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다양성02_안식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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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과거의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념일을 만들어 지킵니다.
개인에게 있어 가장 의미 깊은 사건은 생일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해마다 자신의 생일을 기념합니다.
출생 이후 가장 의미 깊은 사건은 결혼입니다. 사람들은 결혼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결혼기념일을 가집니다.
학교는 개교기념일, 회사는 창사기념일, 국가는 건국기념일을 지킵니다.
우리 나라에는 각종 기념일이 33일이나 됩니다(?).
국가에 있어 가장 기쁜 날은 언제일까요?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광복절, 헌법을 제정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 단군이 개국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 세종대왕이 한민족의 고유 문자인 한글을 창제한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을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과 단체와 국가를 초월하여 전 인류가 기념하고 특별히 축하해야 할 사건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본론
본론
안식일의 의미
그러므로 온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 사건을 기념하여 ‘창조 기념일’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기념일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또 한 가지 구원받은 백성이 특별히 기념하고 축하해야 할 기념일은 바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날입니다. 구원은 곧 죄와 죽음과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의 독립 기념일, 해방 기념일 역시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무엇을 기념하며 경축하는 날일까요?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창조 기념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기념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쉬신 것은 6일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하나님의 우주 창조 완성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쉬셨다는 것은 6일 동안의 창조 사역에 고단하거나 피곤하셔서 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6일 동안의 창조가 완성되었다는 증표입니다. 즉 창조가 다 완성되었기 때문에 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원 기념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원 기념일입니다. 십계명의 제 4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중에서 가장 독특한 계명입니다. 시내 산에서 주신 십계명과 모압 평지에서 주신 십계명은 내용이 기본적으로 동일하지만, 제 4계명 만큼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두 본문을 비교해 보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부분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는 다르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 기념일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구원 기념일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창조 기념일에서 구원 기념일로 바뀌었습니다.
안식일 준수의 의미가 창조에서 구원으로 바뀐 것은 창조와 구원 사이에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죄를 짓지 않았다면 안식일은 창조 기념일로만 존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창조 기념일만이 아니라 구원 기념일로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창조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지만,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감사와 찬양이 특별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의 국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진 사건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른 민조과 구별시켜 주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안식일은 선택받은 백성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창조와 구원을 기념하는 하나님의 창조 기념일이요 구원 기념일입니다.
타락한 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특별히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백성, 즉 하나님의 구원받은 언약 백성인 교회만이 바르게 지킬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그런데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 교회였던 이스라엘 백성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인 제칠일, 즉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인 신약 교회는 한 주간의 첫째 날, 즉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요?
첫째,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뀐 것은 이미 구약 성경의 제4계명에 예표되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는 창조기념일, 신명기는 구원기념일입니다. 이것은 중간에 인간의 타락 사건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구원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 출애굽 사건으로 예표되었던 것이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신 날이 바로 구약의 안식일 후 첫날, 즉 주간의 첫날인 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간의 첫날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진정한 구원 기념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간의 첫날인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간의 첫날인 ‘주일’에 모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을 ‘주의 날’ 즉 ‘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명백하게 토요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라고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성도들이 토요일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예배의 날로 모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구절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초대교회가 정규적으로 모여 예배를 드린 날이 주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주일에 모여 예배드린 장면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주일에 정규적으로 예배를 드렸음을 이렇게 보여 줍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자신이 밧모 섬에서 예수님께 계시를 받은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처럼 ‘주일’은 예배의 날로써 기독교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장로교 신앙의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7절에는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연속성은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거룩히 지킵니다. 불연속성은 구약은 주간의 마지막날, 신약은 주간의 첫 날로 지킵니다. 원리 면에서 동일합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분리 혹은 구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특별하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낸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안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6일 동안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6일 동안 부지런히 일을 함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하시고, 7일째에 쉬심으로 한 주간 6일 노동과 1일 휴식의 원리를 주셨습니다.
안식을 잘 지키는 원리는 ‘6일 일하고 1일 쉬는 것’입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소명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놀고 먹도록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피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개발하고 관리하면서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정치와 경제 활동을 하며, 사회의 제도와 조직을 만들어 나가며,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모두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께서도 일을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신약의 사도 바울은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게으르게 사는 데살로니가성도를 향하여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은 타락 때문에 변질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노동이 기쁨이 아니라 수고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의 특권이며 책임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인간의 노동 자체도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게 됩니다.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6일 동안 부지런히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합니다.
안식일에는 6일 동안 하던 일을 중지함
안식일은 하룻동안 일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나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날입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일로부터의 ‘휴식’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의 휴식의 의미
육체의 휴식
안식일의 휴식은 ‘육체의 휴식’을 의미합니다. 사람에게는 일도 필요하지만 휴식도 필요합니다. 휴식 없이 계속 일을 하게 되면 결국 병이 나게 됩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 가정 주부도 하루는 쉬어야 하고 학생들은 학교의 공부라는 일로부터 휴식이 필요합니다.
안식일의 휴식에는 부모만이 아니라 자녀들도 참여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온 가족이 함께 쉬는 날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쉼을 누리는 가족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들이 안식일에 함께 휴식하는 것은 고대에도 필요했지만 현대 생활에는 더욱 필요한 요소입니다.
