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3 금요기도회: 신명기 19:1-13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교제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기억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기도회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큰 기쁨이 있는 기도회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 19:1-13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19:1–13 NKRV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고 싶듯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교제하는 수단입니다. 오늘 금요기도회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추운 날씨 속에서도 따뜻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시간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인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 때 어떤 규례들을 지켜야하는지 말씀하시는 것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바로 도피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본문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왜 도피성을 세워야하는지, 그리고 도피성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하시는지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이 도피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아직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인데요. 이스라엘이 정복할 이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인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말씀하십니다.
1절부터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라고 말씀하고,
또 2절을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그 다음 3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지금 정복할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땅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각 지파에서 남자를 차출하여 군대를 형성하고, 그 군대 이끌고 전쟁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원주민들을 멸절시키지만, 이 모든 과정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직접 정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이라며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임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착하게 된다면, 그 땅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규칙들을 지키면서 살아야 할지 서로가 의논하면서 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셨으니 이스라엘은 누구의 규칙을 따라야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원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규칙대로 살아야하고, 그 규칙 중 하나로 오늘 본문은 정복한 성읍들 중 몇몇을 도피성으로 구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구별할 것을 명령하시는데요. 오늘 본문에는 나와있진 않지만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도피성으로 삼을 성읍을 구별하셨습니다. 신명기 4:41-43 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신명기 4:41–43 NKRV
그 때에 모세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바로 베셀과 길르앗 라못, 그리고 바산 골란으로 북쪽과 중앙, 그리고 남쪽에 있는 이 세 성읍입니다. 요단강 동쪽에 있는 이 세 개의 성을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으로 구별하십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보시면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치 이 세 지파만을 위한 것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 성은 누구든지 도피할 때 용이하도록 이 세 성읍을 구별한 겁니다. 오늘 본문의 3절을 보시면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거리에 따라서 나누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도피성으로 도망가려고 하는데, 그 거리가 멀면 금방 붙잡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근접하여 금방 갈 수 있는 곳에 두어야 얼른 도망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 성읍은 거리에 따라서 구별된 도피성들입니다.
그리고 9절에는 영토를 확장하게 되면 요단강 서쪽에서는 이 세 성읍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추가로 세 곳의 도피성을 더 세울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곳은 여호수아 20:7 에 나와있습니다.
여호수아 20:7 NKRV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바로 갈릴리 게데스와 세겜, 그리고 헤브론을 요단강 서쪽에 있는 도피성으로 구별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총 6개의 성읍을 도피성으로 구별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별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도피성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줘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도피성을 왜 구별하셨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3절 끝 부분부터 보시면,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바로 부지 중에 의도치 않게 살인한 자, 즉 과실치사로 죽인 사람이 복수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피성을 만드셨습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 범죄자가 생기면 이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감옥을 만들고, 범죄에 따라 재판을 하여 형량을 부과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감옥이 없어 범죄자를 격리시킬 수 없기 때문에 살인을 당한 가족이나 같은 씨족의 친척이 살인에 대한 복수로 사회에서 범죄가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십계명의 제6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고, 출애굽기 21:12 에서
출애굽기 21:12 NKRV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라고 반드시 살인한 자를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9:6 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주 존귀해서 피는 피로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살인자가 원한도 없고 의도치 않게 살해를 했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복수를 당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살인으로부터 무죄한 사람과 그리고 무죄한만큼 중요한, 복수를 위해 쫓는 사람이 잘못된 보복 살인을 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도피성이 필요했습니다. 6절을 보시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살인을 당하면 진실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람은 복수심에 불타오르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무죄한 사람을 보호하시기 위해 도피성을 만드시기도 했지만, 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통해 복수심에 불타올라 자칫 무죄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으로 죄를 막고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해 도피성을 만드셨습니다. 