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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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요나 2:1-10
“하나님 중심의 기도”
2024. 2. 2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반드시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를 해야 돼요.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 중심의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죠.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78문에 보면, 기도에 대해서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데요. 화면을 띄워주시겠습니까? 자, 기도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바쳐 올리는 것인 바 우리 죄를 자백함과 그의 긍휼을 감사히 인정하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성령의 도우심, 그리고 우리의 소원을 바칠 대상, 죄 자백, 감사. 이런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기도가 되는 겁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 중에 하나만 빠져도 기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이것은 1600년대에 영국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정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요나 시대의 기도와는 차이가 있죠. 요나 때는 그리스도의 이름도 없고 성령의 도우심도 없었거든요.
그러나 그 기도의 형태는 동일합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기도의 형태가 같아요. 기도는 반드시 동일하게 세 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곧 기도를 받는 대상과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자세입니다. 이 세 가지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오늘날이나 동일해요.
여러분,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죠. 두번째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우리 자신의 소원을 위해서 기도해요.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과 복종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3요소입니다. 기도의 대상, 기도의 내용, 기도의 자세. 그런데 저는 이 3요소 가운데 두번째와 세번째, 기도의 내용과 자세에 대해서 오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기도의 내용, 기도의 자세.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요나가 하는 기도의 내용과 자세에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서, 요나의 기도 내용과 자세가 틀렸어요.
기도의 대상은 맞아요. 그런데 내용과 자세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하나님 중심의 기도’가 아니라 ‘나 중심의 기도’가 되고 말았어요. 과연 무엇이 어떻게 틀렸기에 나 중심의 기도가 되었는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1절 말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자, 여기 보면 분명하게 기도의 대상이 있죠.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는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했어요. 기도의 삼요소 중 첫번째가 충족이 된 겁니다. 기도의 대상.
그렇다면 두번째로, 요나는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2절을 봐 볼까요?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기도의 시작이 어떻습니까? 내가 고난중에 부르짖었고, 그 부르짖음을 주께서 들으셨다는 고백으로 시작을 하죠.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다.” 내 간구를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해요. 뒤에 보니까,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이처럼 두 번에 걸쳐서 요나가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고백하고 있어요. 이것은 요나가 지금 본문 2장의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기도를 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바닷속 깊이 빠졌을 때 먼저 한 번 기도를 한 거예요. 물고기에게 삼켜지기 전에. 그때 뭐라고 기도를 했을까요? 나를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겠죠. 나를 이 스올의 뱃속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했을 겁니다.
바로 그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물고기를 통해 요나를 구하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어요. 요나서 2장의 기도가 바로 이 물고기 뱃속에서 하는 기돕니다.
저 깊은 바닷속, ‘스올의 뱃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제는 요나를 ‘물고기의 뱃속’으로 옮겨주신 겁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여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거예요.
우리는 보통 요나서 2장을 감사시로 분류합니다. 구원하심에 감사, 응답하심에 감사. 요나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그런데, 감사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가 있어요. 기도의 삼요소 두 번째, 기도의 내용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가 3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3절을 우리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여러분, 지금 3절에서 문제가 뭐겠습니까? 저 빨간 글씨가 문제죠.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이게 잘못된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셨습니까? 던진 것은 선원들이죠. 선원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졌어요. 하지만 던져지도록 만든 것은 누구예요? 요납니다. 요나가 자기 스스로 바다에 던져지도록 상황을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 기도는 사실을 왜곡하는 기돕니다. 실제 있었던 일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어요. 본래는 ‘하나님이 나를 던지셨다’, 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라고 해야 맞아요.
