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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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신명기 34:1-7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2023. 7. 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자신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요단강을 앞둔 채로 눈으로만 가나안 땅을 바라본 후에 숨을 거두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갖은 고생을 다했던 모세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보고 죽게 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오늘 모세가 죽는 장소가 어디인가 하면, 느보 산입니다. 여러분, 신명기는 산에서 시작해서 산에서 끝나거든요. 모세가 느보 산에서 죽으면서 신명기가 끝나는데, 시작은 어디에서 하는가 하면, 호렙 산에서 시작을 합니다.
신명기 1장 6절을 보면, 출애굽한 백성들의 본격적인 광야생활의 출발점이 나오는데요. 신명기 1장 6절을 한번 봐 볼까요? 신명기 1장 6절에 보니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자, 여기 보면 “호렙 산”이 나옵니다. 호렙 산은 다른 이름으로 “시내 산”입니다. 호렙 산과 시내 산이 같은 산이에요. 이 산에서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죠. 그리고 나중에 출애굽한 뒤에 다시 이 산에 와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받느라고 1년 동안 이 산에 머물렀어요.
그리고 율법을 다 받은 뒤에, 하나님께서 이제 이 산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신명기 1장 6절이 바로 그 말씀이에요. 우리가 호렙 산에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됐으니까 이제 그만 떠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광야생활이 이 호렙 산에서부터 시작이 된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끝나는 거예요? 신명기 34장, 느보 산에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볼까요? 신명기 34장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이처럼 모세가 죽는 마지막 장소도 산입니다. 그런데 느보 산이 나오고, 비스가 산꼭대기가 나오는데요. 느보 산과 비스가 산이 사실은 하나의 산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스가 산의 봉우리 중의 하나가 느보예요. 지리산도 보면, 천왕봉이 있고 반야봉도 있고, 노고단도 있고 하는 것처럼, 비스가 산에도 봉우리가 여러갠데 그 중에 하나가 느보라는 것입니다. 이 느보 산이 신명기의 마지막 배경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죽는 것이죠.
그런데 1절을 다시 보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 산꼭대기에 올라가게 하신 후에 어떻게 하십니까? 모세에게 넓은 땅을 보여주셔요.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밑에 2절에도 보면,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을 보이시고, 또 3절에,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십니다. 가나안 땅을 다 보여주신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학자들 간에 의견이 갈립니다. 모세가 실제로 가나안 땅을 봤다는 사람들과 실제로 본 것이 아니고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들, 이렇게 의견이 갈려요. 왜냐하면 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을 다 볼 수가 없거든요. 왜냐면 땅이 워낙에 넓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여러분, 우리가 구봉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서울이 보입니까? 아니면 부산이 보여요? 안 보이죠.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느보 산에서 길르앗이나 단이나 므낫세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의 시력으로는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모세가 실제로 본 것이 아니고, 모세가 바라본 방향에 가나안 땅이 있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보여주셨다는 거예요. 실제로 모세에게 보여주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세의 시력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죠. 하나님께서 이 순간 모세에게 특별한 시야를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아 보게 하신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볼 수 있게 잠시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40년 동안 그토록 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을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 전체를 다 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 보게 하신 후에 4절에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너무나도 억울한 말이죠. 약속하신 땅을 보여주시고는 그 땅에 너는 건너가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럴 거면 보여주지나 말지. 산꼭대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더니 눈으로 보기만 하라고 하셔요. 저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저 아름다운 세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단지 눈으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모세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요.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무려 40년이나 되는 세월을 넘어 광야를 지나 여기까지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뚫고 왔는데. 잔인하게도 하나님은 여기에서 멈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모세는 80살이 되었을 때 처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호렙산에 양 떼를 데리고 갔다가 떨기나무에 붙은 불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신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40년간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80살에 출발해서 40년이 흐르고, 이제 모세의 나이는 120살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봐 볼까요?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모세는 40년의 광야생활이 끝났을 때, 120세라는 나이에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120이라는 많은 나이였지만,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어요. 노년이었지만 여전히 그는 젊은이와 같은 시력과 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이만 많았다 뿐이지, 청년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여전히 열정이 있고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지 충분히 더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 가나안 땅에서 내가 할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은데, 저기에 갈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모세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40년의 사역이 헛된 일이라고 좌절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이제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백성들을 부러워했을까요?
모세의 정확한 심정을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추측해볼 수는 있어요. 우리가 민수기 27장을 보면 모세의 지금 심정이 어땠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데요. 민수기 27장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가나안 땅을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죽은 것처럼 너도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거든요. 이미 모세가 자신의 최후가 어떠할 것인가를 들은 겁니다. ‘아, 내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죽겠구나.’ 이것을 깨달았어요.
아마 이때의 심정이 지금 심정하고 비슷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이때는 과연 모세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바로 밑에, 민수기 27장 16절과 17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하는 말이 나오거든요. 민수기 27장 16절, 1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이것이 모세가 자신의 최후에 대해서 듣고 나서 하나님께 한 말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최후에 대해서 알았지만, 자신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을 걱정했어요. ‘지금까지 40년간 모세라고 하는 인도자를 따라온 저 백성들이 이제 모세가 사라지고 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혹시나 목자 없는 양떼처럼 갈 바를 몰라 헤매고 다니지 않을까? 예전에 그랬 것처럼,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만이 모세의 마음에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도록 새로운 인도자를 세워서 그들을 인도하게 하여 주시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간구를 들으시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안수하고 모든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그를 따르도록 했어요. 백성들이 목자 잃은 양처럼 흩어지지 아니하고, 여전히 믿을 수 있는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 후에도 모세는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사와 절기를 가르치고, 미디안과 전쟁해서 승리하고, 전리품도 분배하고, 또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하고 나면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도 가르치고.
