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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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2:1-14
“왕이 나셨다”
2023. 12. 1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왕이 나셨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공교롭게도 오늘 본문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면에 대한 내용인데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을 전후해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오늘 본문에서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자, 이 말씀에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뭐길래 갑자기 천하를 상대로 명령을 내려요. 천하를 상대로, 여기서 천하는 온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온 세상을 향해서 명령을 내린 겁니다. 자기가 뭐라고 온 세상에 명령을 내릴까?
여러분,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로마의 황제입니다. 가이사는 황제라는 말이고요. 아구스도는 이 사람의 칭호입니다. 본명은 따로 있어요. 옥타비아누스라고 하는 본명이 따로 있는데, 어쨌거나 이 사람이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그것도 로마의 초대 황제예요. 로마의 첫번째 황젭니다.
이전까지 로마에는 황제가 없었어요. 나라는 막강했지만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아구스도가 다 정리하고, 모든 권력을 손에 넣고 황제가 된 겁니다. 그리고 황제가 된 후에 로마가 통치하는 모든 땅을 대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인구조사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집니다. 첫번째는 머릿수에 맞게 세금을 걷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유사시에 징집을 하기 위해섭니다.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세금을 걷고, 또 군대도 동원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인구조사를 명령한 거예요. 이것을 오늘 본문에는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적하라. 이 말은 “공적으로 기록하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민센터에 가서 공식서류에 등록을 하라는 거죠.
오늘날에야 통신이 발달해서, 아무 동네에 있는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을 해도 되지만, 2,000년 전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보니까, 주민등록을 하려면 반드시 고향으로 가서 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어느 가문의 누구의 아들입니다. 이것을 다른 동네에서는 증명할 수가 없어요. 자료가 없으니까. 고향에 가야만 증명이 됩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밑에 3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모든 사람. 황제가 명령을 내리니까 모든 사람이 복종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바로 여기에 초점을 좀 맞추고 싶어요.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그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 이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 먼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가이사 아구스도입니다.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로마 황제. 그리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모든 사람이죠. 모든 사람. 1절의 말씀대로 하면 “천하” 온 세계입니다. 온 세계가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어요.
그래서 4절에 보면, 요셉도 복종하죠. 4절과 5절을 같이 봐 볼까요? 4절과 5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아멘.
황제의 명령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도 호적을 하기 위해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모라 할지라도 황제의 명령은 거스를 수 없어요. 무조건 따라야 돼요.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갔는데요. 거리가 한 130km 정도 됩니다. 걸어서 가면, 좀 서둘러서 가면 3일 정도, 좀 천천히 가면 5일 정도 걸리는 거리예요. 이 먼 길을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갔어요. 그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죠. 걸어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아마도 나귀를 타고 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쨌거나 베들레헴까지 갔어요. 특별히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다윗이 베들레헴 출신이기 때문에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윗의 동네로 요셉이 올라갔어요. 왜냐하면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요셉이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간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요셉은 베들레헴 출신이 아니죠. 요셉은 나사렛에서 나고 자란 나사렛 출신입니다. 다만 그의 본적지가 베들레헴인 거예요.
저도 태어난 곳은 광양인데, 본적은 순창이거든요. 순창 조씹니다. 그런데 순창은 저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만약에 제가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 살았다고 한다면, 저는 호적을 하기 위해서 순창으로 가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순창이 저의 뿌리가 되는 땅이기 때문에.
그래서 요셉도 자기가 나고 자란 나사렛에서 호적하지 않고, 자기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가는 겁니다. 그의 조상 다윗의 동네이자, 그의 뿌리인 베들레헴, 그곳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도 다시 보면, 성경은 요셉이 베들레헴 출신이라서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고 말하지 않죠. 요셉이 다윗의 집 족속이기 때문에 올라갔다고 말해요. 그가 다윗의 집 족속이기 때문에 이 먼 베들레헴까지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다윗의 자손이다. 이것을 4절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밑에 7절을 보면, 그 위대한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그의 아내 마리아가 처지가 어떻습니까? 묵을 여관이 없어서 구유에 아들을 낳았어요. 너무나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 7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아멘.
요셉이 분명히 다윗의 자손이 맞는데, 세상에 여관방도 하나 얻질 못해요. 물론 이때 호적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있었기 때문에 여관마다 빈방이 없었겠죠.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왕의 자손인데 너무 처량하지 않습니까? 아내가 아기를 낳는데 방도 없어서 마구간에 들어가 아기를 낳고, 말 먹이통에 아들을 눕혔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로마의 황제는 천하를 상대로 명령을 내리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후손은 몸을 누일 여관방도 하나 없어요. 여러분, 바로 이것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현실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와 너무나도 비교되는 처량한 현실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놀랍게도 여기서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관방이 없어서 아들을 구유에 눕힌 바로 그 때, 광야에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요. 천사가 목자들을 찾아온 사건이죠. 9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목자들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그들이 크게 무서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9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아멘.
