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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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사사기 4:4–10 NKRV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사랑합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여러분은 3월 8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한다. 1908년 미국 뉴욕 루트거스 광장에서 1만 5천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울분을 가지고 거리에 나오게 되었다. 여성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었고 시민으로서 선거권도 가질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던 수많은 여성들은 1908년 3월 8일에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난다. 여성은 늘 억압받는 존재였다. 사유재산제도나 가부장제도가 사회에 정착되어 갈수록 더더욱 억압은 심해져갔다. 여성들의 지위는 점차 낮아졌고, 여상만은 권리에서 예외였다. 이에 여성들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여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과 함께 여성운동이 근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지위와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갖가지 제도의 변혁을 요구하기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가정을 돌봐야한다는 인식으로 국민으로 속하지 못했던 참정권을 얻기 위해 국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뉴질랜드가 첫 번째로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여성참정권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캐나다는 1918년, 미국은 1920년으로 점점 국가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제도화했다. 시민대혁명을 이끌 정도의 민주적이라고 보는 프랑스는 이보다 더 늦게 1944년되고 나서야 여성참정권이 인정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계기로 1948년 제정헌법에서 처음으로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인정됨으로써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여성의 인권이 세상에 인정된지는 100년도 안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기준으로만 봐도 1,900년 만에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여성들을 얼마나 더 약자로 살았을까 감히 상상을 하게 된다.
오늘 말씀을 보게되면 에훗이 죽고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이번에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겨준다.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은 시스라였고, 그는 철 병거 900대가 있었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전투기, 탱크가 900대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야빈 왕이 이스라엘을 20년 동안 압제했다. 이전에는 메소포타미아에게 8년, 다음으로 모압에게 18년, 이번에는 20년이니 점점 징계의 수위가 강해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야빈에게 당하는 학대가 심해지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그리하여 여 선지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신다. 그 당시 사회에서 여자가 사사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을 획기적인 일이다. 항상 남성중심으로 리더쉽을 이끌어갔던 이스라엘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여선지자이면서 재판도 한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학대를 많이 받았으면 가나안 사람들을 마주칠까봐 큰 길을 두고 작은 길로 다녔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에 용기 있는 남자들, 강력하게 이끌어갈 지도자들이 없었다. 그래서 드보라가 자신이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말한다.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서 여호와의 명령을 전해준다. 그에게 이스라엘에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군사 만 명을 다볼 산에서 야빈의 철 병거들과 싸우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승리의 약속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자 가기 무서운 바락은 드보라가 가면 가고 그녀가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겁먹은 하남자스러운 바락의 이야기를 들은 드보라는 같이 갈 것을 약속한다. 이 일로 바락은 영광을 얻지 못하고 한 여인이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렇게 바락이 시스라의 철 병거와 싸운다. 하나님이 시스라의 병거에 큰 혼란을 주셨고, 결국 시스라는 패하여 도망가게 되었다. 시스라가 야빈 왕과 평화 조약을 맺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도착한다. 야엘이 시스라를 맞이하고 영접한다. 물을 요청하는 시스라에게 야엘은 우유를 주어 마시게 한다. 마치 우유에 수면제가 있는 것처럼 시스라가 꿀잠을 자게되자 야엘이 망치와 천막의 말뚝을 가지고 와서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박았다.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여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정말 드보라의 예언대로 야엘이 시스라를 죽여서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이 본문의 장면들을 묵상해봤을 때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전세가 밀리고 있을 때 아이언맨의 아내 페퍼의 등장으로 수많은 여성 히어로들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장면들이 떠올리게 되는 쾌감을 얻는 기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여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훨씬 전 고대 이스라엘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약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한 여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고린도전서 1:25 NKRV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도바울이 고백하듯이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한 것보다 뛰어나다. 사사시대에 지파들 사이의 결속력은 강하지 않았다. 왕과 같은 강력한 통일 정부가 없다 보니 각 지파들이 자신들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드보라 시대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야빈 왕의 철 병거와 전쟁을 할 때, 에브라임 지파, 베냐민,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지파가 드보라와 함께한다. 그러나 길르앗, 단과 아셀 지파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 나아가 드보라는 메로스라는 성읍을 저주한다. 메로스의 주민은 여호와를 도우러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사기 5:23 NKRV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이 말씀만 보아도 드보라가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느껴지는가? 드보라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쟁이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전쟁에 참여한 것은 여호와를 돕는 것이며 참여하지 않은 것은 여호와를 돕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지파들 사이의 결속력이 아주 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사사 드보라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의 메시지가 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항상 약자의 편에 계시는 분이시다. 마태복음의 9장 10절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때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더불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리새인이 이 모습을 보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째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하고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냐”고 말이다. 예수님은 들으시고 말씀하시길 “건강한 사람은 의사가 필요 없으나, 환자들은 의사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옛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의 지위가 낮아서 약자로 바라봤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능력에 따라서 여성 또한 남성과 동일하게 임금을 받고 있고, 조선시대와 완전히 다르게 현대에서는 여성도 커리어를 쌓으면서 남성보다 경제력이 강한 경우도 많기에 여성을 약자라고 볼 수 없는 시대이다. 성경에서 가리키는 약자란 무엇인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날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됨을 인정하고 주님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인생에 딱히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며 죄인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심 완벽해지고 싶어하고, 완벽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다. 정말 재밌는 것은 드보라가 당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약자였다면, 우리 하나님은 날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신다는 것이다.
어느 날 찬양을 듣다가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라는 찬양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울리게 되었다. 아직 멜로디가 익숙해지는 중이라 불러드리기 어렵지만 가사의 내용을 잘 들어보기 바란다.
참 고마운 친구, 나의 예수님. 나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으나 때론 낙심해도 포기치 않음은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기에. 내 삶의 동행자 나의 예수님. 나는 기대가 없는 어린 나귀 같으나 늘 쓰러져도 다시 일어남도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기에.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 나의 실패는 나의 간증이요. 나의 아픔은 나의 고백이니 그 부르심 따라 내가 걸어갑니다. 나의 가난함은 나의 상급이요. 나 미련함은 나의 자랑이요. 나의 쓰러짐이 나의 고백이니 그 부르심 따라 내가 걸어갑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의 약함, 실패, 아픔, 가난함, 미련한, 넘어지고 쓰러진 일이 아주 부끄러운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안에, 예수의 생명 안에 있을 때 오히려 나의 약함이 하나님에게는 강함을 나타내기에 가장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싸구려 바이올린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연주하냐에 따라서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누구에게 붙들린 인생인가에 따라서 내 인생의 운전대를 누구에게 맡기는가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내 삶에 두려움, 근심, 걱정이 가득하면 어떻게 예수님께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 붙들린 인생이 되어지기 소망한다. (큰 소리로) 예수님께 완전히 맡겨드리기 소망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지기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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