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기 위해 구원 받음 (Saved to 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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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4-8

Notes
Transcript

서론

오늘 부터 본격적으로 사도행전 시리즈를 시작 합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함께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입니다.
누가복음의 첫 장에 이 책의 집필의도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 KRV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이 두책 모두 역사적 관점으로 쓰여졌고 사실과 정황을 자세히 기록하였고 이미 신앙이 있는 데오빌로로 하여금 이미 알고 배운 바에 확실함을 알게 하려는 공통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
사도행전은 그 예수님의 복음이 성령의 역사로 그 제자들을 통해 일관성 있게 전진하고 있다는 것과
히브리 문화권이 아닌 전세계의 구원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보여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이 두책의 공통점은 말씀의 성취 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통한 말씀의 성취
사도행전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역을 통한 말씀의 성취
이제, 사도행전은 그 시점이 예수님의 사역에서 이제 그의 제자들의 사역 즉, 우리 모두에게 향해집니다.
자, 예수가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사랑 하였다.
이제,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도전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시작을 통해, 여러분들께 큰 도전이 있으시길 축원 합니다.

1.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보통, 시즌1이 끝나고 시즌2가 시작하면 전편과의 연결고리를 몇가지 보여주면서 서사의 연속성을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과 사도행전의 첫장에는 겹쳐 보이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승천, 다른 말로 승귀 라고도 하는사건 입니다.
누가복음 24:50–51 KRV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사도행전 1:9 KRV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승천사건이 갖는 의미는 이제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은 마무리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천지가 개벽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물론, 주님이 하늘보좌로 승귀 하신 것은 슬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 없는 삶은 막막했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 주고 부족하면 훈련 시켜주시던 주님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의구심이 강하게 밀려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제자들은 예전의 나약하고 믿음이 약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은 눈 앞에서 성취 되었고
심지어, 돌아가신줄로만 알았던 주님은 부활하시어 40일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해주셨고 그들의 믿음과 사명을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증거가 없이는 설 수 가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 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념을 가지고 믿는다고 자기 암시를 하여도 사람의 의지와 논리는 근거와 증거 없이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보지 못하는 중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것이지만
믿음의 유지와 성장은 확실한 근거가 필요 합니다. 다른 말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첫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누가복음 1:3–4 KRV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배운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이 두권의 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배워서 알기만 하는 것으로 충분 하지 않고 배운 것을 다시 마음에 세기고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해 누가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키워내기 위해 이렇게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첫 구절은 이 두권의 책을 쓴 목적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3절 까지는 누가복음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고 4-5절 까지는 사도행전의 초반부의 내용 입니다.
무슨 말이냐 요약하면,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를 알았으면
사도행전을 통해 예수의 삶을 살아라
우리가 매일 매일 영성생활을 하고 성경과 교리를 배우는 이유는 뭡니까?
어쩌면 반복적이고 이미 알고 있는 이것을 우리는 왜 배우고 또 배울까요?
우리의 신앙은 처음에는 확신에 차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믿음은 약해져 갑니다.
날마다 약해져 가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확신 가운데 올려 놓기 위해서 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상황이 바뀌는 대로
그대로 방치된 신앙은 자연히 산화 되어 버립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주에서 물체를 부러뜨리면 바로 붙일 수 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지구 상에서 어떤 물체를 부러뜨리면 곧장 공기와 반응하여 산화 되기때문에 원래대로 붙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우리의 신앙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믿음 따라 살고 싶지만 우리가 선하게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한번 믿음에서 멀어지는 순간 우리의 심령을 좀먹고 믿음 없는 생각과 말을 하게 하여 우리의 심령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환희를 남기고 하늘의 아버지의 우편 보좌에 앉기 위해 승천 하셨습니다.
이제 이 땅에 우리를 이끌어 줄 하나님의 아들이자 스승이신 주님이 더 이상은 없으신 것입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각성의 메세지가 들려 옵니다.
사도행전 1:10–11 KRV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언제까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냐?
이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때까지 너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느냐?