현대 생활은 바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부모는 일주일 동안 직장일이나 가정일로 분주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교제를 나눌 시간이 부족합니다.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의 특징을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쉼 없이 바쁘고 야근공화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모든 가족이 각자 자신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 전체가 함께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안식일은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의 날이 필요함을 말해 줍니다. 안식일의 휴식에는 주인만이 아니라 종들도 참여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쉬게 하지 않으면 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인은 안식일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종 또한 휴식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안식일은 노동자의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들도 휴식하게 해야 합니다.
피로사회, 한병철 교수
과거에는 부정사회로서 ‘해서는 안 된다’를 강조함으로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습니다.
지금은 성과사회로서 ‘할 수 있다’는 긍정을 강조합니다.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좌절로 인한 우울증 환자, 낙오자를 낳습니다. 우리가 가해자요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과잉활동과 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대안으로 둡니다.
성공에 대한 우상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안식, 즉 예배
더 나아가 안식일의 휴식은 ‘영적인 안식’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의 휴식은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6일 동안 생계를 위한 일을 한다면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곧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을 합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안식일은 ‘성회’로 모이는 날입니다. ‘성회’라는 것은 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창조의 은혜를 감사한다는 것은 나의 생계가 내 힘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한다는 것은 나의 도덕적인 삶이나 종교적인 삶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임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안식, 곧 예배입니다.
안식일에 ‘육체적 안식’을 취하는 것은 사실 ‘영적인 안식’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안식은 바로 우리의 자연적인 생명과 영적인 생명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알고 감사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안식은 전적으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원리입니다.
영적 안식은 이 세상에서 먹고 살아가는 것과 내가 죄 용서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기가 구원을 이루려는 일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전쟁이 그치고 땅을 분배함으로 안식을 주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완성되지 못하고 완전한 안식을 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며,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우리는 매 주일 안식일을 통하여 안식을 맛봅니다.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를 경계하며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결론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
육체적 휴식의 의미만을 강조
안식일을 ‘육적 안식’의 의미만을 강조하고 ‘영적 안식’의 의미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 가운데 무엇이 일이 되고, 일이 되지 않는지를 논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랍비들은 일을 서른아홉 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일을 다시 여섯 가지의 구체적인 일들로 나누었습니다.
예를 들면 추수하는 일은 포도나무 가지치기, 포도 따기, 올리브 모으기, 전지하기, 나무 뽑기, 무화과 따기라는 구체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규정을 지키는 것은 엄청나게 까다로운 세부 규칙을 지켜야 하는 무거운 부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일로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도 지키지 못할 뿐더러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서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태도를 집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이 전통을 어기는 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안식일의 영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일하지 말라’는 진정한 의미가 참된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의 영적 의미만을 강조
안식일의 영적 의미만을 강조한 채 육체적 안식의 의미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영적인 의미는 ‘예배’에 있으니 다른 일은 평상시처럼 해도 좋다는 식으로 안식일을 다른 날과 아무런 차별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식의 의미만 생각하면 되지 꼭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나?
안식일은 적극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기는 하지만, 문자적으로도 기존의 6일 동안 하던 일에서 ‘육적인 안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6일동안의 생업으로부터 쉬지 않으면 조만간 영적인 안식을 누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육적인 안식은 영적인 안식을 위한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일상의 일로부터의 휴식은 예외적인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성경에도 안식일에 가축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나 소가 웅덩이에 빠졌을 때 끄집어 내는 일 등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것이나 소방관들이 진화 활동을 벌이는 일과 같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것과 같이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병원을 방문하거나 굶주리는 가정에 먹을 것을 준비하여 방문하는 등의 선행을 말합니다.
4계명을 지키는 것은 5계명의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부모님의 형편을 살피는 일 뿐 아니라 손 위의 사람을 존경하지 못하게 하고 손 아랫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계명의 살인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일-과로로 인한 각종 질병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7계명의 간음하지 않는 일은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물질 외에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함으로 남편으로부터 받아야 할 영적인 필요, 정서적인 대화가 사라지면서 불신이 생겨나고 간음하는 마음이 자라는 모판이 되게 합니다. 남편은 직장내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과 친밀감을 공유하고 아내는 집안 일을 하면서 외로움으로 인해 친밀감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일과 연결됩니다. 죽도록 일하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안식할 수 있는 잉여 재산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도둑질과 연결됩니다.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하셨는데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아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거짓을 꽤함으로 범죄합니다.
결국 이것은 돈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우상 숭배로 이어져 1-3계명을 어기게 합니다.
영적 휴식과 육체적 휴식 사이의 균형과 우선순위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안식일을 ‘예배와 휴식’의 날로 보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배’와 ‘휴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배는 휴식보다 더 우선적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휴양지에 가서 쉬더라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안에서 영혼의 깊은 쉼을 얻지 못하면 진정으로 쉬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고통을 겪으신 덕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고 거기서 오는 깊은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에게 육체적인 안식을 주심을 찬송합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안식을 주심을 찬송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타락으로 하나님과 원수되어 잃어버린 안식을 주 예수님 안에서 찾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불안 가운데 있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연결지어 주심을 찬송합니다.
1.피로사회, 한병철
2.안식교 중심지, 삼육대학, 재칠일안식교가 많은 지역으로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음.
시한부 종말론에서 시작
채식주의, 토요일 안식 율법주의(하나님의 인은 토요일 교회, 주일 교회는 짐승의 표 받음),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만 구원 받는다.
구원의 확신이 없음 , 조사심판교리
3.어거스틴의 고백록, 안식
4.아브라함 헤셀, 안식
5.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4장 안식
6.성수주일, 김남준
7. 만화 십계명, 백금산
8. 야근하는 당신에게, 이정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