복수심에 너무나 쉽게 불타오르는 연약한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 역사에서 사람들을 부당하게 체포해 감옥에 넣었지만, 이 사람들이 나중에 무죄로 밝혀진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부당하게 체포한 이유가 테러리스트들의 난동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즉각적인 결과를 내놓으라며 영국 경찰을 압박함으로 경찰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에 넣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분노에 사로 잡히면, 죄를 너무나도 쉽게 지어버립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고려하셔서 도피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6절 끝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피성까지 가는 길이 멀지 않도록 북쪽과 중앙, 그리고 남쪽에 하나씩 두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원한이 있어 고의적으로 살해한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 죄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처벌을 받아야하는 살인자가 도피성에 들어가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는 것이 합당한 사람 외에 고의적으로 살해하여 도피성에 있는 것이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 생길 수 있는 것에 대하여 11-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11절에서 “엎드려”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바로 주일에 목사님께서 사무엘하 설교하신 것처럼 의도적으로 죽이기위해 사자와 같이 웅크려서 벼르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원한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죽인 살인자가 도피성에 있다면 장로들, 즉 지파의 지도자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을 도피성에서 끌어내어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있는 고엘이라 부르는 피의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의도치 않게 죽인 사람과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잘못 보복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보호하시지만, 의도적으로 살해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죽인 것이니 엄격하게 처벌을 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13절에 따르면, 사람이 연민의 감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지 말고 반드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죄를 끔찍히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피성을 구별할 것을 명령하시는 오늘 본문은 살인이 얼마나 엄중한 죄인지, 그리고 엄중하지만 무죄한 사람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고 보호해야 함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살인과 거리가 먼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에서 칼로 상대방을 찌르거나 다른 어떤 흉기를 가지고 살해하신 분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도피성을 따로 구별해서 두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이때는 그랬지 라고 넘기기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이웃을 고의적으로 살인한 살인자들입니다. 마태복음 5:21-22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21–22 NKRV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살인에 대한 규정을 육체적 살인 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화를 내고, 형제를 욕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3:15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1서 3:15 NKRV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바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육체적 살인만 하지 않으면 살인자가 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세상의 법도 육체적인 살인만 하지 않으면 살인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형제에게 화를 내고, 형제를 욕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모두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육체적 살인한 사람은 더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우리 모두 다 살인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과 형제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화를 냅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살인을 행한 전과자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무고한 자가 들어갈 수 있는 도피성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도피성에 들어가면 끌려나와 살인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이런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단 한번도 형제를 미워함으로 살인자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형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형 선고를 받아야 마땅한 죄인인 인간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며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만들었으니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인간이 치러야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처벌을 우리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처벌을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에게로 다 돌리셨습니다. 자신에게로 다 돌리시고 긍휼함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께서는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입니다.
누가복음 23:34 NKRV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바로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자들이 무고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을 향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살인죄를 그리스도께서 다 가지고 가심으로 우리는 무고한 자가 되어 도피성 그 자체가 되신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분은 형제를 미워하고, 욕하고, 형제에게 화내어 살인죄를 저지른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이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승리하시고 우리를 무고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고한 나에게 이유없이 해를 끼치는 형제가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 우리는 그 형제에게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그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손양원 목사님 아닙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두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여순 사건 때 이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였고, 특히 억울하게 죽었으니 어떻겠습니까? 엄청난 슬픔과 비통함이 찾아왔을 겁니다. 그리고 당장 찾아가 복수하고 싶을 겁니다. 복수한다고 해서 뭐라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순 반란이 진압되고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안재선이라는 사람이 잡혔다는 소식을 목사님께서 들으시고 밤새 울며 통곡하시면서 기도하시고 교회를 나오시면서 이렇게 중얼거리셨다고 합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에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바로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살인자를 향해 긍휼의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계셨기에 목사님의 마음에 이런 긍휼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살인자를 용서하고, 심지어 자신의 양아들로 삼고 이 살인자의 아들은 목사가 되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도피성을 오늘 본문에서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도피성은 무고한 사람을 위해 만드신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도피성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살인자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살인자인 우리를 용서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가능합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형제를 용서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살인의 죄를 짓지 않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도피성을 마련하셨습니다.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도피성을 마련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제를 마음 속으로 살인하는 살인자들입니다. 우리는 도피성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가져가신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자신 안에서 무죄하다고 선언해주심으로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가져가심으로 무죄 선언해주신 그리스도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또한 이 그리스도께서 계심으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들을 미워하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