2. 오직 성령을 받으라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누가복음의 역사 입니다.
이제 사도행전은 구원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을 요구 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 하기 위해서 구원 받았다” 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 주님은 제자들과 앞으로 벌어질 엄청난 미래에 대해 아주 중요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 대화에는 주님 승천 후에 일어날 일과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에대한 정확한 행동지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6절에 부터 시작되는 제자들과 주님과의 대화는 사도행전의 역사서적인 디테 일을 잘보여주는 부분 입니다. 역사기록에는 항상 기록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대화에는 미묘한 텐션이 존재 합니다. 이 대화에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존재 합니다. 복음적 측면과 민족적 측면 입니다.
유대 민족적 측면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 부터 끊임 없이 궁금증을 품고 바라던 문제 이지만 주님은 항상 그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시 않았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메시야도 이스라엘을 구할 수 없었구나 였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께서 다시 살아나셨으니, 다시 희망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 했으니, 이제 우리 민족은 살았다.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마음으로 예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 회복 될까요? 하는 궁금증 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 KRV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주님은 뜻밖에 대답을 하십니다. 그것은 “너희의 알바 아니요”
웅장하고 거대한 비젼을 품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자 열정을 품고 있던 자들에게는 김새는 대답 입니다.
나라의 독립이라는 정당하고 의로우며 중차대한 사명에 대해 당연히 같은 민족이자 메시야 이심이 틀림 없는 주님께서 중대 발표를 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 없이 무너지는 순간 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웅장한 비젼을 품고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을 나타내실 날을 손꼽아 기대하며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 할때가 있습니다.
특히, 젊은 청년 시절, 학생시절에 우리는 세상을 호령하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신앙의 리더가 되라고 축복기도를 받고 웅장한 비젼을 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 됩니다.
당시 하스데반 선교사님이 이끄는 찬양팀, “찬양과 경배”는 전국의 교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서빙고동에 위치한 온누리교회 목요찬양예배는 신앙 좋은 청년, 학생들에게 꼭 방문해야 하는 성지순례지와 같았습니다. 당시 대학교 마다 다니며 찬양집회를 하곤 했는데, 저의 모교회가 위치한 호서대학 광장에서 찬양집회가 있다는 소식에 들떠서 찬양에 참가했습니다. 찬양에 큰 은혜를 받고 목노아 기도하고 정말 절묘하게도 야외집회 중에 계속 내리던 비가 그치고 쌍무지개 무대 뒤로 떠올랐습니다. 찬양 인도자의 초대멘트 속에 그날 선교사로 헌신한 청년 학생들의 수는 몇 백에 이르러 무대를 가득 채우고 통성을 기도하는 모습은 장관을 이뤘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준 장엄한 역사는 어쩌면 그곳에 모였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웅장한 비젼을 품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직접 눈 앞에서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이 이 민족을 압제에서 구하시고 로마도 물리쳐 주실 강대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역사와 권능을 보이시는 대부분의 일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존재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의 성취를 위해서 역사 하십니다. 인간들은 종종 그 역사를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바램에 끼워 맞춰 생각하려 하고 그렇게 되길 원해 덛없는 기도를 올리곤 합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궁금합니다. 그 무지개 뜬 무대 위로 결신하며 올라갔던 그 젊은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벅차고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기대하던 그들에게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사도행전 1:7 KRV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민족의 독립은 너희 알바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맡겨라
너희가 정녕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사도행전 1:8 KRV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나라 독립, 민족 해방, 이런 것은 역사에 맡기고 하나님의 영역으로 남기고
너희 앞에 벌어진, 너희가 직접 경험한 그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경험한 예수를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거 해라!!
사실, 이 말씀은 반복된 명령 입니다.
앞서, 4-5절에서 분명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라고 이미 명령 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못알아 듣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었고 주님은 또다시 강조하여 명령해주십니다.
사도행전 1:4–6 KRV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다른 일 신경쓰지 말고, 제일 먼저, 성령을 받으라!!
잘들어라…다른 곳 보지 말고, 지금 너의 눈 앞에서 말하고 있는 나를 보라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라!!