모세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알고, 정말로 하루를 1년처럼 살았어요. 죽기 전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다 끝마치기 위해서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났을 때, 모세가 무엇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신명기 32장이 바로 모세가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인데요.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어떤 광대한 능력을 가지셨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백성들을 돌보실 것인지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그 찬양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여러분, 이때 과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할 일을 다 마치고 하나님을 찬양한 모세에게 하나님이 과연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모세를 칭찬하셨을까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참 잘하였구나’ 이렇게 칭찬하셨을까요? 아니요. 칭찬하시지 않았어요. 신명기 32장 52절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참으로 매정하시죠. 방금 하나님을 찬양한 모세에게 정말 매정하게도 너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들어가지 못하리라. 네가 보기만 하고 죽으리라.
다시 한 번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하셔요. ‘네가 참 일은 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들어갈 수는 없다. 내가 다시 말하는데, 너 못 들어가.’ 이렇게 매정하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냉정하고 매정한 말씀 앞에서, 모세가 무엇을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서운하고 서럽고 억울한 그런 상황일 텐데도 불구하고,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해줘요. 그게 신명기 33장의 내용입니다. 모세의 축복장이에요.
40년간 함께 울고 웃었던 백성들, 때로는 말도 안 듣고 사고도 치고 속도 많이 썩였던 백성들, 그래도 끝까지 함께 따라와 준 백성들, 이 백성들을 각 지파마다 축복하고 축복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복음을 전해 듣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축복하고 기도해 주셨던 것처럼, 모세도 느보 산에 올라가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마치고 난 후에, 오늘 본문 내용과 같이. 느보 산에 올라가 요단강 건너 온 땅을 눈으로 본 뒤에 죽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그 땅을 눈으로만 보고 죽었어요.
길르앗에서부터 유다와 네겝과 소알까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을 선명하게 다 봤습니다. 성경에는 이때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그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죽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잖아요. 자기의 최후에 대해서 알고도 어떤 일들을 했는지.
저는 제 짧은 신앙과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이 순간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모세가 하나님께 감사했으리라고 믿습니다.
감사,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심에 감사, 백성들과 함께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돌봐주심에 감사, 애굽에서 구원하심에 감사, 모든 것이 감사. 그리고 비록 저 땅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가나안 온 땅을 끝에서 끝까지 보여주심에 감사.
저는 분명하게 모세가 감사하며 죽었으리라고 믿습니다. 호렙산에서 시작한 여정이 느보산에서 끝을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호렙산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시작해서, 느보산에서 끝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끝난 것이거든요.
아직 기력이 있고 열정이 있어도, 거기까지인 것입니다. 모세가 그것을 정확히 지켰어요. 산꼭대기에서 그 너머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더 가지 않고 멈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인생여정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모세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40년 동안 고생했는데, 얻은 게 뭡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죽었잖아요. 심지어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모세는 죽어서도 굉장히 처량합니다.
6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죽어서도 어때요? 무덤도 없어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고 위대한 인도자였던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가 다 무덤이 어딘지 알아요. 그런데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낸 모세는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쌍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모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쓸쓸하게 묻혀야 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무덤을 우상화 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모세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모세의 무덤 앞에서 절을 할까봐 염려했던 것이죠.
과거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돌아오는 게 늦어지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했던 것처럼, 여호수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래서 모세의 무덤을 아무도 모르게 하셨어요. 그 때문에 오늘까지도 그 무덤이 어딘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묻혀서 정말 최후까지도 초라했던 선지자,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모세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가진 재산도 없고, 고생만 고생만 하다가 마지막에 초라하게 죽었어요. 달려갈 길을 다 마쳤더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름 없는 무덤이었어요.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해요.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바라볼 때의 관점이죠. 물질과 명예와 권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달라요. 어떻게 다릅니까?
오늘 본문 밑에 10절부터 마지막 12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 대한 평가를 하십니다. 신명기 34장 10절부터 12절까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아멘.
모세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모세 이후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났지만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전달받은 사람이었고, 또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었어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선지자.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볼 때에,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0세의 나이에 하나님을 만났던 모세, 그가 40년 동안 말씀에 순종하며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던 것 같이, 그리고 자신이 그 땅에 가지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였던 것 같이. 우리들도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쩌면 오늘밤에 당장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리가 받을 수도 있어요. 만약에 오늘 우리의 생이 끝이 난다면, 여러분은 남은 시간 동안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밤 자정을 못 넘기고, 우리 인생이 내일로 건너가지 못한다면,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할 일이 많죠. 집 명의도 자식 명의로 돌려야 되고, 숨겨둔 비상금도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고, 또 마지막 작별인사도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하고싶었지만 못했던 말들, 죽기 전에 다 해야죠.
그러나 시간이 촉박해요. 인생이라고 하는 산을 이제 다 올라왔어요. 산 꼭대기에 왔습니다. 여기서 이제 죽게 될 텐데, 이 짧은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짧은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이 뭐겠어요?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 내가 여기서 더 갈 수 없느냐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든지 내 생이 끝날 수 있다는 종말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하루를 1년 같이, 내 인생에 충실해야 돼요.
맡은 달란트를 땅바닥에 처박아놓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가정에 충실하고, 예배에 충실하고, 맡은 모든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련이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모세는 80살에 하나님을 만났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일찍 만났잖아요. 아직 우리에게 시력이 있고, 기력이 있어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세와 같은 대단한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 인생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시는 그 일들을 미련없이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에, 세상의 요단강은 건널 수 없을지라도, 영의 요단강을 건너 주님 계선 저 천국에 기쁨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