갑자기 천사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나타나니까 목자들이 무서워했어요. 그런데 재밌게도, 이 무서워했다는 말이 누가복음 1장 12절에도 나오거든요.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성전 안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죠. 그때 사가랴가 무서워했어요. 누가복음 1장 12절에 보니까,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그러니까 천사만 나타났다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그럴게,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니까 안 무서워할 수가 없겠죠.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뿅, 그것도 주의 영광이 같이 임하니까 그 찬란한 빛에 놀라서 벌벌 떠는 겁니다.
바로 그때 천사가 말을 해요. 무슨 말을 합니까? 10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가 목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더니 무엇을 전했어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했죠. 여기서 좋은 소식이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좋은 소식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이것을 한자로 하면 복음이죠. 복음, 복된 소리, 좋은 소식이에요. 이것을 목자들에게 전해준 겁니다.
그런데 왜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을까요? 그것도 밤에 성 안에 있지 않고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왜 복음을 전했을까?
이것은 분명히 상징성이 있습니다. 유대사회에서는 밤에 성 밖에 있는 자를 비천한 자로 여겼어요. 특히 목자라고 하는 직업은 비천한 직업 중에 하나였습니다. 권력계층 가장 밑바닥에 있었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해서 대부분 투잡을 뛰어야 됐어요. 어떤 사람은 쓰리잡을 뛰기도 했겠죠.
그만큼 목자는 초라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사람들 앞에 천사가 나타나서 복음을 전한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메시야도 가장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셨는데, 태어나신 그 날에 복음이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전해졌잖아요. 이것은 곧, 이 땅에 오신 메시야가 이 땅의 가장 비천한 자들을 위하여, 그들과 똑같은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권력자들을 위해서 오신 게 아니라, 비천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오셨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이어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제 그 복음의 내용이 나오는데요. 바로 이 11절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비천한 자들에게 전해진 복음, 우리가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멘.
천사가 전한 복음은 정말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권력구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말이에요.
여러분, 지금 천하의 지배자가 누굽니까? 가이사 아구스도죠.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 그런데 그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여 호적하러 온 일개 식민지의 보잘 것 없는 한 목수의 아들이 “구주”라는 겁니다. 구주.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목수도 비천한 직업 중에 하납니다. 목수는 기술직이죠. 목자는 생산직. 기술직이나 생산직이나 유대사회에서는 똑같이 비천해요. 도찐개찐입니다. 그런데 그 비천한 자에게서 구주가 태어난 겁니다. 구주, 헬라어로 “소테르” 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구원자, 보다 구체적으로 그 뜻을 살펴보면, 무언가로부터 건져내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백성들을 원수들로부터 건져내고, 질병으로부터 건져내고, 굶주림으로부터 건져내고, 모든 핍박으로부터 건져내는 사람이죠. 모든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사람, 소테르, 구원자.
그 사람이 오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칭호가 하나는 구주, 소테르인데, 또 하나의 칭호가 뭐예요? 그리스도. 11절 끝에 보니까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리스도, 공교롭게도 아구스도와 발음이 비슷하죠. “아구스도, 그리스도” 헬라어로 해도 비슷합니다. 헬라어로 하면, “아우구스토스, 크리스토스”
이 두 사람이 처음에는 권력구도가 어땠습니까? 아구스도가 위에 있고, 그리스도가 밑에 있었어요. 아구스도는 저 높은 로마 황궁에서 천하를 상대로 명령을 내리는 지배자였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는 여관방도 없어서 마구간 말구유에 누운 피지배자였죠.
그러나 그 관계가 어떻게 변합니까? 180도 완전히 역전이 돼요. 그리스도는 온 백성을 구원할 구주가 되십니다. 반면에 아구스도는요, 그리스도에게 구원함을 받아야 하는 일개 백성으로 낮아집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세상의 권력구조, 세상의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찌기 누가복음 1장 52절에 보면, 마리아가 이런 찬양을 부르며 기뻐했어요. 누가복음 1장 52절인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권세 있는 자는 낮추시고, 비천한 자는 높이시는 겁니다. 누가요?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서 이 땅의 질서가 새롭게 세워지는 겁니다. 그것을 마리아가 미리 확신을 갖고 노래하는 거예요.
이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믿는 믿음으로 기대하는 겁니다. 구주가 오시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또 뿐만 아니라, 구주가 오시면 너무나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요. 오늘 본문 14절의 말씀인데요.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아멘.
구주가 나심으로 인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단지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은 평화를 얻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로마 황제로 할 수 없어요. 그가 아무리 나라를 강력하게 만들고 권력을 끌어모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사람들에게 참된 평화를 줄 수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시작할 때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끝날 때는 어떻게 끝납니까? 아구스도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일로 끝이 나죠. 단지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신 겁니다. 바로 이 분이 구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 탄생만으로도 세상의 질서를 바꾸십니다. 그 탄생만으로도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분입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가 믿을 대상이에요.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아구스도들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을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하여 나신 구주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입니다.
비천한 자들을 위하여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그 분만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돌보시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주가 나신 성탄절을 12일 앞둔 지금, 우리가 다시 한번 성탄의 그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고, 세상의 아구스도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