하나님이 풍랑을 일으키시긴 했지만, 바다에 빠지라고 풍랑을 일으키신 게 아니었어요. 정신차리고 회개하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기어이 바다에 던져진 거예요. 모든 책임은 요나에게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 책임을 교묘하게 하나님께 돌리고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던지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스올의 뱃속으로 집어넣으셨습니다. 이렇게 사실과 다른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밑에 4절도 보면, 동일한 잘못을 하고 있는데요. 4절에도 동일하게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4절에 보니까,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여기도 요나가 자신을 피해자로 말하고 있죠.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여러분, 하나님이 요나를 쫓아내셨습니까? 요나가 자기 발로 도망쳤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마자 일어나서 도망쳤어요. 그런데 이 사실 역시도 왜곡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쫓겨난 거다. 나는 피해자다. 나는 안 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하나님 등살에 못이겨서 여기까지 온 거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도의 내용이 완전히 잘못됐어요. 요나의 이 기도를 우리가 ‘요나의 감사시’로 볼 게 아닙니다. ‘요나의 거짓진술시’로 보는 게 맞아요. 지금 거짓진술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를 던지셨고, 하나님이 나를 쫓아내셨다. 새빨간 거짓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잘못된 기도가 사실은 정말 정당하고 정말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왜곡된 기도가 아니라 정말로 합당한 기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딱 하나의 방법. 그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2절과 3절 사이에, 한 가지의 내용을 집어넣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던지셨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이 내용을 집어넣으면 돼요. 여러분,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이겠습니까? 바로 “죄 자백”의 내용입니다. 내 죄를 자백하는 거예요. 다짜고짜 하나님이 나를 던지셨다고 말하기 전에, 왜 하나님이 나를 던지셔야만 했는가, 나의 죄를 먼저 자백한다면, 요나서 2장은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감사기도, 완벽한 감사시가 됩니다.
자, 우리가 죄 자백의 내용을 집어넣어서 3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제가 3절 앞에 집어넣어 봤는데요. 그러면 어떻게 기도가 바뀌게 되는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였더니)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어떻습니까? 그냥 앞에 짧게 한 마디 집어넣었을 뿐인데,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죠. 내가 잘못한 것을 먼저 자백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던지신 것이 정당한 일이 되었어요. 내가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주께서 나를 던지셨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정당한 기도가 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나의 실제 기도에는 바로 이 “죄 자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이 나를 바다에 던지셨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나 중심의 기도’의 특징입니다. 내가 유리한 쪽으로 기도를 해요. 내 잘못, 내 죄, 이런 것은 빼버리고, 교묘하게 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기도.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무작정 나의 상황만 놓고 부르짖는 기도.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며 해석하는 기도. 이런 기도가 바로 ‘나 중심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지금 요나의 기도가 그래요. 나 중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삼요소 중 두 번째, 기도의 내용이 잘못된 그런 기도인 것입니다.
이어서 기도의 삼요소 세번째,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기도의 자세. 여러분, 기도는 어떤 자세로 해야 될까요? 여기서 말하는 자세는 육신의 자세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무릎을 꿇고 해야 된다거나, 앉아서 기도해야 된다거나, 그런 신체적인 자세가 아니라, 마음자세를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서 가르쳐주고 있는데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무답 185문에 이렇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엄숙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빈궁함과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하며, 감사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해와 믿음, 성실, 열정, 사랑, 인애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에 겸손히 복종함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엄숙한 이해를 갖고 기도해야 돼요.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깊이 깨닫고 경외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더러운 죄인인가를 깨닫고 통회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그 앞에서 겸손히 철저하게 복종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이 자세 그대로 지키면서 기도하고 계셔요? 사실 이렇게 기도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도 바쁜데, 어떻게 이런 것 하나하나 지키면서 기도를 하겠어요?
다 지킬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이 가운데 두 가지를 지키면서 기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것은 못 지켜도 이 두 가지는 우리가 반드시 지키자. 첫번째는 나의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죄 자백, 회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도하면서 회개해야 돼요. 내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구하면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복종의 기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르겠습니다. 나에게 주신 고난, 나에게 주신 사명,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 말씀대로 복종하겠습니다. 이런 철저한 복종, 철저한 순종의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기도의 핵심적인 자세입니다. 우리가 요나의 기도를 보면, 이 중에 복종의 자세는 있어요. 오늘 본문 9절에 가서 보면, 복종하는 기도가 나와요. 9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9절 시작,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이 기도에 보면,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다는 다짐이 나오는데요. 우리는 그 서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서원 안에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지키겠다는 맹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가 끝나고 나중에 육지로 나가게 됐을 때, 그가 사명을 지키기 위해 니느웨로 가기 때문에.
