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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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모세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열 두 지파를 두 진영으로 나누라고 말했습니다. 한쪽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 위에 섭니다. 다른 한쪽은 저주하기 위해서 에발 산 위에 섭니다. 도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내용을 축복 또는 저주하기 위한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준행하는 자는 축복의 대상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모두 가나안 땅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산은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리심 산은 해가 뜨는 동쪽에 위치해 있고, 에발 산은 해가 지는 서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에게 오른편은 ‘축복’, ‘능력’을 상징하고, 왼편은 ‘저주’, ‘불행’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동편에 위치한 그리심 산은 축복을 선포하는 산이 되었고, 서편에 위치한 에발 산은 저주를 선포하는 산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2절에는 축복을 선포하기 위한 지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고, 13절에는 저주를 선포하기 위한 지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지파가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 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은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을 대표하여 서 있고,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은 율법을 거역하는 자들을 대표하여 서 있을 뿐입니다. 어떤 특정한 지파가 축복의 산 혹은 저주의 산에 서 있다고 해서 그 지파가 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지파가 두 산에 서게 되었을 때 레위 시람들은 큰 목소리로 12가지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이 저주의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27장 15절에서 26절까지 기록된 말씀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큰 소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한 이 저주의 내용들을 통해 이 새벽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위 열 두가지 저주는 전부 다른 형태의 범죄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범죄가 사형을 받을 만한 심각한 범죄라는 것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범죄들이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행해지는 것들이기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범죄, 부모님에게 함부로 하는 범죄, 근친상간의 범죄, 뇌물을 받는 범죄 등 누군가의 앞에서 행하기 보다 숨어서 행해지는 범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의 특징 한가지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밀함 입니다. ‘은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남이 잘 모르게 이뤄지는 상태입니다.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꼭꼭 숨긴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뒤 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숨은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드러나지 않으려 더욱 숨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백성들 앞에서 은말한 죄로 인한 저주를 언급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범죄를 명명백백히 알고 계시며 그 범죄를 묵과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과 선악과를 먹고 숨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숨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밀한 죄를 짓고 그 죄를 숨기려 노력하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한 죄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은밀함은 성립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든 것을 아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고백하시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함으로 은밀히 숨으려 하는 죄악들로 부터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 위한 서약과도 같습니다.
저주는 조약을 어겼을 때 하나님께서 벌주기를 자청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조약을 지키겠다는 순종의 서약과도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지파가 저주를 낭독하면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렇기에 너나 할 것 없이 공동체 모두가 예외 없이 위 저주들 중 하나라도 어겼을 경우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것과 어떠한 유혹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의 선포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날 우리 한명 한명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있어 처절한 순종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임을 다시 깨닫는 저희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저주의 말씀 앞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희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라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까지도 이야기합니다. 크리스찬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아주 큰 패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 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바울은 27장 6절을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인용하띤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켰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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