성령을 받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성령-권능-증인
성령-권능의 상관관계
사도행전 1:8 KRV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통한 복음전파 과정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필수조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지금 여기부터 땅끝까지 …
우리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기도는
오직 성령이 충만히 임하기를 매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성령을 초대하고 대화하고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밤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하고 찬양 해야 합니다.
시편 92:1–3 KRV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오늘을 꾸역 꾸역 간신히 살아가는 힘정도가 아니라, 이기고도 남는 하나님의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내 삶을 살아내기에 급급한게 아니고 그 권능으로 예루살렘, 즉 내 가장 가까운 곳, 내가 다니는 교회와 가정을 변화 시키고 축복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살 권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잘한 나무나 나물이 아니라, 종려나무 같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웅장하게 발육할 것입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도 청년 보다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고 그 빛이 푸르고 청청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시편 92:12–14 KRV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성령의 충만한 삶은 이런 흥왕하는 삶 입니다. 또한 복된 삶입니다.
성령은 나, 내 가족을 잘 돌보게 하실뿐 아니라,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게 하시며, 예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고 남는 권능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 합니다.
성령-권능-증인
복음을 증거하는 수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이 원리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권능과 증인의 상관관계
말로서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권능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성적이지만, 용기 내어 전도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이해 하시면 조금 부족합니다. 성령의 권능은 우리의 성품과 조건과 환경을 훨씬 뛰어넘는 개념 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성령에 사로잡혀 하고 도 남는 일이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 수많은 순교자들이 인간의 의지와 신념으로 목숨을 받쳤다고 생각 하십니까?
히브리서 11:36–38 KRV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영의 세계 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게 하신 권능 입니다.
이런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 바로 성령에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은 어디나 생명이 살아나고 미움이 용서로 분열과 혐오가 사랑과 화합으로 변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이 임한 사람, 권능을 받은 사람, 증인의 삶 입니다.

결론

주님은 이제 승천 하실 것입니다.
주님 승천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의 성도의 삶은 어떻게 변화 될 것인가?
주님과 성령님이 바통터치를 하십니다.
성령님이 이제 우리를 인도 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마음에 분명히 간직하고 이제 우리는 구원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다음 미션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지령을 분명히 듣고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집을 나서기전 기도하고 교회에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기를 권면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구원 받았으니 된 것 아닙니까?
왜 성령을 받아야 할까요?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실때, 믿는 자들을 모두 데리고 가시면 좋을텐데, 이 죄많은 세상에 왜 그들을 남겨두었을까요? 왜 재림을 기약하시고 그들 곁을 떠나셨을까요?
우리의 구원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이 구원은 우리만을 위한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구원 하기 위함 입니다.
이 풍진 세상 오늘 바로 천국 간다면 아픔도 없고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는 천국에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에게 인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참으시고 계신 이유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입니다.
한편으로, 구원 받았으니 너희도 애쓰고 힘써서 고생하더라도 전도 열심하다가 와라
이런 뜻은 아니실 것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기쁨을 너도 느껴 봐라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성취 되는 희열을 느껴봐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맛보아라
마지막 날 부를때,
나와 같이 말할 수 있게 살다가 오거라
주님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을까요?
비록 세상을 공생애로 살면서 고난도 있고 풍족하지도 않았고 나를 싫어 하는 사람,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심지어 나를 죽이기 까지 했지만,
나는 이 땅에서 행복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성취 되는 것이 보람되고
죽어가던 영혼이 살아나고 나의 죽음으로 인간들을 구원 할 수 있어서 그 기쁨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이 땅의 삶이 충만하고 기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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