서원을 갚겠다고 기도하고 나서 사명을 지켰어요. 그러면 그 서원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사명에 대한 서원이지 않았겠어요? 내가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잘 수행하겠다는 그런 서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나의 기도 자세에 복종의 자세가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내가 죽어도 하기기 싫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겠다는 철저한 복종. 바로 그 자세가 요나의 기도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요나의 기도에 복종은 들어있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어요. 바로 첫번재 요소, ’회개’가 빠져 있습니다. 회개. 내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자세가 빠져 있어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요나는 자기가 바다에 던져진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기도를 했죠. 다짜고짜 하나님이 나를 바다에 던지셔서 내가 고난에 빠졌고, 그 고난 중에 부르짖었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전에 자기 죄를 자백하는 한 마디만 들어있었어도 이 기도는 완전한 기도가 됐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없었어요. 죄를 자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내 죄 때문에 바다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던지신 것이다. 내가 스스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쫓아내신 것이다. 회개가 없기 때문에 기도가 시작부터 이렇게 엇나간 겁니다.
여러분, 회개가 없는 기도는요. 정말로 위험한 기도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요나의 기도가 회개 없이 복종만 있는 기도거든요. 이 기도가 정말 위험합니다. 왜 위험한지를 요나서 4장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줘요. 우리가 나중에 4장을 가서 볼 텐데요. 4장이 어떤 내용입니까? 하나님 명령을 잘 수행한 뒤에 갑자기 요나가 하나님께 화를 내는 내용이잖아요.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나를 죽여주십시오. 이러면서 하나님께 화를 내요. 4장 1절을 봐 볼까요? 4장 1절에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러분, 이것이 회개 없이 복종만 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니까 따르기는 따라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회개가 없기 때문에 그 마음에는 여전히 쓴뿌리가 가득합니다. 회개하여 그 악독을 털어버리고 복종해야 하는데, 악한 마음 그대로 복종을 하니까 겉으로는 복종하면서도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지는 겁니다.
그래서 명령을 수행하고 난 뒤에, 참고 참았던 것이 빵 터지는 거예요. 복종하는 동안에는 참았어요. 하지만 다 끝나고 나니까 쓴뿌리가 터져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 없이 복종만 있는 기도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 중심의 기도’가 위험한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나 중심의 기도’를 많이 해봤자 소용 없는 거예요. 한 걸음을 가더라도 정확한 방향을 향해서 가야지, 방향이 잘못 됐는지 10키로 20키로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기도를 한 번을 하더라도, 기도를 1분을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나의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구해야 돼요. 우리가 하나님 뜻에 거역했던 것,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쳤던 것,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그 모든 것을 자백하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으리라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안에 쓴뿌리를 뽑아버릴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래야만 온전하게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요나가 먼저 회개를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쓴뿌리를 다 뽑아버리고 온전하게 감사와 기쁨으로 명령을 순종하고 따랐다면, 그랬다면 요나서 4장의 내용이 지금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요?
요나서 4장 1절이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요나가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겠습니까? 만약에 그렇게만 됐더라면, 그의 고향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당하는 역사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를 아끼시고, 그들을 들어 사용하심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어쩌면 요나의 그 한 번의 기도가 그의 속사람을 바꾸고, 그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의 민족을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가 회개를 하기만 했더라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뉘우치기만 했더라면. 쓴뿌리를 뽑아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더라면.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었으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산을 들어서 옮길 수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반드시 회개가 먼저입니다. 반드시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나의 것을 구하기 전에, 나 중심으로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것,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 할 때에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시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한 번을 기도하더라도, 1분을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크고 놀라운 응답의 은혜를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