를 저주, 저주.
이 복의 목표는 무엇?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은혜. 예수님 신약에서 선포하셨던 것. 피안의 세계에 있는 천국이 현실의 지금에 임재하게 하는 것. 그래서 하늘나라 시민이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은혜, 최고의 복.
이번주 담임목사님 설교, 왜 꼭 성령이어야 하는가? 마태복음 7:11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다는 것.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는 것. 최고의 복. 성령충만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상의 은혜요, 복이다. 성령이 내주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어떻게 된다고?
성령충만은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활성화 시킨다. 요한3서 2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됨? 성령충만. 안되는 것 같아 보이는 일이 성령충만하면 될 것 같음. 성령 충만하면 내영혼이 살아나고 내 가정이 살아나고 내 직장이 살아나고 내 교회가 살아나고 우리 대한민국이 살아나고. 할렐루야!
그래서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 역시 복의 투쟁기. 장자에게 주는 축복은 아버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복의 약속의 계승자가 됨. 야곱은 이 복의 중요성을 알았음. 아마도 리브가에게 배웠을 듯.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 때, 하늘의 복을 구하라. 세상적인, 물질적인 축복의 삶이 아니라 진짜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령충만한 삶이 되게 해달라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어쨌든, 야곱은 그 복을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받기 원했음. 들키면 끝장. 성경은 때로 하늘의 복에 대한 이 거룩한 투쟁 의식을 권장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읽어온 창세기의 맥락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선택, 복의 계승은 장남이 아니라 차남에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 당시 문화권에서는 아버지의 축복은 장자에게 가게 되어 있다. 다른 형제들보다 모든 것을 두배로 받는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복은 이스마엘/에서로 대표되는 장자가 아니라, 이삭/야곱이라는 차남 계통으로 흐르고 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일 뿐. 우리가 더 이상 논하기는 어려운 주제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도 이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야곱의 12아들 중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할 때에도 므낫세와 에브라임 중 차남이었던 에브라임에게 야곱의 오른손 축복이 내려졌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9:30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렇게 이야기하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복은 받는 사람이 누구로 꼭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이 내려주실 은혜와 복을 우리가 사모하고 바라고 추구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복, 성령충만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복을 추구하는 야곱의 인생 가운데 벧엘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복을 추구하는 야곱의 인생 가운데 벧엘은 무슨 의미인가?
오늘 본문에서는 야곱이 이 복을 추구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에서의 분노를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벧엘에 도착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함께하심, 언약을 확인받고 회복되는 장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면. 그런데 원래 이곳 이름은 루스였음. 그곳이 벧엘로 이름이 바뀐 것임. 생애 어려운 길 한복판에서 도착한 곳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변화 된 사건. 여기서 히브리어 원어적으로 우리는 그 의미를 한번더 생각해볼 수 있음.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을 지나 벧엘까지 가는 길은 약 100킬로미터 정도 됨.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다니는 그 길. 편한 길? 아님. 목적지가 애매할 때 받는 심리적 거리감. 갈 땐 멀었는데 다시 돌아올 땐 시간이 짧은 느낌 있음. 돌아올 땐 목적지가 분명하고 어디인지 알기 때문에. 출애굽한 백성들도, 처음에는 홍해를 건너고 기뻤음.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으로 갈 생각에 기뻤음. 그런데 3일 정도 광야 길을 걸어보니, 이거 예상과 다르거든. 야곱도 마찬가지. 어쨌든 형의 살해위협을 피해 라반이 있는 하란까지 가긴 가야 되는데, 3일을 갔는데도 여전히 아직 가나안 땅. 고통과 절망,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에 도착한 곳. 루스. 창세기 28:11“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세기 28:19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거기가 목적지가 아니었음. 해가 지고 지쳐서 그냥 들어간 곳. 형의 위협을 피해.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심. 그리고 진정한 위로를 얻게 됨. 창세기 28:15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라는 확신이 생김. 그래서 야곱이 잠에서 깨어 유숙했던 이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의 집이라 말하게 됨.
벧엘. 하나님의 집. 원래는 루스. 루스는 히브리어로 루즈. 당시 야곱이 해가져서 무작정 도착했던 곳의 성읍 이름. 이 루즈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떠나다, 라는 의미가 나옴. 즉 루즈는 떠나는, 떠도는 사람들의 도피처로서의 의미를 지녔음. 우리도 이런 도피처를 찾아다닐 때가 있음.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 그러한 길 가운데 지쳐 쓰러져 넘어지는 곳. 왜 이곳에 넘어졌는지, 이 멈춤이 인생의 실패라고 느껴질 때가 있음. 야곱은 그 돌베개를 베고 자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구절 몇절이 후루룩 넘어가니까 그런가보다 하는데, 천천히 읽어보면, 야곱의 심정으로 이 구절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복을 추구하고, 투쟁했는데, 이제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 복음을 선택했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복음을 지키려고 했는데, 사자 밥이 됨.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 복음을 지키고 세상 속에서 구별되어 살아가려고 하니, 미움을 삼.
그러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을 가장 만날만한 때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경험할 순간이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은혜가 찾아온다.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엄청난 능력이 되어 우리를 위로하신다. 창세기 28:15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어느 때까지 나와 함께 계시는가?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시간까지. 내 생각과 기한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나의 인생이 있음을 기억하라. 야곱은 그 유숙한 곳, 루즈가 도피처였고, 그냥 거기서 다 포기하고 싶었을 것.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곳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된 것임.
우리 인생의 루스가 있는가? 그곳 벧엘이 되도록! 함께 기도하자. 내 인생의 벧엘. 15절 말씀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